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보복하고 있었다

보복적 수면 지연 이야기

by 제인 Jane




이상하게도, 계획했던 일을 다 못한 날에는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밤 11시가 다 넘어도,

피곤한 눈을 하고는 노트북을 켜고는 했다.

그리고 그날 못한 업무 메모를 마저 정리하거나,

읽다 만 책을 다시 펼쳤다.


그럴 때는, "그냥 자면 될 걸" 생각하면서도,
무언가라도 하나를 더 하고 자야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그건 아마도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나의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불안감에서부터 나온 게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최근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밤을 미루던' 그 이유를 심리학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보복적 수면 지연(Revenge Bedtime Procrastination)"이다.

그렇다. 나는 결국, 나에게 보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시간을 낮에 내 마음대로 쓰지 못했다는 박탈감을, 늦은 밤에라도 되찾으려던 심리적 보상이 그 안에 숨어있었다.


쉽게 말해, '저녁 시간에 만큼은 통제권을 쥐고 싶었던 것'이다.



ㅣ 자기 통제 실패라는 이름의 흔들림

심리학에서는 이런 패턴을 '자기 통제 실패(Self-Regulation Failure)'로 설명한다.

낮 동안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는, 계획과 자제력을 담당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을 약화시킨다.
그러면 장기적 목표인 '충분한 수면'보다는 단기적으로, 즉 당장 얻을 수 있는 보상인 '바로 지금, 나만의 시간'을 선택하게 된다.

그때 뇌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내일의 컨디션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지금만큼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ㅣ 불안과 통제감의 본질

내가 밤을 미룬 건 단순히 '낮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다.
낮에 계획한 대로 살지 못했다는 자책감,

그리고 내가 내 삶을 제대로 핸들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밤이라는 조용한 시간을 인질 삼아 나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낮에는 타인의 기준과 사회의 요구를 따라야 했고,
그에 따라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쌓였다.
그래서 밤이 되면 그 억눌림터져 나온다.


런데, 참 이러니하게도,
나만을 위하는 듯했던 그 시간들이,

알고 보니 위로가 아니라 채찍질이었던 것이다.



내가 시도한 작은 변화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나는 이런 나를 바꿔보자고 마음먹었다.


뭐부터 해야 할까?


그때 심리학이 가르쳐준 것은, 계획표를 고치기 전에 먼저 '마음을 살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가장 먼저,

퇴근 직1시간 동안'낮에 가장 하고 싶었던 걸 하는 시간’으로 설정하고 반드시 지키기 시작했다.
것은 마치 밤에 얻던 '보상 시간'을 조금 더 앞당겨 옮겨온 것과 같았다.

그리고 계획표도 하루 단위에서 3일 단위로 바꿨다.
시급한 일만 아니라면, "오늘 다 못 한 건 내일로 미뤄도 돼. 하루를 꼭 완벽하게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나를 향한 위로이자, "그러다가 네 건강만 망가져, 이제는 고쳐야 해"라는 설득이었다.

마지막으로는,

계획을 전부 다 해내지 못했더라도, 잠들기 전에는 꼭 이런 말을 스스로에게 해주었다.


"와, 오늘도 진짜 애썼다."

"기특하네, 기특해."


어색함은 잠시지만, 내가 나에게 주는 '인정'이라는 선물은 마음속에 오래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완전히 달라진 삶을 살고 있는가?

솔직히, 그건 아니다.


아직까지도 가끔은, "이거 하나라도 더 하고 자야겠다"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있다.

매일 실천하던 작은 변화들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는 것과,
나라도 더 하려는 욕심이 얼굴을 내밀면 "또 불안이네? 너 안 그래도 돼, 좀 쉬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의 나는, 이런 전략들을 조금씩 반복하며 새로 들인 습관과 감정 다루기 연습을 조금씩 연마하는 중이다.

빠르게 달라질 수는 없어도,

분명히 달라질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 누군가가 '밤을 붙잡고' 있다면 말해 주고 싶다.

"완벽한 하루 말고, 일 완성형이 되어 가는 하루를 살면 그걸로도 충분하다"라고.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