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도 불지 않는 끈적한 날씨였다. 익사할 것만 같은 여름밤의 습도에 지쳐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밤, 다영의 등허리에 짠 내 나는 땀방울만 어느새 돋은 소름을 따라 송골송골 맺혔다. 제각기 솟아오른 건물이 떠받치는 도시의 어둠에는 별빛 한 줄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 죽음조차 아무도 반기지 않는구나…….’
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물론 없었다. 하지만 노란 원복을 입던 꼬꼬마 시절부터 휘황한 촛불이 가득한 무도회장에 투명한 유리 구두를 신고, 나풀대는 레이스 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며 환호성 속에 입장하는 꿈을 꾸던 다영이었으니- 마지막도 그처럼 반짝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던 그녀였다.
그런 다영이 초라하기 짝이 없게 자살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건.
하지만 실제 상황이었다. 다영은 지금 자신이 거주하는 20층 아파트 옥상의 잠금장치를 온 힘을 기울여 박살 낸 다음, 중력이 이끄는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위해 슬리퍼를 내던지고 난간에 올라선 채였다.
유서 따윈 쓰지 않았다. 죽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도 쪽팔려서였다. 그 때문에 자신이 세상에서 사라진 뒤, 경찰들이 생전 6개월 동안의 온·오프라인 기록을 뒤진다는 사실을 떠올리기만 해도 몸서리쳐졌다. 멋대로 숨진 원인을 재단하고 ‘주다영’이란 이름 앞에‘패배자’라는 낙인을 찍을 생각만 하면 끔찍했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다영은 이 사회의 패배자가 맞았다. 그러니까 제 발로 죽으러 온 게지- 진실을 기만하며 고고한 척 버티기에는 자신은 너무나 보잘것없는 인간이었다. 로또라도 당첨이 되어야 버티지, 이 빌어 처먹을 세상에서!
다영의 나이는 24살, 직업은 중학교 국어 교사이다. 작년에 처음 응시한 임용고사에 곧바로 합격하여 올해 관악구 남중에 신규 발령받아 3월부터 약 5개월을 근무했다.
학교 밖의 사람들은 이런 다영을 두고
“이야, 어려운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시다니 대단하시네요. 젊은 선생님이시라 학생들이 더 잘 따르겠어요.”
라고 말한다. 그럴 때면 다영은 그저 말을 아끼며 소셜 스마일링을 한 번 날려줄 뿐…….
다영의 진정한 교직 생활을 하,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 교사가 이런 말을 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손가락질하겠지만, 진짜 좆같다는 표현이 딱 맞지 않을까?!
다영도 처음부터 패배자는 아니었다.
시험이란 관문을 뚫은 공노비로서 당당히 나라의 명을 받은 자가 아니었던가.
2024년 3월 2일, 첫 출근일 아침. 다영은 아직 얼굴도 모르는 제자들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헤헹, 내 첫 제자들! 이 주다영이 마구마구 사랑해 주겠어. 국어란 게 뭔지 제대로 알려줘야지! 기다려라, 하트 뿅뿅♡’
뭐, 선배 교사들 말을 빌리자면 신규 뽕 맞았다는 게 딱 이런 기분이었으리라. 그리고 오전 수업을 마무리한 후, 다영은 교무실에서 넋이 나간 채 키보드만 부서지라 두드리는 동료 선생님들의 표정이 왜 그런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아…
아…….
학기 초 미친 듯이 밀려 들어오는 업무의 바닷속에서 간신히 희망(이라 쓰고 ‘교과서’라 읽는다)을 건져 올려 교실로 들어가면 아이들은 아무도 다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주무시면 감사할 지경, 휴대폰을 해주시면 참을 만한 수준, 교실을 뛰쳐나가면 환장할 수밖에 없었다. 한술 더 떠서 몇몇 망나니들은 어찌하여 빗자루를 각목처럼 휘두르며 교내 기물을 파손하는 것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들이 한가득이었다, 지금의 학교란 곳은.
“아, 여기 애들이 좀 힘들어요. 신규인데 어려운 곳으로 오셨네.”
함께 근무하시는 선생님들은 기절 직전인 다영의 의문에도 그저 덤덤하셨다. 그분들의 대답 밑에 숨겨진 날 것의 일상 그 자체에, 다영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묻지 않기로 했다.
“아, 여기 애들이 키가 좀 커요.”
혹은
“아, 여기 애들이 32번 버스 노선에 살아요.”
수준의 지극히 아무렇지 않은 답변.
따라서 그곳의 무너진 질서를 견디지 못하는 다영은 이방인이었다. 학생들에게는 병신같이 수업 중에 질질 짜는 젊은 꼰대, 교사들에게는 신규라서 애들도 휘어잡지 못하는 무능한 교사.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구조에 패배한 자.
