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60대 여성 환자분을 처음 본 것은 코로나가 유행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멀쩡하게 걸어 다녔지만, 고관절과 허리가 아프다고 찾아오셨습니다. 퇴직을 했다고 했는데, 진찰해 보니 별다른 이상은 없었고, 근처 병원에서도 모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번 정도만 치료하고 더 이상 내원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유행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한의원을 8개월 정도 운영하지 않았는데, 그 때문에 저는 더 까맣게 잊고 지냈습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문을 다시 열고 몇 개월이 지난 뒤에 그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한눈에 봐도 다리를 이상하게 절고 있었고, 체중은 거의 40~50kg 정도가 불어있었으며, 얼굴도 하마터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어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진료실에 들어와서는 별안간 저를 쏘아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 때문이에요.”
“네...?”
한참 침묵이 흘렀습니다. 저는 무슨 일인가 궁금했습니다. 자초지종은 이랬습니다.
10일 동안 3회에 거쳐 치료받았던 그분은 차트를 보니 한참 전부터 근처의 다른 의원에도 다니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의원을 운영하지 않고 3~4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러 의원에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몸이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병원으로 찾아갔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니 호르몬이 몹시 이상했고, 병원에서는 왜 이제야 왔냐는 말과 함께 수술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수술실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수술이 잘못되어 5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추가로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신장과 소장의 상당 부분을 떼어냈고, 평생 동안 약을 먹기 시작해야 했고, 중간에 척추와 어깨에도 인공물을 넣는 바람에 걷는 것이 전체적으로 부자연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옆에 의원에 했더니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고, 그래서 그렇다고 이야기하니 그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한의원으로 가보라고 한 것입니다. 결국 모든 문제의 원인은 제 탓이 되었습니다.
“원장님이 빨리 병원에 보내줬어야지 내가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됐어요!!”
환자분은 몹시 서운해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저도 답답했습니다. 물론 그분은 저희 한의원이 문을 닫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았고, 아직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저는 그때 문을 닫고 진료를 보지 않았어요.” 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말하면 환자분이 더 서운할 것이 분명했고, 그러면 안정을 취하지 않고 또다시 여러 병원을 전전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버텨야 할 환자분의 회복이 급선무였습니다.
사실 퇴직 후에는 누구나 몸이 아픕니다.
거짓말 같아 보여도 진짜입니다. 그렇게 통증을 수년간 호소하다 보면 식구들도 서서히 떠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이유로 몸이 회복되더라도 대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퇴직 후 아픈 건 짧으면 6개월, 길면 2~3년 지속됩니다. 여기에 더해 사람들은 ‘이제 퇴직을 해야 하니까 몸을 다 고쳐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기왕이면 빠르고 완벽하게 고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불안함을 호소하게 되고, 통증을 더 부풀려서 생각하게 되고, 이곳저곳 하지 않아도 되는 처치나 수술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 환자분도 8개월이 안 돼서 크고 작은 수술을 10회 이상 받았습니다.
게다가 건강에 대한 불안감도 이 시기에 가장 큽니다. 80~90대 어르신들은 대개 갈 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 어느 정도는 아파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0~60대 환자분들은 지금 아프면 평생 동안 고생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게다가 손에는 퇴직금이 들려있습니다. 그래서 A라는 병원에서 주사를 맞고, 안 나으면 B라는 병원에 가서 또 치료를 받습니다. A병원의 치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렇게 C, D, E, ... 하는 식으로 병원 치료를 돌아가면서 받다 보면, 의사나 한의사들의 마음과는 달리 같은 치료를 너무 많이 받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런 분 중 일부는 몸에 큰 이상이 생깁니다. 그 이상으로 몸의 균형이 무너져서 하지 않아도 됐을법한 수술을 꼭 받아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고,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체적으로 망가져서 더 큰 수술을 여러 번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잘 걸을 수 있는데 더 잘 걷기 위해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받고, 기왕이면 안 아픈 다리까지 한 번에 해 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원장님 하는 김에 멀쩡한 다리도 인공관절 넣어줘. 같이 해야겠어."
“아.. 아프셔서 어떻게 했어요. 제가 더 빨리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수술을 그렇게나 많이 하셨다니.. ”
제가 이 말을 하자마자 환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원장님 탓이겠어요 제가 너무 서러워서 그랬어요..”
