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명절이 더 외로운 이들을 위하여
괜한 한 숨이 새어 나온다. 모두가 제 고향, 제 가족을 찾아 복닥거리며 단란하게 무엇보다 ‘평범하게’ 지내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만 우주 한 가운데 둥둥 떠있는 것 만 같다. 고향이란 무엇이며, 명절은 어떤 날 이기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꾸만 돌이키게 하는지…. 혈육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서운 동시에 우스운 단어인지. 가족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 본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 관계’란 참으로 무거운 것 이다. 가볍게 넘기기엔 상대는 인간이고 관계는 역사이다. 이 ‘관계’는 대부분 내 선택으로 끊기기도, 끈끈해 지기도 하는데 유독 ‘혈육’과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죽어야만, 어쩌면 죽어서도 쉽게 끊기지 않는 질기고 단단하게 결속된 관계. 내 선택으로 밀어낼 수 있는 정도의 한계가 분명한 관계, 말이다.
우리는 아니, 나는 가족에 대해 잘 모른다.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는 친구보다, 마음을 나눈 애인보다 사정과 속을 모른다. 어쩌면 잘 몰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일이 있으면 소식이 들려오겠지.’ 하는 정도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도 그런 듯 하다. 따로 연락이 오거나, 속 얘기를 묻거나 하는 법이 없다. 예전에는 가끔, ‘어쩌다 이런 사이가 된거지?’라고 생각할 때도, 반성할 때도 있었다. 괜찮은 핑계를 대자면, 나 하나 건사하며 살아가는 것 조차 고된 일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뚫고 나갈 때 쯤, 나는 더 이상 반성도 개선의 의지도 사라진 것이다.
어떤 때에는 내게 어떤식으로든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가장 몰랐으면 하는게 가족이기도 하다. 나는 그저 그런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그렇게 알아줬으면 하는 듯도 싶다. 실망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어느정도 있지만 더 큰 마음은 ‘나’라는 존재가 실패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글을 읽으며, 그 어느 하나 공감되지 않는 이들을 상상해본다. 그렇다고 그들이 ‘평범 속 행복’을 누리고 있을 거라고 어림짐작 하지는 않겠다. 사회적으로 비정형적 관계여도 명절이면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고, 가장 평범한 얼굴을 하고 지독한 불행에 발을 담그고 있을 수 있는 것이니. 가족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장담하고, 운명 같은 가족의 합이라고 장담하고 있을지라도 어떤 때, 나 홀로 우주에 붕 뜬, 그 기분을 느끼지 않으리란 법은 없으니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명절, 특정 시즌 같은 것을 두려워한다. 그 시기만 되면 무력해지고 우울해지고 꼭 하나 이상의 불행한 일이 튀어 오른다. 언제부터 였는지 긴 연휴를 앞두고 깊은 숨을 들이 쉰다. 더 긴 숨을 내쉰다. 폐가 아주 비틀어 질 때 까지 몸 안의 모든 공기를 내뱉는다. 그리고 시간도 날짜의 개념도 없이 어서 날이 모두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진해버린다. 그럼에도 무사히 넘어간 명절은 몇 번 없었다.
정돈되지 않은 마음을 글로 계속 써 내린다. 큰 실수를 한 것은 없나 싶어, 쭉 내려 쓴 그것을 반복하며 바라본다. 이런 글이라도, 명절을 핑계로 한 회 쉬어가는 것 보다, 도움이 될 사람을 위해,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내가 스스로 글을 올린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와 함께 안도의 긴 한숨을 들이쉬고 흔적 없이 내 뱉으시라고.
2024년 2월
심경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