항상 여행을 동경하고 꿈꾸지만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여행을 갈 수 있는 건 1년에 고작 2~3번이다.
휴직을 하면서도 '여행다운 여행을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없다기보단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애 학교 보내고 오전에 몇 시간 남짓 뭘 할 수 있을까? 자전거나 좀 타야지 딱 그 정도 생각을 하면서 휴직을 했다.
휴직 첫 달에는 특별히 뭘 하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야지 생각은 했었는데 뭔가 움츠러들었다. 불안함도 있었고 하고 싶은 의욕도 안 생겼다. 주로 못 봤던 드라마나 영화를 마음껏 보는 걸로 오전시간을 보냈다. 하루종일 드라마를 보면 머리가 띵한 느낌이 난다. 머리가 띵할 때까지 드라마를 완주하는가 하면 영화도 기본 2~3편을 연속으로 봤다. 그렇게 한 달이 끝나갈 때쯤, 세 달이라는 이 소중한 시간을 이렇게 보내면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한테 해 줄 수 있는 것도 최선을 다해서 해줘야겠지만 나를 위한 뭔가도 해야 할 것 같았다.
회사에 있을 때에는 이 시간에 일을 안 하고 있으면 하고 싶은 것들이 수시로 떠오른다. 평일 오전 여유롭게 자전거 타기, 평소 때 못 보고 미루던 책 읽기, 서점이나 만화방에서 하루종일 콕 박혀서 시간 보내기, 모르는 동네 가서 구경 다니기, 평일 낮 카페서 여유 즐기기 등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즐거운 것들을 생각했다. 그중 첫 번째 하고 싶은 것이 자전거 타기였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처럼 하천 같은 데서 자전거를 타면서 공기를 느끼고 싶다 모 이런 상상을 했다. 다만 자전거를 탈 줄 몰랐다. 어릴 때 딱 한 번 친구한테 자전거를 배운 적이 있는데 친구가 가르치다 지쳐 자전거 타는 걸 포기하라고 했다. 그만큼 운동신경이 둔하고 균형감각도 없었다. 이후 연애시절 남편한테 자전거 타는 걸 배웠었는데 그때도 같은 말을 들었다. 그러니 평생 동안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망은 로망일 뿐으로 끝나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살았다. 그러다 아이가 자전거 배울 때 다시 배울 기회가 생겼다. 아이는 처음부터 자전거를 잘 타는 편이었고 엄마한테도 이렇게 타면 된다고 가르쳐 줬다. 아이의 힘이 컸나 평생 안 될 것 같던 자전거 타기가 어느 순간 마술처럼 됐다.
이후 자전거 타는 데 재미가 붙었다. 종종 탔지만 일하고 오는 저녁시간은 한정적이라 늘 아쉽게 탈뿐이었다. 주말은 길게 탈 수 있었지만 이 동네는 주말에 사람이 너무 많고 집에 자전거가 2대라 남편이랑 번갈아 타야 했다. 번갈아 타는 게 불편했는지 느닷없이 남편이 생일선물로 자전거를 사준다고 했다. 자전거가 생기니 탈 기회는 많아졌다. 하지만 타는 게 미숙해서 자전거 도로 아닌 곳은 타고 나갈 엄두를 못 냈다.
첫 달 끝나갈 때부터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전거도로 위주로 사람들이랑 부딪히지 않을 만한 길만 조심스럽게 타고 다녔다. 이후 자신감이 좀 붙어 다른 길들도 타게 됐다. 자전거로 동네구석구석 구경도 다니고 마트 가서 장도 보고 갈 수 있는 곳들을 서서히 넓혔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전거로 어디든 다닐 수 있게 됐다.
자전거는 운전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일단 동네 구석구석을 꼼꼼히 볼 수 있고 주차 걱정이 없다. 운전해서 다녔던 길들은(보통 네비에 의존하니) 다시 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로 다닌 곳들은 걸어서 다녀본 곳처럼 기억하게 된다. 자전거는 시간대비 다니기에 최고로 좋은 수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타는 즐거움도 줬다. 날씨 좋은 날 해안가 자전거도로를 달리면 상쾌한 기분이 절로 든다. 모르는 동네 골목골목과 모르는 곳을 구경 다니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었다. 최근에는 자전거도로를 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달려봤다. 길 따라가다 보니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큰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 길이었는데 언젠가 외국에서 봤던 풍경과 유사했다. 20대 때 1년 정도 외국에서 산 적이 있다. 그때는 일상이 여행이었다. 어차피 떠날 곳이었고 사는 동안 볼 수 있는 걸 많이 봐야 했다. 정처 없이 많이 걷고 많이 다녔던 시절이었다. 딱 그때 봤던 풍경들이 예상치 못한 곳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자전거로 일상 속 여행을 즐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맨날 여행을 갈 수 없으니 일상에서 나만의 여행을 자전거로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지금 이 소중한 시간이 즐거운 여행으로 다가온다면 얼마나 기쁠지 상상만으로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