“더 애써볼게요.. 낫게 못 해 드려서 죄송해요..”
“그런 말씀 마세요.”
이야기를 종합해 보니 이제 더 이상 시술과 수술을 권하는 병원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깨도 아프고, 고관절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온몸이 다 아프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에는 새로운 병원에 가서 새로운 수술을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시기도 했고요. 이때만 물어보신 것이 아니라 그 뒤로 장장 4년 동안 저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원장님 이거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저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ㅠㅠ”
“아니에요. 어머님도 아시다시피 다른 의사 선생님들도 불필요한 걱정 하지 말라고 하셨고.... 저도 같은 의견인데, (중얼중얼).....”
“그래도 너무 아픈데요. 수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럴 땐 심호흡을 하고 나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뜸 받고, 한약 먹고 나서도 계속 아프세요?”
“받을 때나 먹을 때는 조금 좋은 거 같아요.”
“3년 전에 처음 왔을 때보다 더 아프세요?”
“아유, 그때에 비하면 완전 용 됐지. 그렇게 아프면 나 못살아.”
“그러면 치료할 때마다 조금씩 좋아지고, 3년 동안 계속 좋아졌고, 주치의들도 더 이상 수술받지 말라고 말하는 거잖아요?”
“네.”
“그러면 조금만 더 기다려볼게요.”
“(마지못해) 네..”
그리고 벌써 6년이 지났네요. 이제 이 환자분은 한 달에 한 번 오면 많이 내원하는 것입니다. 수영, 영어, 사이클, 요가 등등을 배우러 다니느라 정말 정신이 없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퇴직한 분들이 원내에 내원하시면 이분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그러면 환자분들은 대개 놀랍니다. 그리고 희망을 갖기도 하고요.
“진짜예요 원장님?”
“그렇다니까요.”
“아.. 원래 아픈 거구나.”
환자분들이 불안해하시면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맞아요. 건강검진도 꾸준히 하시는데 갑자기 큰 병이 생겼을 리는 없고요. 이때가 가장 불안한 때이기 때문에 섣부르게 큰 결정을 내리거나, 우울함에 빠져 사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1~2년 정도 편하게 쉬면서 좀 몸을 돌보세요. 그러면 6~12개월 정도 지나고 나서부터 아픈 게 조금씩 사라져요. 그때에도 아프면 그때 결정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특별히 이상이 생긴 것 같으면 빠르게 병원으로 보내드릴 거니까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요.”
건강하던 분도 퇴직 후에는 거짓말 같이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공장에서 12시간씩 팔을 써서 아픈 어르신들은 퇴직하게 되면 갑자기 더 아픕니다. 생각보다 훨씬 아픈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두려워하게 되고 하루빨리 낫게 할 방법을 찾아서 여기저기 떠돕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에 잠깐 6~12개월 정도 기다리고, 마음을 가라앉히면 몸도 자연히 가라앉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6개월 정도 쉬다 보면 거짓말같이 아픈 곳이 하나둘씩 줄어듭니다. 만성질환의 경우 그러고 나서 1년 정도 생각해 본 다음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다고 말씀드립니다.
명심하세요 60여 년 동안 힘겹게 살아온 육체와 정신을 가라앉히는 데에는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남에게 온전히 몸을 맡기기 보다는
자신의 몸이 말해주는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아차, 그분은 이제 텃밭도 가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자신이 길러서 만드신 깻잎장아찌를 가끔 가져다주십니다. 처음 그 장아찌를 가져다 주신 뒤로 눈에 띄게 내원 횟수를 줄이셨는데, “그냥 만들었어” 하는 말씀과는 달리 먹었던 장아찌 중에 최고였습니다. 깻잎장아찌가 그리울 때도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안 가져다주셔도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왜일까요?
“어머 원장님 정말로 그래? 그래서 그분들한테 내 이야기해 주는 거야? 아이구 내가 원장님한테 고맙지. 나 진짜 요즘은 용 됐다니까. 얼마나 살기 좋은지 몰라. 원장님 너무 고마워. 도움이 된다면 그분들한테 내 이야기 얼마든지 해도 좋아요. 고마워^^”
고맙긴유... 제가 오히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