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야…?”
현은 기가 막힌다는 듯 탄식을 내뱉었다. 그토록 죽은 아들과 똑같은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울부짖던 여자. 그리고 그녀가 남기고 간 책상 위의 종이 한 장. 그것은 MyDoLL의 표준계약서가 아니었다. 하얀 백지 위에 정자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
“와 씨, 그러니까 정시현을 어떻게 만들어달라는지 알아야 뭘 해도 할 거 아냐? 아니, 지수 너 뭔 생각으로 계약서를 이렇게 쓴 거야? 이게 계약서야?”
“그게… 자기 아들은 사람이라고, 상품으로 규정하지 말아 달래요. 제작하려면 원재료 및 기타 부자재라도 선택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려도 막무가내로……. 오천만 원은 그 자리에서 바로 현금으로 이체해 주셨어요. 추가 비용 발생하면 언제든 말씀하시래요.”
현은 입이 떡 벌어졌다.
“아니, 그럼 생긴 건? 정시현이 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서 우리가 만들어?”
“주문서에 사진 1장 첨부하셨다고…….”
“그거 달랑 1장으로 전신을 어떻게 디테일하게 뽑아! 지수 너, 대체 왜 이렇게 일을 한 거야!”
“…죄송합니다. 너무 많이 우시는 바람에……. 주문서에 나온 주소로 찾아오면 아들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다고, 제작할 때 필요한 내용 있으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하셨어요. 아이의 숨이 담긴 인형… 받고 싶으시대요.”
“숨 같은 소리 하네. 지금 소설 쓰니?”
“그렇지 않아도 직업을 여쭤봤는데, 소설가시래요.”
“야, 지수야!”
늘 깔끔하게 업무를 처리하던 지수였다. 대체 왜 이런 식으로 흐리멍덩하게 굴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현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사무실에 있는 둘 다 제정신이 아닌 게 분명했다. 그러니 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수락했을 테지. 말도 안 되는 주문이라면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계약하는 게 맞다.
“하— 그래. 화내서 미안해. 오늘 이래저래 너무 당황스러워서 나도 정신이 어떻게 됐나 봐. 그래, 상품을 제작할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신지영 씨 맞지? 연락드려 봐. 언제쯤 댁에 방문할 수 있냐고. 아무래도 찾아뵙고 인터뷰하는 게 좋겠어.”
현은 다시 이마에 손을 얹고 지수에게 사과를 건넸다. 상사로서 한 번도 큰소리친 적이 없었는데, 오늘 그게 깨져버렸다. 지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
이틀 뒤였다. 용인으로 향하는 도로에는 현의 차가 그녀의 집을 도착 지점으로 놓고 달리는 중이었다. 물론 조수석에는 지수도 함께였다. 그들은 오늘에서야 이 기묘한 계약을 비로소 받아들인 듯했다.
“그런데 열다섯 살짜리가 왜 자살을 했을까요?”
“그러게. 그것도 자기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말이야. 성인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못할 텐데—”
“혹시… 범죄에 연루된 건 아닐까요? 자살을 위장한 타살?”
“하, 진짜 소설 쓰고 앉아 있다. 걔 사진 좀 보여줘 봐.”
“여기요.”
지수는 주문서에 첨부되었던 파일을 인화한 사진을 운전석의 현에게 건넸다. 현은 한 손으로 사진을 쥐고 빠르게 눈으로 훑었다.
그것은 아마도 고인의 영정 사진인 듯했다. 까만 뿔테 안경을 끼고 환하게 웃는 갸름한 얼굴. 사진 속 소년의 얼굴에는 그 어떤 근심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절대 자살을 선택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얘가 정시현이란 거지. 흠, 그래. 이렇게 포토샵 된 거 말고 자연스러운 일상 사진하고 동영상, 그리고 풀샷 잡힌 이미지들 좀 받아오자.”
현은 다시 전방을 보며 오늘의 임무를 되새겼다. 지수는 패드에 그 내용이 잘 입력되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했다. 그러던 중 지수가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현에게 물었다.
“숨은 어떻게 하죠?”
“숨이라니?”
“숨이 담긴 인형으로 제작해 달라고 하셨어요.”
“아이고.”
현은 갑자기 이틀 전의 두통이 도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타이레놀을 챙겨 오지 않았다고, 정신 차리자.
“정확히 숨소리가 나는 걸 말하는 거야? 아니면 공기가 흘러나오는 걸 말하는 거야? 일단 고객님께 그 부분부터 명확히 여쭤보자고.”
“넵!”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 차는 어느덧 도착 지점에 거의 도달해 가고 있었다.
*
용인시 처인구 에버랜드 근방의 신지영 고객의 집. 현과 지수는 대문 앞에서 지대보다 높이 자리한 그곳을 올려다보았다.
실로 으리으리한 저택이었다. 그레이 톤의 모던한 벽돌로 쌓아 올린 담장 뒤로 널따란 잔디 정원과 연못, 그리고 블랙 테두리를 두른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올린 네모난 회색 주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건축에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전문가가 고심하여 지은 건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호화 주택이었다.
“흠, 아주 부자시네, 이번 고객님은…….”
“그러게요.”
“자, 그러면 이제 들어가자.”
현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수는 대문 옆의 까만 초인종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