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편지

나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담겨있다

by 심바

나는 손편지들을 받으면 모아 놓는 편이고, 그 습관같은 강박은 15년째 진행 중이다. 서랍을 정리하다 문득 그 뭉치를 발견했다. 평소라면 눈길도 안주고 정리했을테지만 왠지 오늘은 읽고 싶었다. 눈에 보이는 것부터 천천히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짝꿍이었던 친구가 준 쪽지부터 최근 남자친구에게 받은 편지까지.

그 편지들은 온통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현재의 힘듦에 지쳐 우울이 나를 이루는 근간이라고 착각했구나. 난 나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구나. 난 그동안 정말 정신이 어린 채로 살았구나. 그래도 나를 사랑해줬구나. 남이 보기에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우린 지금껏 사랑을 나누며 서로 돕고 살았구나. 내 차분함과 조용함이 매력이 되어 그들에게 감정을 일으키는 순간들도 있었구나.


편지에 담긴 말투와 그들 각각의 글씨체가 오롯이 감정을 전해주고 있었다. 당시에 전하지 못한 사랑을 떨리는 손으로 차분히 써가며 지우개로 지워가며 보냈던 A, 중학교 때 친하게 지내며 서로의 생일을 축하하고 우정 반지를 맞추며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던 B, 신기한 인연으로 만나 가볍게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십년이 넘어 다시 보니 사랑을 전하고 있었던 C, 너와 지낸 시절이 짧게 느껴진다며 앞으로의 미래를 계속 다짐하듯 써내려간 현재 연인 D.

sns로 친구 찾는 시대라지만 아무리 뒤져도 닿을 수 없는 정말 끊긴 인연들이 준 편지도 당시의 나를 떠올리게 한다. 내가 이 애한테는 조금 쉽게 대해 상처를 줬겠구나, 그 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계속 지냈구나. 내가 참은 만큼 이 애도 참았겠구나하며 과거의 내 태도를 반성하게 한다.

자신을 잊지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친구가 당시에는 부담스러웠는데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동안 조금은 성장한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만큼 그 친구도 사랑이 고팠구나 싶었다. 그 당시에 조금 내가 더 성숙해서 그 친구에게 사랑을 나눠줬더라면 그 친구는 조금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내가 어린 시절 받은 편지는 내가 조금 더 성숙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주기도 한다. 난 왜 당시에 이런 속 깊은 말을 듣고 별로 감명 깊지 않았을까? 사실 감명을 받아도 지금과 이해하는 수준이 달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4살과 17살, 22살과 28살은 비슷한 삶을 살아왔다해도 조금은 숙성되니까.

사실 내가 남에게 준 편지는 내 손을 떠나 뭐라고 썼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남이 나에게 준 편지가 나에게 위로와 응원을 하듯, 내가 진심을 담아 썼던 편지라면 그의 진심에 닿았을 것이기에. 오늘 느낀 이 감정과 진심을 다른사람에게도 전하고 싶어졌다. 그 감정과 진심을 담아 편지지에 꾹꾹 눌러 떨리는 손글씨로 전할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서로를 돕고사는,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기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 02화어린이, 어린이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