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며

by 심바

할아버지 입관식

임종을 보지 못한 나는 사실 계속 속이 체한 듯 답답했다

꼬르륵 소리는 나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는 그런 상태


오후 1시

전 날 밤 할머니와 엄마와 집에서 잠을 잔 후 서둘러서 병원에 갔다

가자마자 바로 지하 3층 영안실로 갔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영안실에 도착하자

그 옆에 하얀 국화와 장례지도사님이 만든 색색깔의 종이꽃이 보였고

하얀 천으로 얼굴을 덮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이미 염을 하고 수의로 묶여있는 할아버지를 보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보다 더 슬플 아빠와 삼촌 앞에서 오열하기 싫어서 온 힘을 다해서 참았다

숨을 고르려고 하니 덜덜 떨리는 몸과 손이 느껴졌다


아빠부터 차례로 할아버지의 차가운 얼굴을 만지며 온 몸을 주물렀다

생각보다 창백하지 않았던 우리 할아버지,

하지만 괜찮아 보이는 상태와 조금 달리 얼굴에 손을 얹자 어색한 촉감이 느껴졌다

차갑고 피부는 야들야들하고 그대로지만 속에서 느껴지는 냉동의 상태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싶었는데 손은 이미 수의로 감싸져 있는 상태였다

앞으로 가지런히 모여져 있는 손에 내 손을 대며 내 온기를 전하고 싶었다


앞으로 사십구 일 동안 심판을 받는다는 장례지도사의 얘기를 듣고

꼭 무사히 넘기고 좋은 곳에 가셨으면 하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이 할아버지 몸에서 손을 떼고 이런저런 설명을 들을 때에도

나는 계속 할아버지에게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냥 계속 나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얼굴에 하얀 천을 다시 덮어드리고 나서

또 한 번 여러 가지 육각형의 천으로 마지막 과정을 거칠 때

들어와서 보라고 했지만 들어가서 보지 못했다

쓰러질 것 같았다

창문 너머로 가족들은 들어가서 지켜보고

창문 밖에서 혼자 중얼거리며 할아버지 꼭 좋은 곳 가시라고

가서 좋아하시는 노래 많이 부르시고 나 안 지켜주셔도 되니까 할아버지 꼭 행복하시라고

아프지 마시고 하고 싶은 거 다 하시라고 기도했다

할아버지가 필요하면 내가 모든 신들에게 다 기도해줄 테니 꼭 아프지 말고 행복하라고.


가족들이 들어가고 나는 차마 못 들어갈 때 치매이신 할머니가 왜 우리는 안 부르니라고 묻는 순간 다시 무너질 거 같았지만 곧 내가 우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도 더 이상 말을 얹지 않았다


계속 몸을 떨며 흐느끼고 있으니 리더로 보이는 장의사 말고 다른 사람이 나보고 이리오라면서 마지막 관에 넣는 행위 같이하라고 손짓해서 조금이나마 내 힘을 보탰다


그렇게 관이 닫히고 이름을 쓰고 태극기까지 덮고 나니 정말 이제 얼굴을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드니 조금 더 오열했지만 곧 다시 빈소로 올라오고 보니 손님을 맞이해야 해서 참을 수 있었다


새벽에도 너무 피곤했지만 현충원에 제출할 서류들이 많아서 정신없이 버티다 보니 다음 날이 되었고 악쓰는 할머니를 데리고 서울 추모공원으로 갔고


화장을 했다.


화장하러 들어갈 때 또 한 번 울었고

관에 손을 대고 내 진심을 전하려 노력했다


그렇게 조금은 울음을 추스르는 시간이 단축되었다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아침을 먹으면서 기다리니 화장이 완료되었다고 수골실로 오라고 해서 갔다


블라인드가 올라가고 보이는 하얀 뼈들

종이전지 하나에 다 올라가는 173cm의 장대한 할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는 뼈를 보니 또 한 번 왈칵 눈물이 나왔고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이 떨렸다

구십이 세의 연세로도 병원 침대가 꽉 차게 키가 컸던 할아버지가

내가 아무리 커도 할아버지보다 작았는데

그런 할아버지가 한 시간 만에 한 줌의 가루가 되었다


허무했다

임플란트와 뼈는 불에 한 시간 동안 활활 타도 살아남는다니

사람은 고귀하지만 나약하구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약 백 년의 세월을 살고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되는 것이 결국 사람도 자연의 일부고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구나

어떻게 해서든 어떤 방식으로든 자연의 일부로 서서히 다시 돌아가는구나


예견된 이별이었는데도 이렇게 슬프고 그립고 아픈데

준비할 시간이 있었는데도 이렇게 보고 싶은데


아직은 그립고 슬프지만 이 마음도 추스르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처음보다 울음을 추스르는 시간도 많이 짧아졌다

내가 이렇게 슬퍼하면 할아버지가 편하게 못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나도 내 나머지 시간을 살아 내야 하기에 내 방식대로 추모한다

치열하게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살아생전의 영상들을 찾아보고 사진을 보다가 핸드폰을 꼭 껴안기도 하고


내가 생각보다 할아버지를 많이 사랑했나 보다

손을 많이 잡아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워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많이 잡게 되었다


서울 현충원에 모셨다

대전 현충원에 묻히고 싶어 하셨는데 이번 연도 사월에 만장이 되었다고 해서 납골당 밖에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차피 납골당일 거면 서울에 모시자 해서 신청을 했다


빠르게 승인이 났다


장례지도사님과 버스기사님이 하시는 말로는 서울현충원은 특히 조그만 흠집이라도 있으면 바로 승인이 거절된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할아버지는 떳떳하고 멋진 삶을 산 게 아닌가 싶다

군인으로서, 국가유공자로서의 삶

아빠와 삼촌의 아버지로서의 삶

할머니의 남편으로서의 삶

엄마의 시아버지로서의 삶

나와 동생의 할아버지로서의 삶

적어도 나와 동생에게는 최고의 할아버지였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등기 우편으로 故권 00님이라고 공식적으로 날아온 우편에 또 한 번 마음이 아려왔다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지만 이런 부분에서 피하려고 했던 현실이 또 다가오는구나

아직은 너무 슬프지만 곧 진정될 날이 오겠지


생각을 글로 토해내고 나니 조금은 진정이 된다

마음에 묻고 내 나머지 생을 나도 잘 살아보겠다

몇십 년 후 할아버지에게 갔을 때 나 이렇게 잘 살았다 말할 수 있게



할아버지

안녕


사랑해요


진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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