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스테시스 과부하, 그리고 호흡
이 글을 보기 직전, 혹은 중요한 이메일의 전송 버튼을 누른 직후, 혹시 깊은 물속에서 막 빠져나온 사람처럼 거칠게 숨을 몰아쉬지는 않았는가?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수영장에 있는 것도 아니고, 100미터를 전력 질주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몸은 산소가 부족하다고 거친 호흡을 뱉으며 아우성일까?
사실 이러한 상황은 많은 사람이 겪고 있다. 전 세계 직장인의 80%가 겪고 있는 현대인의 병, 이른바 '이메일(스크린) 무호흡증(Email Apnea)'에 대한 이야기다. 이는 단순한 습관 같은 게 아니다. 심리학의 눈으로 보고 뇌과학의 메스로 해부해 보면, 그 짧은 '숨 멈춤' 안에는 우리의 뇌가 보내는 아주 처절한 구조 신호가 숨어 있다.
상황을 되감기 해보자. 모니터 오른쪽 하단에 팀장님의 메시지가 띵동 뜬다. 내용은 보나 마나 업무 독촉일 것이다. 이 순간, 당신의 이성은 "아, 또 시작이네"라고 생각하며 키보드에 손을 올리게 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의 무의식, 특히 뇌 깊숙한 곳에 있는 편도체(Amygdala)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다. 편도체에게 상사의 메시지는 숲 속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호랑이와 똑같은 생존 위협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맹수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도망가거나(Flight) 싸우는(Fight) 건 나중의 문제고, 일단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근육을 딱딱하게 굳히고 호흡을 멈춰야 한다. 이것이 바로 포유류의 본증적 방어 기제인 '동결(Freeze, 얼어붙음)' 반응이다. 쉽게 말해, 우리가 모니터 앞에서 긴장으로 숨을 멈추는 그 순간, 우리는 업무에 몰입한 직장인이 아니라, 맹수 앞에서 얼어붙은 가여운 초식동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가끔 숨을 참는 것까지는 괜찮다. 호랑이가 사라지면(퇴근하면) 다시 숨을 쉬면 되니까.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에너지를 끌어다 쓰고, 상황이 종료되면 회복하는 놀라운 적응 능력, '알로스테시스(Allostasis)'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한국 조직의 호랑이들이 퇴근을 쉽게 안 시켜준다는 데 있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 경쟁적인 동료들, 실수하면 낙인찍히는 조직 문화, 그렇게 우리의 뇌는 24시간 내내 "여기는 위험해!"라는 경보를 울린다.
만약 그러한 비상사태가 일상이 되어버리면, 결국 시스템은 과열되어 셧다운 된다. 이것을 전문 용어로 '알로스테시스 과부하(Allostatic Overload)'라고 부른다. 이런 상태가 되면 뇌는 '안전하게 숨 쉬는 법'을 잊어버린다. 그에 따라, 횡격막은 만성적으로 굳어 있고, 호흡은 얕아지며, 교감신경은 브레이크 없이 수시로 폭주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번아웃(Burnout)'은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다. 뇌와 몸의 생물학적 균형이 완전히 무너진 시스템 고장의 상태이다.
조직심리학 관점에서 이런 현상은 매우 뼈아픈 진실을 보여준다. 많은 기업이 혁신과 창의성을 부르짖지만, 정작 사무실의 공기는 직원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기 때문이다.
뇌과학으로 보면 냉정하다.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편도체 활성화)에서, 뇌는 생존에 불필요한 기능부터 전원을 꺼버린다. 그리고 가장 먼저 꺼지는 곳이, 바로 고차원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담당하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이다.
과연 숨을 멈추고 맹수를 경계하는 뇌로 기획안을 잘 쓸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상태에서 나오는 결과물은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당장 욕먹지 않기 위한 방어적인 문서일 뿐일 것이다. 숨 쉬지 못하는 조직은, 결국 '생각하지 못하는 조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 글을 읽고 지금 당장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의 상태를 관찰해 보자. 어깨가 솟아있지는 않은가? 명치가 답답하거나 소화가 잘 안 되는 것 같지는 않은가? 무의식적으로 숨을 참고 있지는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의식적으로 길고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후- 하고 내뱉어야 한다. 3-3-3 호흡법도 좋다. 3초 동안 크게 숨을 들이쉬고 3초 정도 멈추었다가, 다시 3초 동안 천천히 숨을 내뱉는 것을 몇 번 반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의지만으로 장기의 활동을 멈출 수는 없지만, 호흡을 바꿈으로써 뇌를 해킹할 수는 있다. 깊은 날숨은 부교감신경(미주신경)을 자극해 잔뜩 경계태세를 취하고 있는 편도체에게 "괜찮아, 여기 맹수는 없어. 안전한 상태야"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다.
그리고 나는 리더들에게 한 번쯤 묻고 싶다. "여러분의 사무실은 어떤가요?" 고요한 정적 속에 들리는 것이 '직원들이 업무에 몰입하는 소리'인지, 아니면 '살아남기 위해 숨을 죽이거나 얕게 쉬는 소리'인지 궁금하다.
결국 조직의 성과는, 구성원들의 뇌가 얼마나 깊고 편안하게 숨을 쉴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니 이제라도, 우리 모두가 다시 숨을 잘 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제인 마크 Jane Mark
MindMark Lab은 행동신경과학과 심리학을 기반으로 인간의 잠재된 욕망와 행동 원리를 분석하여, 개인과 조직의 성장을 위한 최적의 성공 메커니즘을 설계하는 휴먼 솔루션 연구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