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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심한집사 Nov 04. 2024

2학년 1반 담임 주다영

 [사단법인 주광학원 주광고등학교     

  2학기 국어과 기간제 교사

  2학년 1반 담임교사 주다영]   

  

 운명의 장난질로 주광학원 주영규 이사장의 딸로 새롭게 태어난 주다영. 이것이 여름방학 동안의 점쟁이 노릇을 마무리하고, 본업으로 복귀한 그녀의 현 상황이었다.      


 - 전임교 남중에 이어 이번에도 남고 당첨

    :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축구하고 뛰어온 녀석들.

      덕분에 5교시에 교실로 입장하면 밀려오는 그윽한 땀 냄새.

        BGM. “쌤, 더워요! 아이스크림 사 주세효!”

 - 업무 현재 미정

    : 당신의 업무는 아무거나 시키면 다 하는 것입니다. OR 당신의 업무는 이 재단의 공쥬이므로 푹 쉬는 것입니다.

  - 2학기 담임으로 투입

    : 이것은 무조건 학급에 빌런이 최소 1명 있다는 뜻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리하여 지난밤 공들인 다영의 첫 출근 룩— 상의는 다영의 어깨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하늘색 반팔 블라우스였다. 뭐, 여기까지는 무난했다. 그런데 체육과를 연상케 하는 두 줄 옆 선의 까만 트레이닝 바지와 삼선 슬리퍼의 조화가 좀 아방가르드했달까. 이것도 뭐, 그럴 수 있었다.

 그런데 양팔을 화려하게 장식한 문신이란(물론 지난밤에 정성껏 붙인 타투 스티커지만 교감 티쳐가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다)! 문구는 물론 다영의 교육관이었다. 왼팔 ‘오직학생’, 오른팔 ‘전심교육’. 마무리는 전심으로 교육하고자 오른손에 쥐고 있는 드럼 스틱(이라고 쓰고 지시봉이라고 읽는다)…….     


 교감 티쳐는 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다.

 ‘이사장 딸이라더니…?! 뭐 이런 하…….’

 그러나 그는 역시 프로였다. 속내 따윈 내색하지 않고 다영에게 학교를 안내했다.

 “아, 우리 주광고는 학급 규모가 작아서 여기 교무실 분들이 전체 교직원이십니다. 선생님들, 여기 새로 오신 국어과 주다영 선생님이십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 부탁드립니다. 2학기부터 2학년 1반 담임을 이어서 맡아 주시기로 하셨어요. 참 이제 곧 전체 교직원 회의 시간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때 만나 뵙기로 하시죠.”   

 교감 티쳐의 소개를 들으며 손뼉을 치는 다른 선생님들의 표정 역시 얼떨떨해 보였다. 그만큼 다영의 이미지는 교무실 안에서 독보적이었다.

 ‘세상에, 이사장 딸이라고 면접도 없이 들어왔다더니… 저 꼴로…….’

 다영은 전임교와 달라진 교사들의 시선에 므흣한 표정을 지었다.      


 성공이다, 주다영.

 불쌍한 년보다는 미친년으로 사는 게 백배 낫다고.     


 교직원 회의 시간에 만난 교장 티쳐는 교감 티쳐에 비해 배포가 더욱 큰 분이셨다. 다영의 꼬락서니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는 타인보다는 오직 자기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여러분, 또 새 학기를 맞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주광고는!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는 학교! 그렇게 교사와 학생이 서로 성장하는 학교! 그런 학교 아니겠습니까! 모쪼록 모든 교직원분께서는 이번 학기도 어려움이 많으시겠지만…….’

 신규 교사였다면 분명 감명받았을 연설이었겠지만, 이제는 1학기 급식 좀 먹었다고 다영은 속으로 교장의 말에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교무 수첩에 아주 진한 글씨로 꾹꾹 눌러 교장의 말을 받아 적었다.     


 ‘단.한.명.의.학.생.도.포.기.하.지.않.는.학.교.’     

 어쩐지 앞날이 캄캄해지는 멘트였다.     


 수업 시작종이 치고도 무려 10분이나 지나서야 2학기 첫 교직원 회의는 마무리되었다. 2층 교실로 향하는 복도는 여전히 혼돈의 카오스. 몇십 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학교의 미스터리라면 언제나 복도에는 쫓고 쫓기는 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영은 복도 맨 끝에 위치한 2학년 1반 교실 앞문으로 쓱 입장했다. 학생들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모두들 휴대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누군가의 이름과 욕설이 섞인 고성이 난무했다.

 다영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교탁에 서서 교실 전체를 스캔했다. 그리고 뒤돌아 칠판에 분필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주 다 영     


 “야, 왔다.”

 “뭐?”

 “저기, 저기 봐 봐. 새 담임인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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