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코리프 ; 불안할 때면 사람을 생각해. 그래도 소용 없으면?
5.초코리프 ; 불안할 때면 사람을 생각해. 그래도 소용 없으면?
나에겐 살아가면서 필수적인 요소로 숨쉬기, 음식먹기, 잠자기 이외에도 ‘사람’이 자리를 차지한다. 이건 인간사회에서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요소일 수도 있겠다. 범죄인이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돌아와서 꼭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직업’과 ‘가족’. 이 두 가지 요소를 갖춘 범죄자는 새로운 인생을 꾸려 나갈 요소가 준비 돼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요소들이 있고 없고에 따라 재범률도 다르다고 한다. 독립적이고 기본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는, 우리에게 어쩌면 족쇄같은, 그러나 우리를 독립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직업’. 그리고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생각과 하루의 쉼을 제공하는 가족. 이 두 요소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평소에 여기는 직업과 가족의 의미보다 더 깊고 끈질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불안증 환자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불안증 환자는 말 그대로 모든 요소에 쉽게 동요되고 쉽게 불안을 커다랗게 느낀다. 이때 가족은 진정한 의미의 원점일 수 있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고, 언제나 응원과 믿음을 받는 사이. 이 사이가 끈적할 수록 사람은 믿는 구석이 생기고 어느정도 차분해질 수 있다. 물론 미래에 대한 안정된 상황을 위해 직업도 아주 중요한 요소로 역할 할 수 있다.
내게 불안은 수시로 덮쳐오는 파도같은 것이다. 태풍을 동반한 파도가 올 때도 있고, 잔잔한 물가 인줄 알았는데 겪어보니 상상도 못한 파도가 덮쳐올 때도 있다. 언제, 어느 골목 어귀에서 파도를 만나게 될지는 나도 잘 모른다. 특정할 수 있는 것은, ‘낯선 것’을 대하거나 해결할 때 ‘잘 마쳐낼 수 있을까?’ 하는 강박적 불안이 엄습해오는 것이다. 나는 낯선 어떤 것들을 대할 때 어김없이 당황하고 불안해했다. 끝이 좋지 않을 거라는 예감, 잘 해낼 수 없다는 나약한 다짐. 그럴 때 마다 나는 가족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나에게 선한 마음을 내주었던 식물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분명히 무조건적이고 선한 마음으로 나를 응원해줄 거라는 일방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초코리프를 선물 받으며, 식물로 인해 낯선 사람을 직접 만나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식물앞에 선한 마음을 가졌고, 그 선한 마음, 섬세한 씀씀이가 나를 안정시켰다. 그래서인지, 식물을 돌보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초코리프를 쳐다본다. 그 식물이 가져다준 인연, 그래서 더 용기내서 만나볼 수 있었던 많은 식물 집사들의 선의를 떠올린다.
낯선곳이 아니더라도 낯선 사람이 아주 많으면 나는 매우 많은 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워한다. 예를 들어 가득찬 지하철이라든가, 경복궁역 앞 이라든가(매우 많은 사람으로 계속 붐빈다), 이제는 그렇게 좋아하던 페스티벌도 참석할 엄두를 못내게 되었다. 지정석이 존재하고, 예상가능한 무대가 펼쳐지는 곳이 내게 유일하게 즐길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마음이 더 강할 때의 나, 그러니까 내가 마음이 아프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했을 때는 이곳 저곳에 실험삼아 많이도 집어넣었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음악 페스티벌이라든가, 만원 지하철, 모든 것이 예상 밖인 뮤지컬의 동선 같은 것 말이다.
한 번은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는데 내가 있던 2층 좌석 근처에 묶여있던 샹들리에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것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아랫사람들이 다칠까봐, 그리고 이런 큰 변화가 놀라워서 1-2분간 입을 떡 벌리고 샹들리에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은 뮤지컬의 장치적 요소였다. 다시 말해, 매 회차마다 그 샹들리에는 포물선을 그리며 1층 관광객을 향해 떨어질 듯 말듯 흔들흔들 거리는 것이다. 그 후로도 뮤지컬을 원체 좋아해 여러차례 봤지만, 무대가 예상 밖의 모습으로 변하거나, 등장인물이 여기저기로 움직이면 그렇게 불안했다. 그 당시의 나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병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잘 놀랐다. 작은 요소의 변화로 남들보다 더 크게 놀랐고, 놀란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불안은 그렇게 나를 천천히 잠식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 택시 아저씨의 험한 말투에 나는 그렇게도 큰 불안을 경험했다. 그때문에 노이즈 캔슬링(주변 소음을 차단 또는 상쇄시켜 잡음 없이 소리를 잘 들리게 하는 기술)이어폰을 끼고 다녀야 했다.
그럴 때면 가족들을 생각한다. 나를 언제나 지지해주고, 내 삶이 흔들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존재. 다른 누구보다 나를 믿고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해줄 사람. 나에게 완전한 휴식과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는 사람. 나는 원가족과의 관계형성에 있어 실패했지만, 새로운 가정을 꾸려내며 온전한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고민에 대한 답은 인간에게서 찾으면 안된다. 우리가 ‘의지’라는 것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한 번 의지를 한 존재는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여러 상황에서 같은 행동을 하려는 노력을 한다. 하지만 사람은 많은 변수의 상황 속에서 늘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강한 존재가 아니다. 언젠가는, 그 언젠가는 나를 실망시킬 수 밖에 없다.
나를 강하게 믿고, 존중하고, 내 말의 의미를 무게감있게 다루던 가족이, 어느 순간에는 타인을 지지하는 순간이 닥쳐올 수 있다는 말이다. 유달리 잎의 크기가 큰 우리집 초코리프를 바라보며, 왜 다른 집과는 다르게 아담하게 예쁘지 않냐고 할 수 없듯이 말이다. 사람은 답이 될 수 없다. 그럴 때 불안이 가득찬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아직 찾지 못한 답이 있다. 그런 것들은 나를 불안하게 한다. 불안으로 인해 사람을 믿고, 의외의 상황에서 그들의 신의를 얻지 못하게 되면 나는 불안한 와중에 가족을 잃을 것 같다는 더 큰 불안감만 안고 만다. 놓아야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객체의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더 큰 건강한 관계를 얻을 수 있다.
내 인생 고비마다, 골목길을 틀어 걸을 때 마다, 엄습해오는 불안, 그 큰 병을 지워내기 전까지, 나는 내 자신의 결정과 상황이 좋지 않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인정을 계속해야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 독을 품어야 한다. 남이 해지지 못하게 독을 품은 초코리프처럼. 초코리프 잎을 꺾으면 나오는 새하얀 진액은 피부에 닿으면 발진을 일으킨다. 그는 그 나름의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도, 언젠가의 나도 오롯이 나를 위한 방어막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한 단계씩 성장해 언젠가는 불안증을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온전한 객체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노이즈 캔슬링 없이, 너무 지나친 가족에 대한 의존 없이, 나를 곧바로 세워 일으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