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중반의 딩크 프리랜서는 표준의 삶과는 거리가 멀다. 보통 30대는 일과 육아로 바쁜 시기다. 카더라에 따르면 30대의 인간관계는 조직과 자녀 관련 인간관계가 곧 사적인 인간관계가 된다고들 한다. 하지만 프리랜서로서 그 어떤 조직에도 속해 있지 않고 비대면 또는 건 바이 건으로 일하는 경우, 단기적으로 유지되는 몇몇의 업무적 인간관계만이 존재한다. 자녀도 없기에 자녀와 관련된 인간관계도 전무하다. 딱 한 번, 함께 일한 사람들과 1년에 한두 번 정도 모임을 하는 사이로 발전되었지만 이 모임은 7년 간의 프리랜서 생활 중 최초였다. 프리랜서의 미덕은 일과 관련된 사람은 일할 때만 보며 그 기간이 장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아주 드물게 일하며 만난 사이 중, 친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더 이상 20대처럼 술 한 잔 하면서 친해지자고 하기도 어려운지라 마음으로만 바라고 보낸다. 불행 중 다행은 그래도 크게 아쉽지 않다는 것이다.
SNS를 안 하기에 지인들과의 주 연락 수단은 카톡이다. 만나서 하는 대화를 가장 선호해서 카톡으로는 간단한 안부 또는 약속을 잡는 용으로만 사용한다. 문자나 전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현재 카톡 친구 목록은 총 23명이다. 그렇다. 전체 친구가 23명이다. 항상 20명 이하로 유지해 오다가 요즘 좀 는 숫자가 23명이다. 친구들은 이렇게 적게 카톡 친구 수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반대로 나는 친구 목록이 세 자릿수 이상인 친구들에게 놀란다. 최근 들은 반가운 소식은 내가 이렇게 적은 친구 수를 유지한다는 사실을 듣고 본인도 동기부여되어 자신의 카톡 친구들을 정리했다는 친구의 이야기였다. 내 라이프스타일을 남에게 강요하지 않지만 누군가가 내 삶의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고마우면서도 참 기쁘다.
23명 중 8명은 가족 및 친척이다. 그럼 총 15명이 학교 및 사회에서 만나 현재까지 나와 인연을 이어가 주고 있는 소중한 타인이라는 뜻이다. 가장 짧은 인연은 6년, 가장 긴 인연은 21년 정도 된 인연이다. 이 목록에 있는 사람들은 1년에 최소 한 번은 보는 사람들이며 내가 경조사를 챙기는 사람들 이자 나의 경조사에 망설임 없이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애초에 경조사에 부를 사람들이 많지 않기에 코로나로 인한 규제가 가장 심할 때 결혼해서 참 다행이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곤 한다.
프리랜서로 근무하기에 평소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은 많고 대상은 매 번 바뀐다. 이메일, 문자, 카톡, 전화 등 다양한 수단으로 연락하지만 실제로 핸드폰 저장까지 되는 업무적으로 만난 사람은 거의 없다. 프리랜서로서는 자격 실패라고 볼 수도 있고 네트워킹이 전혀 안 되고 있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일시적인 연락처를 저장했다가 이후에 지우기에는 내 귀차니즘이 너무 크다. 다행히 카톡은 저장하지 않아도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고 문자도 내역이 있으니 계약 기간 동안은 누군지 헷갈릴 염려는 없다. 가끔씩 저장 안 된 번호로 전화가 오면 약간의 어색한 정적이 흐를 때도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저장하지 않고 계약 기간이 끝나면 다시 일하지 않을 곳과는 대화 내용을 지우고 다시 연락할 수도 있을 곳 같은 경우는 대화 내용을 남겨놓거나 숨김 처리한다. 다시 연락할 수도 있을 곳 같은 경우도 연락처를 저장하는 건 유예한다. 실제 저장까지 간 경우는 한 조직과 3년 정도 일한 경우였다. 1년 차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저장을 하지 않았고 2년 차는 올 해가 마지막일 수도 있기에 저장하지 않았다. 3년 차 정도 되니 이제는 업무 상으로도 자주 연락하게 되어 드디어 연락처를 저장했다. 하지만 카톡 친구로 등록하지는 않았다. 카톡 친구는 ‘친구’라는 표면적 표현 그대로 내 친구들 만을 위한 공간으로 남겨놓고 싶다.
프리랜서는 네트워킹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상대방은 나를 아는 것 같은데 나는 누군지 도저히 모르겠는 업무 연락을 받을 때마다, 가끔씩 남편이 그래도 현재 일을 진행 중인 사람들 연락처는 저장해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 어린 말투로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흔들린다. 시행착오를 겪고 다다른 현재의 모습이 내게 최적의 세팅인 걸 알지만 사람인지라 현재의 세팅이 최고의 세팅인지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최고를 바라는 마음이 느슨하게 살기와 상충함을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항상 최고를 목표로 삼을 것을 당부하고 다다를 수 없는 이상에 대한 불안감을 연료 삼아 삶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살고 있는 이상, 우리는 모두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내 대인관계 패턴을 보고 놀라고 때로는 부러워한다는 뜻은 이런 패턴이 비일상적이며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라이프스타일을 살아가려면 스스로를 잘 알고 이미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쳐 어느 정도 데여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구축한 라이프스타일일지라도 당연히 흔들릴 때가 있다. 특히 친구들이 결혼 후 하나, 둘,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삶의 경로가 많이 달라지기 시작하면 우리가 물리적으로 함께 하기 어려움을 안다. 실제로 그렇게 삶의 경로가 달라져서 이미 각자의 길을 걷고 있는, 연락되지 않는 옛날의 친구들이 많이 있다. 얼마 없는 대인관계에서 점차 빠져나가는 인원만 늘어난다면 노후에는 어쩌지 라는 막연한 걱정도 있다.
그럴 때면 이렇게 살아온 지난날이 썩 괜찮았음을 상기한다.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는 모두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들이다. 카톡에 있는 친구들의 사진 프로필을 볼 때마다 정말로 궁금한 사람들의 근황을 볼 수 있어 좋다. 불필요한 경조사에 갈 일이 없어 주말이 자유롭다. 결혼식 성수기 시즌에는 하루에 결혼식을 두 번 참석한다는 친구의 근황을 들으며 지금까지 참석한 결혼식이 10번도 안 되는 스스로가 아웃라이어임을 다시금 느낀다. 어릴 때는 부러웠지만 지금은 친구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경조사에 누굴 어디까지 불러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네트워킹을 못 하는 프리랜서이지만 다행히 일감은 끊기지 않았고 상대방은 내 연락처를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는 연락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친구들이 출산과 육아를 어느 정도 겪고 아이가 자라 본인의 시간이 좀 더 유연 해지면 다시 연락이 닿는다. 내가 정말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니 상대적으로 시간과 노력을 더 쏟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만나기도 하고 집에 놀러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은 가족과 보낼 시간이 많다. 나이가 들면 아마도 나랑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나 모임이 더 활성화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때가 오면 또 그때의 느슨한 대인관계를 새롭게 구축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