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로 광야의 시간을 홀로 견딘 사람들
애도 상실 애도 상실 나눔으로 동반 성장하기나눔으로 동반 성장하기
애도 상실 나눔으로 동반 성장하기
자신의 애도 상실 경험을 나누는 시간은 무거웠다. 한 사람의 아픈 삶의 일면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지점이었다. 사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각자 삶의 과제로 보였다. 비록 온라인 현장이었지만 슬픔을 나누는 영혼의 향기가 위로의 눈빛으로 가득했다. 각자의 경험치가 모여 모두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애도 수업의 본질을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마음으로 애도자와 함께 머무는 것, 즉 동반하는 것은 애도 수업을 받는 사람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일지도 모른다. 서로가 견뎌낸 광야의 시간이 또 누군가에게는 닥칠 예비된 상실이 될 테니까.
사별 당시의 고인과 보낸 마지막 모습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지탱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는 것 같다. 이 세상을 잘 떠나가는 것. 웰다잉 하는 것이 산 자와 죽은 자의 다리를 연결하는 것인 것 같다. 수강생 대부분이 아버지 사별이 많아서 놀라웠다. 주변에서 아버지 사별자와 애도를 마음껏 나누지 못했는데, 상실 경험을 들으면서 치유가 되고 감정이입이 되었다. 형제간들과 아버지 사별을 나눌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사별의 종류 중에서 내가 아직 겪지 않은 유형은 제2의 나의 모습이 상상이 되어 공감되고 위로가 되었다.
자녀 사별, 부부 사별, 반려견 사별 등 사연마다 마음이 촉촉해지고 울컥했다. 슬픔과 눈물을 자제하며 자신의 글을 담담하게 읽는 수강생들 삶이 그려지고 친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현종 시인은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의 일생이 온다(방문객)고 했던가. 한 사람의 일생 중에서 한 획을 긋는 중요한 개인사이면서 우리 모두의 사연이기도 했다.
이렇게 슬픔은 보듬고 나누어야 치유가 된다. 숨기고 외면하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듯 애써 모르는 체하는 것은 진정한 애도 방법이 아니다.
고난 당한 사람을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가? 바른 위로란 존재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위로를 받고 위로의 방법을 터득하고 배워야 한다. 우리는 상실과 친구가 되어야 하며 힘든 과정에 있는 이웃보다 앞장서지 않고 나란히 걷는 것이 위로의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