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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오늘도 이런 주문이 들어오네.”
지수가 모니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취소 눌러.”
현은 무심히 대답했다.
‘MY DoLL’의 고객은 90% 이상이 남성이었다. 처음부터 특정 성별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지만, 리얼돌의 주된 수요가 특정 성별로 몰리는 건 어찌할 수 없었다. 고급화 전략을 쓰다 보니 구매력이 높은 중장년층 남성들이 실제 고객의 70% 이상 차지하였고. 맞춤 제작이기 때문에 자연히 고객의 개인정보와 은밀한 성적 취향에 대한 공유 역시 필수였다. 때문에 많은 주문서 가운데 상품 가치가 높은 것을 채택한 후에는 고객의 요청을 세부적으로 검토하기 위한 인터뷰가 반드시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부분의 요구 사항은 도덕적 허용 범위 내에서 재단되기 마련이었다. 현은 유능한 대표였으니까―
그러나 때때로 윤리적 기준에 어긋나는 선택지를 끝까지 고집하는 고객도 있었다. 예를 들자면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제작해 달라든가, 아동․청소년의 이미지를 활용해 달라는 요청 말이다. 이런 경우에 현은 단호했다. 단가가 아무리 높다 해도 컷. 이는 ‘MY DoLL’을 운영하는 대표인 현의 신념이었다.
현이 이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돈, 다른 하나는 인간의 건강한 성생활. 비단 남성만이 아닌 여성들도 즐길 수 있는 성을 위한 상품을 만들어보겠다는 것. 그래서 현이 최근 가장 고민하는 문제는 음지에 숨어있는 리얼돌 시장을 여성에게도 개방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대표님. 아까 그거, 재주문이 들어왔는데요. 요청 사항 한 번 읽어보시겠어요?”
“뭔데 그래?”
“그게… 참, 아들 이야기라…….”
“아들하고 그걸 하고 싶대?! 나 참, 주문 번호 몇 번이야? 읽어나 보자.”
“B102934입니다.”
“딸은 많이 있었어도, 아들은 처음인데요. 진짜일까요?”
“진짜겠어? 이런 변태들 레퍼토리 한두 번 들어? 취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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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어느 때처럼 시영 타워의 네모반듯한 계단을 총총히 걸어 올라 202호 사무실로 출근하던 현은 그만 까무러칠 뻔했다. 철제로 된 문 앞에 시커먼 형체가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등이 나가서 어두컴컴한 복도에서도 문짝을 칠한 노란 페인트와 그 앞에 쪼그린 어두컴컴한 무언가는 확연한 대비를 이루며 눈동자 속을 파고들었다. 에어팟을 낀 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의식의 절반쯤은 주차장에 두고 왔던 현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치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 누구세요?”
현이 아찔한 감각을 뒤로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뒤이어 엄청난 비명이 현의 뒤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악!”
혼이 빠져나갈 정도로 목청껏 소리를 지른 자의 정체는 지수였다. 그는 엉덩방아까지 찧으며 바닥에 나뒹굴 정도로 기겁하고 있었다. 빨리 저 시커먼 형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게 급선무였다.
“저기요, 이보세요!”
현은 결국 가까이 다가가 잔뜩 웅크린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군데군데 섞인 희고 긴 머리카락이 감싼, 가녀린 어깻죽지를. 온통 위아래 검은 옷을 입은 이 사람은 대체 언제부터 여기서, 왜, 이런 자세로 있었던 것일까―
한참을 이름도 없이 부르고, 흔들어댄 끝에야 그이는 부스스 파묻었던 고개를 들었다. 눈가에 주름이 살짝 보이는, 중년의 여성이었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는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현과 눈을 마주치자마자 인사 대신 질문부터 건넸다.
“MyDoLL 대표님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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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해요 그대
있는 모습 그대로
너의 모든 눈물
닦아주고 싶어 …♬”
- 우효, <민들레> 中 -
음악은 늘 각자의 무선 이어폰으로 듣는 게 불문율이었던 조용한 사무실에 모처럼 BGM이 울려 퍼졌다. 소파에는 조금 전까지 사무실 입구의 문 앞에서 쪼그려 있던 그녀가 앉아 있었다. 현은 그녀와 30cm쯤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지수가 유리로 된 찻잔에 검붉은 빛이 우러난 물을 삼 분의 이쯤 채워서 들고 왔다.
“히비스커스 티예요. 따뜻할 때 천천히 드셔 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러나 가만히 온기를 느낄 뿐, 마시지는 않았다. 히비스커스의 향기 나는 내음을 홀짝 입으로 맛보며 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길 찾아오신 용건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어요?”
현은 질문과 함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그녀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 어제 두 번 주문을 했어요. 그런데 다 취소되어서……. 아들과 같은 모습의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파티션 뒤 책상에 앉아 있던 지수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은 고개를 돌려 지수에게 눈짓을 하더니 그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네, 원래 회사의 윤리적 방침상 실존 인물뿐만 아니라 미성년자의 이미지로는 제작이 불가합니다. 저희도 고객님의 요청대로 제품을 제작해 드리지 못한 점, 매우 유감으로 생각해요.”
“알고 있어요! 알고도… 주문한 거였어요. 그래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고요. 저는 리얼돌을 만들기 위해 온 게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저희는 리얼돌을 만드는 회사입니다만.”
현은 높지도 낮지도 않은 어조로,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예의 바르게 고객을 응대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새벽, 혹은 밤을 사무실 앞에서 지새운 그녀를 최대한 정중하고 신속하게 돌려보내기 위하여―
“아들이 자살했어요!”
“네, 요청 사항에서 확인했습니다.”
“아들이…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결국 눈물을 한 방울 떨구기 시작했다. 현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15살이에요,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 그런데 그 어린 남자애가 정말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어요. 두 달 전에요. 온라인에서의 활동 기록은 물론이고, 평소 끄적이던 연습장의 메모조차도 전부 없애고 떠났어요. 어른도 그렇게는 안 했을 거예요. 그래서 그 애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정말… 아무도… 몰, 몰라요. 흐흑… 흑.”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을 이어가던 그녀는 가슴속에 꾹꾹 밀어 넣어두었던 설움이 터지고야 말았다. 그래서 한바탕 쏟아내듯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지수는 조용히 티슈 곽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코를 킁 풀면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대표님은 아이 없으세요? 아이가 있으시다면… 제 마음 이해하실 거예요. 정말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고, 만져보고 싶은 이 마음…….”
그녀는 현을 바라보며 원망도 아니고 질문도 아닌 애매한 무언가를 던졌다.
현은 자리가 불편한지 결국 일어났다. 그리고 파티션 너머 자기 책상 뒤편의 창문으로 향했다. 창문이라고 해봤자 새까맣게 먹칠이 되어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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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분, 이제 돌려보낼까요?”
지수가 현의 어지러운 심기를 눈치채고 다가와 조용히 귀엣말로 물었다.
“씨발…….”
평소 지수 앞에서 욕을 입에 담아본 적 없는 현이었다. 현의 머릿속은 복잡한 그물 안에 잡히지 않아야 할 오물들이 잡힌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오천 불러. 그래도 제작한다고 하면 계약서 쓰고.”
현이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