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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덕이 Oct 20. 2024

느슨하게 요리하기

요알못이 요리하게 되기까지

나는 30살 전까지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단순 조리나 라면 끓이기는 몇 번 해봤지만 그때마다 물라면이 되어서 이후에는 라면 잘 끓이는 동생에게 아웃소싱했다. 원재료부터 사 와서 집에 있는 재료만으로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는 진짜 요리는 해본 적이 없었다. 모델링이 중요한 이유는 관찰하는 대상을 보며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우리 집엔 모델링할 대상이 없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쁘셨고 가끔씩 가족 식사를 할 때면 바쁜 부모님은 거의 외식을 했다. 5살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이 성인이 되고 난 이후에는 철없는 누나는 동생의 요리를 얻어먹으며 연명했다. 집에서 혼자 먹어야 할 때는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3분 스파게티 같은 레토르트 식품을 먹거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밖에서 약속으로 해결했다. 요리를 할 필요성은 아예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결혼을 했다. 결혼 전에 어머니는 과일도 못 깎고 밥도 못 하는 딸이 어떻게 먹고살지 걱정이 많았다. 물론, 나도 걱정이 많았다. 남편도, 나도, 둘 다 요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초반에는 외식과 배달을 많이 시켜 먹었는데 이것만으로 생활을 이어나가기엔 생활비에도, 건강에도 직격탄이 오는 느낌이었다. 좀 더 이른 나이에 이미 독립한 성인이라면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법을 알았을 테지만 어른이였던 30대의 나는 그제야 온전히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가는 그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자신의 삶을 책임진다는 뜻은 다양한 영역에서 스스로를 챙김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일은 즉 먹기일 것이다. 처음으로 ‘내’ 가족의 식사를 챙기게 된 4년 차 부부의 발달 과정을 공유해 보겠다.

 

결혼 전 가장 걱정했고 많은 논의를 했던 주제 중 하나는 가사노동의 영역이다. 프리랜서인 나와 풀타임 직장인인 남편으로 구성된 우리 가족은 아무래도 시간적 여유가 좀 더 많은 내가 가사노동을 더 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 같았다. 문제는 기존 <느슨하게 정리하기>에서도 적은 것처럼 내가 가사노동을 잘 못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으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몇 가지는 노력해도 훨씬 더 깔끔한 남편의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함정이었다. 마치 남편들이 열심히 노력해도 더 높은 기준을 가진 아내의 성에는 차지 않는 것처럼… 생물학적 성별로 ‘아내’라는 역할을 부여받았지만 사회적 기준에서는 ‘남편’ 역할을 맡고 있는지라 가사노동의 범위를 정할 때 남편이 하기 어려우면서도 상대적으로 내가 할 용의가 있는 ‘요리’를 담당하기로 정했다. 생각해 보면 그전에 요리를 거의 해본 적도 없는데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의 식사를 책임지겠다고 나섰지만 초반에는 배달도 종종 먹었고 외식도 자주 했다. 이후에는 반찬을 주문해서 먹어본 적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일회용 용기가 너무 많이 나와 제로웨이스트 삶을 추구하려는 모습과 상반되어 양심에 찔렸다. 무엇보다도 야심 찬 신혼부부답게 ‘건강한 집밥’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지라 우리 집에서는 건강한 집밥을 실천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마침 ‘어글리어스’라는 채소발송 서비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 번만 더 시키면 최종 레벨인 슈퍼 어니언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은 엄청 규모가 커졌지만 2021년 9월 첫 배송을 받았을 때는 아직 소규모의 스타트업 느낌이었다. 서비스가 론칭됐을 때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안정화되길 기다렸다가 약 반년 후에 처음으로 주문을 했다. 


받은 야채들은 신세계였다. 야채는 슈퍼에서 예쁘게 포장되어 깨끗하게 오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 생각이 없었던 도시인에게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신선한 야채가 온 것이다. 어글리 한 취지에 맞게  야채들은 흙이 그대로 묻어있거나 모양이 울퉁불퉁하거나 크기가 너무 크거나 작았다. 야생의 느낌이 물씬 풍겨 오히려 좋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향과 맛이었다. 슈퍼나 마트에서 갓 사 와서 먹을 때보다 훨씬 향이 진하고 맛있던 것이었다. 최소한의 유통 과정을 거쳐 먹는 제철채소란 이런 느낌인 걸 처음 알았다. 결혼 전에도, 후에도 다행히 집 근처에 협동조합이 있어 그전에도 한살림이나 오아시스 등에서 야채를 사 먹었지만 그래도 맛이 달랐다. 


