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직·파견직 이름으로 반복되는 기대와 기만
이 글을 쓰기에 앞서 한 가지 말하고 싶은 점은,
계약직과 파견직 제도 자체를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원래 이 제도는 조직과 개인이
일정 기간 함께 일하며 역할의 적합성과
상호 기대를 조율하기 위한 합리적인 장치로 설계되었다.
그러나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보 보안과 책임 소재를 고려해야 하고,
모든 역할에 정규직 T/O*를 열 수 없는 현실적 한계도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한국의 노동 시장에서 이 제도는
다소 다른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검증의 기간이 아니라,
투자는 배제된 채 성과만 요구되는 구조로 굳어져 있다.
* T/O : Table of Organization의 약자로, 기업이나 조직 내의 정원을 의미
조직은 말한다.
"성과를 내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기회의 기준은 명시되지 않는다.
그리고 성과는 요구되지만, 교육과 권한은 제한된다.
또한 조직의 핵심 정보와 기회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성과의 결과물은 온전히 조직에 귀속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계약직과 파견직은
구성원도, 외부인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책임은 있지만 권한은 없고,
기대는 크지만 보호는 없다.
조직심리학에서 성과는 개인의 능력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성과는 역량 x 자원 x 심리적 안전감의 함수다.
그러나 많은 조직은 계약직과 파견직에게서
이 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즉 자원과 안전감을 제거한 채 성과만을 요구한다.
● 충분한 온보딩 과정은 제공되지 않는다
● 장기적 관점의 교육은 '어차피 계약직이니까'라는 이유로 배제된다
● 실패는 학습의 기회가 아니라 계약 종료의 명분이 된다
이 구조에서 개인은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최소한의 실수로 최대한 버티는 전략이다.
문제는 제기하지 않고, 책임을 넘지 않으며,
조직의 기대를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스스로를 검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나타나는 행동을 두고
"소극적이다", "주인의식이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평가와 다름없게 된다.
이는 개인의 태도가 아니라,
구조가 만들어낸 행동 양식이기 때문이다.
"더 열심히 해서 정규직 되면 되잖아."
이 말은 겉보기에 아주 공정한 듯하다.
노력의 결과를 마치 보상하겠다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직행동 연구에서 이런 조건부 약속은
가장 강력한 통제 장치로 분류된다.
● 평가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 평가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 조직 상황, T/O, 내부 정치 등이 결과를 좌우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실패의 책임은 항상 개인에게 돌아가는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이유는 "아직 부족해서", "조직과 맞지 않아서", "타이밍이 안 맞아서"라는 것들로 애매하게 포장된다.
이때 구조적 한계는 개인의 역량 문제로 번역된다.
사람들은 더 이상 구조에 묻지 않고, 대신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
이 메커니즘은 차별이 노골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 오래 지속된다.
그리고 차별은 부정되지만,
결과는 계속 반복된다.
어느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나는 채용 담당자로서 그 말들이 참 모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가 계약직·파견직 하라고 강요했나?"
"공부 더 잘했으면 정규직으로 갔을 거 아닌가?"
"게을러서 공부 안 해놓고 불평만 많다"
이 말은 출발선의 차이를 지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쉽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엘리트 세습 구조와 닮아 있다.
부모의 지원, 교육 환경, 네트워크는,
개인의 노력 이전에 이미 어느 정도의 경로를 만든다.
정규직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었던 사람과,
기회가 제한된 상태에서 계약직·파견직으로 경력을 쌓아야 했던 사람은
같은 게임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만 놓고 "능력이 부족해서", "머리가 나빠서"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실상 구조적 불평등을 개인의 결함으로만 환원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그런데 이러한 구조는
개인만 소진시키지 않는다.
조직은 단기 성과에만 익숙해지고,
지식과 노하우는 축적되지 않으며,
사람만 계속 바뀌고 같은 실수는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서 성과만 요구하는 조직은,
결국 사람을 소모품으로 전제한 시스템이 된다.
이는 비용 절감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장 비싼 선택이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계약직이나 파견직 제도를 전면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조직을 도덕적으로 비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투자하지 않으면서 헌신을 요구하는 구조,
기준 없이 증명을 강요하는 구조,
이는 어떤 말로 포장하든 기만에 가깝다는 것을.
아무도 이 문제를 언어로 만들지 않는다면,
불안정한 판 위에 서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믿고,
자신의 시간과 미래를 조직에 맡길 수 있을까?
사람은 구조보다 더 강하지 않다.
사람은 자신이 놓인 구조보다 더 윤리적으로, 그리고 의욕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개인을 더 몰아붙이는 조언이 아니라,
어떤 구조가 사람을 침묵시키고 소진시키는지를 말할 수 있는 언어다.
불편하더라도,
이 언어는 필요하다.
그래야 이 판 위에서 누군가는,
더 이상 혼자만의 문제라고 믿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직은 무엇을 고민해 볼 수 있을까?
정답은 하나가 아니다.
다만, 질문은 분명하게 만들 수 있다.
조직은 계약직과 파견직에게 성과를 요구하기 전에,
그 성과를 가능하게 만드는 자원과 권한을 어디까지 제공하고 있는가?
평가 기준은 실제로 명확하게 존재하는가?
"잘하면 기회가 있다"라는 말이 구체적인 경로와 조건으로 설명될 수 있는 구조인가?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조직은 이 고용 형태를 '임시 인력'으로 관리하고 있는가,
아니면 '임시 파트너'로 설계하고 있는가?
전자의 경우라면 사람은 소진되고,
후자의 경우라면 조직은 학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제도 개편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계약 기간 동안만큼은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보호하며,
어디까지 책임을 공유할 것인지를,
말로만이 아니라 구조로 명확히 하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 조직이라면,
사람을 소모하지 않고도 성과를 낼 수 있는 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