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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봉란 Dec 02. 2023

토해내는 책장을 정리하며

D-33,32,31



버린 책과 남긴 책 사이,
나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선명해진다.






이사 오면서 책장 3개를 버렸다. 책장만 비우고 책은 다 챙겨 왔다. 6.25 같은 난리가 일어났다.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는 친구를 초빙했다. 그녀의 진두지휘하에 처분할 책 한 박스를 골라낸 후 나머지는 도서관처럼 분야별로 구역을 나누어 주기로 했다. 신앙, 음악, 에세이, 여성학, 소설, 자녀 교육, 고전, 악보, 그리고 애들 책, 애들 책, 애들 책......



어려운 일이었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은 둬야겠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은 꼭 남겨야 하고, 언젠가 자료로 씀직한 책도 버릴 수 없고, 추억이 담긴 책은 잘 보관해야 한다. 망설이며 주저하는 내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보지 않을 책을 가차 없이 담으라고. 예를 들어 [농부와 산과 의사]는 의학적 기술이 많이 개입된 산업적 출산을 반대하고 자연주의 출산을 지지하는 책인데, 저자의 사회적 통찰력이 돋보여서 간직하고 있었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이미 아이가 둘인 내게, 친구는 셋째를 낳을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소리쳤더니 그녀는 그럼, 이 책은 앞으로 필요가 없겠다며 비움 상자에 가차 없이 골인시키라고 종용했다. 성화에 못 이겨 상자에 넣었다가 그녀가 가고 나서 다시 꺼내왔다.



불필요한 책, 두 번 보지 않을 책이라... 각자의 기준에 따라 한 번 보고 말 일회용 책이 더러 있다. 글공부를 함께 했던 지인 중 하나는 책을 냈는데, 프롤로그에 나무들에게 미안하지 않은 글을 쓰고 싶었노라고 했다. 아마 모든 작가들은 책을 쓰면서 부디 자기 자식 같은 글이 오래도록 읽히고 사랑받고 보존되길 바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많은 책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신간이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는 와중에 두 번, 세 번 또 보고 싶은 책은 드물다.





그나마 애써 비운 책들은 대체로 실용서였다. 아직은 못 버리지만 육아 관련 서적들은 여섯 살 둘째가 좀 더 크고 나면 나눔 할 예정이다. 책을 내는 방법이라던가 글쓰기 관련 작법서들도 정말 많은데 내가 글을 잘 쓰게 되면 반 정도 덜어낼 수 있겠다. 이 책들을 책장에 계속 꽂아놓는 이유는 실생활에서 육아를 하다 문제가 일어났을 때, 글이 잘 안 써질 때, 펼쳐보고 참고하려는 마음도 있겠지만 그 책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왠지 나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 같아서다. 몇 장 읽지 않은 그 책들이 곁에 있어서 나는 언젠가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고, 아이들이 평온하고 행복하게 자랄 거란 안도감이 생긴다. 착각일지언정.



미니멀라이프 선생님들은 조언한다. 무엇을 버릴지 너무 고민될 때는 남길 것에 집중하라고.

시를 쓰는 친구는 돈이 없어도 도서비만은 아까워하지 않았는데, 잦은 이사를 하며 책의 절반 이상을 버렸다고 했다. 시집을 간직하고 소설과 에세이류는 내보냈다. 시인다운 결정이다.



반면 나는 에세이를 아낀다.

평범한 삶에서 재미있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인생의 숨은 의미를 길어내는 에세이들이 내겐 보물이다. 사회 문제나 현상을 자기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풀어낸 글을 읽을  경외감을 느낀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곧 내 얘기이므로 일면식 없는 동료의 출산물이며, 지성을 깨어나게 하는 책을 도끼라고 했다면 내면 깊은 곳에 파문을 일으키는 신앙서적들은 영혼의 양식이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이런 책을 짓고 싶다.


1층 : 음악과 예술 / 2층: 글쓰기와 책쓰기 / 3층 : 여성
요즘 읽는 책







D-33


친정 엄마, 동네 이웃에게 얻어먹고 비운 통들을 되돌려 드렸다. 뭔가 채워서 드리고 싶었지만 솜씨가 없어 팥붕과 슈붕을 사서 함께 넣어 드렸다.



D-32


아이가 어릴 때 책 욕심을 많이 부렸다. 좋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말 그대로 돈만 생기면 아이책을 사들였다. 책장이 하나 둘 늘어났고, 그마저 부족하면 바닥에 탑처럼 쌓아놓았다. 틈새 공간까지 모두 책이 들어찬 후에는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었다. 책을 더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은 도서관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책육아 좀 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이다. 차라리 어린이 도서관을 다니면 될 일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집 근처에 없었고, 육아하면서 늘 체력이 부족해 멀리까지 도서관 가는 것이 힘들었다.



집이 포화상태가 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방법을 찾아보다가 어린이 책 대여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리틀 코리아라는 곳을 애용하고 있다.) 연간 무제한 교환권을 끊으면 원하는 단편과 전집을 일 년 내내 마음대로 빌릴 수 있다. 택배로 모두 진행된다. 첫째 아이가 2학년이 되어 어느 정도 커서 이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니 빌려봐도 될 책과 자기가 꼭 사고 싶은 책을 구분하더라. 아이가 어릴 때는 반복해서 책을 읽으려는 경향이 있고 또 더 어릴 때는 책을 물고 빨기 때문에 책을 사는 것이 편했다. 둘째가 크고 나면 이 어린이책들을 모두 비워야 할 텐  아이도 나도 연령이 지난 책들에 정이 들어서 어찌하나 벌써 걱정이다.



이케아 빌리 책장 비움
지난 캘린더와 노트 가정통신문 등 버릴 지류가 많았다



D-31


아이들 책은 하드커버 전집이 많아 상당히 무겁다. (이삿짐센터에서도 가장 싫어하는 류의 고객이다.) 그것들을 조립형 이케아 책장 '빌리'에 있는 대로 쑤셔 넣었더니 선반이 무너졌다. 책장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아래로 옆으로 모두 휘어버렸다. 지지대 나사를 다시 고정하고 나무판을 조심히 얹어 가벼운 책 몇 권만 꽂았다. 간신히 버틴다. 책장을 꽉 채울 욕심을 버리고 선반 위의 잡동사니들을 깔끔하게 치웠다.


비포

애프터


무거운 아이 책을 둘 공간을 물색했다. 집에 책장을 하나 더 들일까 싶었지만 가구를 자꾸 늘려가지 말고 창의적으로 공간을 활용할 방법을 물색했다. 지난 시간에 텅 비워냈던 화장대 아래 공간이 제격이다.


정리정돈의 스승 비채나쌤은 이런 알록달록 공간은 천(흰색, 미색)으로 가리면 깨끗하고 단정해보인다고 했다.






+ 연재가 하루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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