무엇보다 처음 보는 야채와 이를 어떻게 요리할 수 있을지 적혀있는 레시피가 동봉되어 요리할 맛이 나게 했다. 요리는 귀찮아 하지만 호기심과 개방성은 높은 덕분에 거의 매 끼니마다 다른 걸 먹어야 질리지 않는 내게 새로운 야채와 이를 시도해 볼 레시피는 그 야채들을 활용하여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게 했다. 덕분에 첫 1~2년 동안은 요리를 정말 많이 했었다.


신혼 초기에는 적응할 부분도 많고 일도 많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 해보는 활동이 가져다주는 엔도르핀과 도파민의 힘으로 요리를 감행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점 일이 많아지고 느슨해질 수 없을 만큼 바쁜 생활 주기가 다가오면 싱싱한 야채들은 다음 야채 배송이 올 때까지 요리되지 못 한채 냉장고 한편에서 생기를 잃어갔다. 이 과정을 몇 달을 반복하니 돈도 돈이지만 야채한테도 못 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 구성원들이 모두 건강한 집밥을 먹는 것이 중요하지만 내가 아무리 남편보다 시간이 많을 프리랜서라 할지라도 풀타임 가사노동자는 아니란 점을 스스로에게 상기시켜야 했다. 남편을 포함한 그 누구도 내게 요리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느슨하지 못 한 나의 성격은 스스로에게 너는 프리랜서니까, 시간 가용성이 높으니까, 남편보다 돈을 더 적게 버는 달에는 가사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부여하고 있었다. 프리랜서 특성상 때로는 근무 시간이 정해진 직장인보다 더 많을 때도 있다는 점은 왠지 변명거리가 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이는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결국, 어느 정도의 타협이 필요했다.


4년 차 부부의 현재 식탁 모습은 다음과 같다: 평일은 저녁에 강의가 있거나 오전, 오후 모두 수업이 있는 경우가 많아 집 근처 반찬 가게의 반찬들로 해결한다. 드디어 이 동네에 거주한 지 4년째인 올 해부터 근처 반찬 가게를 처음 이용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알차고 여러 반찬 가게를 돌아가며 방문하니 나름 다채로운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매주 한 번은 만나 점심을 함께하는 엄마의 반찬 공세가 큰 도움이 되었다. 평일에는 밥을 하는 것만으로도 벅찰 때가 많아 겨우 밥을 하고 냉동식품이나 반찬으로 식사를 한다. 주말이 느긋할 때는 하루 한 끼, 정말 느긋한 날은 두 끼 모두 요리를 한다. 채식 옵션 추가에다 맵고 짠 걸 잘 못 먹어서 집에서만큼은 저염식을 하는 부부인지라 웬만한 시판 양념장도 잘 사지 않는다. 냉동 볶음밥을 사도 원래 양만큼의 맨밥을 넣어야 간이 알맞아서 냉동식품을 먹는 날에도 추가로 야채를 잔뜩 넣어야 겨우 간이 맞는다. 이렇게 먹어도 정말 건강한 집밥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지만 대신 느긋한 날에는 채수부터 만들고 최대한 신선한 야채를 있는 그대로 먹으려고 노력하는 요리를 만들기에 이걸로도 충분하다고,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려 노력한다. 물론, 직접 요리해서 먹는 음식은 노력 대비 결과가 매우 만족스럽기에 더 많이 요리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내년에는 어떻게 좀 더 요리를 많이 하는 한 해가 될지 궁리해 보려 한다. 

 느슨하게 요리하기에서는 요리뿐만 아니라 조리도 요리다. 때로는 밥만 지어서 밖에서 사 온 반찬과 함께 먹는 것도 포함이다. 최근에는 채식 햄을 찾아서 몇 년 만에 햄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고 있는데 만드는 시간은 10분도 안 걸리지만 이 또한 요리다. 우리 가족이 먹는 음식에 약간이라도 손길이 닿았다면 그것이 바로 느슨하게 요리하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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