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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Oct 23. 2024

어느 소설가의 집

 집에서 만난 그녀, 아니 신지영 씨는 이틀 전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위아래 검은 투피스를 입어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뜻을 드러낸 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은 한없이 애달프고 서러운 엄마에 불과했다면, 오늘은 그때와는 분명 다른 사람이었다.

  왜일까— 현은 그 까닭이 아마도 이 집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파릇한 초록의 정원을 지나 현관을 열고 들어온 주택 내부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비단 평범한 가정집이 아니었다, 이곳은. 짙은 갈색의 원목을 사용한, 무게감 있는 공간에 벽 전체를 채운 책장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정원이 내다보이는 통창 바로 앞에는 손이 얼마나 닿았는지 반질반질한 책상이 놓여 있었다. 그래, 이곳은 단순한 집이 아니라 작업실이었던 거다. 그리고 신지영 씨는 엄마이기 전에 소설가이고.

 “오시느라 고생하셨어요. 차라도 한잔하시겠어요?”

 집안을 둘러보며 생각에 잠긴 현에게 신지영 씨가 나지막이 말을 건넸다. 여전히 처연함이 느껴지는 목소리였지만 그날처럼 당장에라도 부서질 것 같지는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보다 아드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그래요. 이게 그… 리얼돌 제작 때 필요하다는 인터뷰겠죠? 함께 응접실로 가요. 준비해 두었어요.”

*

 거실(이라 쓰고 작업실이라 읽는)보다 한결 햇빛이 잘 드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현은 지수를 향해 눈짓을 했다. 지수는 휴대폰의 앱 하나를 실행했다. 인터뷰 내용을 녹음하여 제작 과정에서 참고할 생각이었다.

 “신지영 고객님, 저희가 이제부터 녹음을…….”

 그때였다.

 “참, 대표님. 그리고 지수 씨. 제가 저기 소파 뒤에 캠코더를 설치해 두었어요. 저희 인터뷰 장면을 녹화해도 괜찮을까요?”

 지영 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깜짝 놀란 현과 지수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 2년의 동업 기간 동안, 이런 고객은 둘 다 처음이었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놀라셨죠? 지수 씨한테는 말씀드렸는데……. 제가 소설을 써서요. 그래서 늘 기록해요. 아, 두 분을 소설에 등장시키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저희 이야기 속에서 소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서— 그런 이유예요.”

 “아… 네.”

 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이 죽은 순간에도 소설을 생각하다니, 이게 바로 프로 정신일까. 아니면 슬픔을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몸부림일까.

 “그러면 저희도 녹음하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저희도 제작 과정에서 인터뷰할 때 놓친 부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지수도 지영 씨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녹음하고 녹화하는 상태에서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

 “주문서에 첨부하신 파일이 고인의 영정 사진, 맞을까요?”

 “네… 시현이의 마지막 사진이에요.”

 “얼굴은 그 사진으로 제작하길 원하시는 걸까요? 그 사진은 포토샵이 너무 많이 되어 있어서 작품이 부자연스럽게 보일 수도 있어요.”

 “아, 그럼 제가 최근 앨범을 보여드릴게요. 다른 걸 골라보세요.”

 현의 조심스러운 조언에 따라 지영 씨는 소파 옆에 쌓여 있는 파랗고 커다란 박스 중 하나를 뒤적이더니 ‘2024년 5월’이라는 견출지가 붙어 있는 두꺼운 가죽 표지의 앨범을 꺼내왔다.

 “시현이가 떠나던 달의 기록이에요. 매일 찍었어요. 적당한 사진, 골라보세요.”

 엄청난 양이었다. 얼굴만 근접 촬영한 것, 상반신을 찍은 것, 옆모습을 찍은 것, 전신을 찍은 것 등 종류도 다양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라면 모든 배경이 전부 집이라는 사실이었다.

 현과 지수가 작업용 사진을 고르는 동안 지영 씨는 창가로 가더니 조용히 전자 담배를 피웠다. 아들의 생전 모습을 보는 게 괴롭겠지, 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다시 지수와의 토론에 열중하였다. 그렇게 얼추 20여 장의 사진을 골랐다.

 “한 번 살펴보시겠어요? 마음에 드시는지…….”

 지영 씨는 원치 않는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혹시 고인을 촬영한 동영상은 없을까요?”

 지수가 사진을 주섬주섬 가방에 챙겨 넣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순간 지영 씨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그건 왜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동영상을 보면 아무래도 실물의 느낌을 더 생생하게 담을 수 있으니까요.”

 여전히 지영 씨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가방만 뒤적이는 지수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현은 둘의 대화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지영 씨는 잠깐 뭔가 생각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조금 전의 그 박스 중 하나를 다시 뒤적이더니 USB 하나를 꺼냈다. 겉에는 ‘2024.05.02. 20:00-24:00 / 방’이라고 적혀 있었다.

 “CCTV 컬러 녹화본이에요. 여러 각도에서 촬영했으니 참고하세요.”

 지영 씨는 지수에게 바로 그것을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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