덕분에 하루하루 숨이 턱 막히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니, 할 수 있는 게 애초에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날들이었다. 그래서 다영은 매일 실패만 했다. 어제도, 그리고 오늘도.
그리고 바로 오늘 3교시.
2학년 3반 수업이었다. 늘 엎드려 자던 녀석이 웬일로 자리에 없었다. 절반이 넘는 학생들이 교과서조차 없었지만, 그래도 다영은 프린트를 나누어주며 수업을 시작했다.
시간이 10분 정도 지났을까. 벌컥- 뒷문이 열렸다. 그 녀석이었다. 교실에 담배 냄새가 확 풍겼다.
“지금 온 거니?”
다영이 물었다.
“씨발, 지랄이야.”
녀석이 대답했다.‘야 이… 나도 성질 있다!’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으며 다영은 다시 한번 말했다.
“조용히 하고 자리에 앉아. 그리고 선생님께 예의 갖춰.”
“하, 지도 선생이라고 염병이네.”
“뭐라고?!”
순간 분필을 쥔 다영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성의 끈이 뚝, 끊어졌다. 결국 여기까지 오고 만 건가.
“너 교실 밖으로 나와, 지금!”
“좆같은 게 지랄하네. 어쩌라고?!”
평소에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이라는 녀석은 다영에게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부었다. 다영이 교사라는 사실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뭘 꼴아 봐, 씨발! 나가면 될 거 아니야!”
녀석은 몹시 흥분해 있었다. 다영의 무엇이 녀석의 심기를 그토록 건드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니, 이 정도면 처음부터 불편한 심기로 등교한 것이 분명했다.
녀석은 순순히 교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닫혀 있던 교실 문에 자신의 머리통을 쿵쿵 세차게 박았다. 이마에서 새빨간 피가 뚝뚝, 떨어졌다. 바닥의 움푹 팬 틈에 붉은 피가 고였다.
수업 중에 일어난 소란에 놀란 옆 교실의 학생과 교사들이 문틈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피투성이가 된 채 복도로 나온 녀석을 보고 남교사 한 명이 어깨를 붙들며 진정시키려 했다. 녀석은 그 손도 거칠게 뿌리쳤다.
“야, 이 좆같은 년아! 너 밤길 조심해!”
녀석은 마지막까지 하얗게 질린 다영에게 위협적인 말을 던지고는 씩씩대며 학교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종료령이 치기도 전, 다영의 수업은 난장판으로 끝나고 말았다.
딱 여기까지였더라면, 다영은 아마 옥상에 올라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말은 더 비참했다.
다영은 곧바로 교감의 호출을 받고 교무실로 불려 갔다. 내심 학교의 관리자이자 선배 교사인 교감에게 짧게나마 위로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게, 왜 약까지 먹는 애를 건드렸어요?”
예상을 뒤흔든 교감의 고성. 그 뒤에 어떤 말이 이어졌는지, 다영은 잘 들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 타인 앞에서 그렇게 많이 울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교사로서 가장 큰 치욕을 겪은 다영을 향한 교무실의 시선 역시 싸늘했다. 분명 위로의 말을 건네면서도 그 뒤에 따라붙는 ‘자기가 아직 신규라서 그래.’라는 은근한 질책. 동료 교사 중 그 누구도 같은 교사의 편이 아니었다.
다영이 마지막으로 찾은 사람은 학교의 최고 관리자인 교장이었다. 이 외롭고도 억울한 싸움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최후의 보루. 하지만 교장실의 문패는 분명 ‘재실’을 알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잠겨있었고, 휴대폰은 연결조차 되지 않았다…….
완벽한 패배다, 주다영.
오늘부로 주다영은 학교에 완전히 지고 만 거야.
패배자 주다영은 퇴근길, 결국 죽음을 결심했다. 그것이 단 한 번도 교사로서 승리하지 못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수업이고 업무였다.
최후의 만찬은 역시 치킨이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가족들과 웃으며 다영은 뼈에서 살을 말끔히 발라 먹었다. 반반에 무 많이. 그리고 엄마에게 잠깐 산책 좀 다녀오겠다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자살 길에 올랐다.
“하, 죽기 참 거지 같은 날씨네.”
마지막 순간까지 짜증만 나는 건, 역시 다영이 패배자여서일까? 난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아파트 화단에 울창한 나무의 창끝처럼 뾰족한 가지와 덫처럼 제멋대로 뻗은 잎, 표창같이 삐죽하게 돋은 풀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잘 떨어져야 곱게 죽을 텐데- 하는 생각과 어차피 죽을 거 무슨 상관이야-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 몰라!”
이것이 다영의 생전 마지막 말이었다.
다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아래로 훌쩍, 용감한 점프를 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