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OD Insights] 책 <애플에서는 단순하게 일합니다>
나는 다른 조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조직은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묻는 게 취미다.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또 어쩜 그렇게 특색이 있는지 신기하다. 그래서 조직문화라는 키워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지금은 좀 덜한 것 같지만) 실리콘벨리의 사례가 국내에 한참 동안이나 공유되었다. 특히 넷플릭스를 비롯하여, 아마존, 구글, 그리고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의 사례가 많았다. 그들의 책이 직접 번역되어 공유하기도 하지만, 직접 경험을 쌓은 한국인들의 책도 늘어났다.
하지만, 빅테크 중에서도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애플의 사례는 접하기 쉽지 않았다. 워낙 비밀주의 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해서, 공개된 자료가 적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밀리의 서재에서 읽을 수 있길래 빠르게 읽었다. 분량 자체가 많지 않아서 금방 읽을 수 있었는데 인상 깊은 문장들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온사이트 인터뷰에서 한 면접관이라도 해당 지원자를 부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그 지원자는 불합격 처리된다는 것이다. 해당 지원자를 인터뷰한 여덟 명의 면접관이 만장일치로 지원자를 합격시켜야 채용이 이뤄진다. 둘째, 애플은 지원자의 기술적 전문성과 의사소통 능력보다 과연 이 지원자가 애플의 독특한 기업 문화에 적응하며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그 자질을 본다는 것이다.
애플은 다른 빅테크 기업과 달리, 여전히 기능부서를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드웨어업의 특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직무 전문성은 당연히 요구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컬처 핏'이다. 애플의 독특한 문화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여러 번 묻고, 확인하는 과정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어렵게 뽑은 인원들도 1년이 지나면 30% 정도는 퇴사한다고 하니, 얼마나 업무 강도가 높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애플의 1년은 일반 기업의 6년과도 같다"라는 농담이 있다고 한다.
애플에서 이렇게 보수적으로 인력을 채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에서 가용한 자원으로 최고의 효율을 내려는 것이다. 애플의 경영진은 직원이 많다고 해서 일이 더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일의 효율과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인력을 투입하기보다 현재 있는 인력을 완전히 가동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다른 빅테크 기업들이 급속도로 직원을 늘릴 때 애플은 20%만 늘렸고, 이후 대규모 레이오프 사태에도 불구하고 애플에선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보수적 결정은 늘 단기적으론 저항을 낳거나, 불만을 살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고, 책임을 지는 것은 경영자의 몫이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은 옳은 판단이었다'라고 인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의 방향성에 크게 공감되었다. 사람이 많다고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애플에서는 팀원이 매니저의 업무를 평가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공식적인 절차나 방법을 두고 있지 않다. 추측건대 최고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개발 조직에서 팀원이 매니저를 평가한다면, 하향식 의사 결정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팀원 차원에서 매니저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최근에 다면 평가 혹은 다면 피드백은 증가하는 추세다. 위, 아래로 피드백을 받으며 성장하기도 하지만, 그 사이에서 적지 않은 고충을 느끼는 것이 요즘 리더들의 숙명이다. 애플은 (이 또한 하드웨어업의 특징이라고 보이기도 하는데) 애초에 그런 채널 자체가 없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다만,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파를 리더로 세워서 애초에 불만을 가질 여지를 줄이는 노력은 하지만, 애플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더불어, HR은 정말 정답이 없고 조직 성과에 어떤 형태가 가장 적합한지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도 했다. 이렇게 분명한 메시지를 정의하고, 제도에 명확히 얼라인시킨 것은 개인적으로 좋았다.
잡스는 사업부 조직 대신 기능별 조직으로 회사를 운영해야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사업부 조직별로 회사를 운영한다면, 회사의 방향에 맞춰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사업부 자체의 단기적인 실적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그럼 결국 적은 비용으로 사업부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한마디로 혁신보다 돈벌이에 우선순위를 두는 회사가 되는 것이다. 잡스는 이러한 조직체계로는 절대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고 확신했고, 당시 파산 직전이던 애플의 미래도 바꿀 수 없다고 판단했다.
조직 구조는 목적에 기반한다. 잡스의 조직 개편은 방만하게 운영되던 애플을 살렸다. 하지만, 모든 조직 구조는 나름대로의 단점을 낳는다. 특히 기능 조직은 전문성을 확보하기는 좋지만, 프로덕트를 만들 때 소통이나 우선순위 조정이 쉽지 않을 수 있는데, 애플은 어떻게 해결했을지 궁금했다. 아래 단락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조직도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실제 업무에서 두 팀의 상하관계는 확연히 드러난다. 실무담당자들끼리의 회의는 말할 것도 없고, 제품설계팀의 디렉터 보고회의 분위기는 거의 살얼음판이다. 이 회의는 개발 중인 제품에 관해 제품설계팀이 엔지니어링팀에 보완을 요구하는 자리로, 아주 신랄한 지적과 예리한 질문이 오간다. 이런 분위기가 업무 질서로 자리 잡게 된 건 잡스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디자인이 기술을 이끄는 가운데, 기술은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잡스는 단순함이 정교함의 궁극적 형태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해한 것은 '부서 간 위계'다. 디자인 - 제품 설계 - 엔지니어링으로 이뤄지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한 위계가 앞서 언급한 단점을 극복한다. 잡스의 리더십 스타일과 철학을 감안하면, 충분히 이해되지만, 그것이 여전히 지켜지고 있다는 점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만큼의 성과로 돌아오기 때문에 다들 '이것이 완벽하진 않겠지만, 우리에겐 최선이야'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아닐까? 일반적 테크 조직에서 엔지니어링 부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아쉬울 법도 한데 그들도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과 동료들을 바라보며 위안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모든 조직은 CEO의 철학에 따라 위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애매하게 두는 것보다 차라리 명확하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책에서도 아래와 같이 언급된다.
"애플 직원들은 세계 최고의 제품을 개발해 출시한다는 목적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명확한 목적의식이 혹독한 업무량을 감당하는 데 원동력이 된다."
애플에서는 상사 앞에서 절대 해선 안 되는 말이 있다. 바로 “모르겠습니다 I don’t know”, “안 됩니다 I can’t” 그리고 “불가능합니다 It’s impossible”이다. 만약 당장 제시할 해법이 없더라도, 지금 상황에서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며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앞에서 “모른다, 안 된다, 불가능하다”라고 답하는 행위는 “저는 무능해서 애플에서 쓸모없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전문성이나 권력을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조직 문화'의 힘 아닐까. 조직문화를 다시 정의하면 해당 조직에서 주로 사용하는, '구성원들의 언어 습관'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공무원 조직은 '그건 우리 부서 관할이 아닙니다'가 있을 수 있고. 애플은 스티브잡스 시절부터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분위기가 있었고, 지금도 그러한 문화가 압도적 퀄리티의 제품을 만드는 게 기여하는 게 아닐까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에 전적으로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엔 장단이 있기에, 조직의 방향성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구조적 측면에서 먼저 살펴보면, 부사장은 디렉터와 매니저에게, 매니저는 실무담당자에게, 실무담당자는 다른 부서의 실무담당자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 이것은 성공에 미친 특정 사람에게만 보이는 신념 같은 게 아니다. 애플의 모든 직원은 서로에게 완벽함을 바란다. 이건 애플의 자연스러운 기업 문화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적당히 넘어가는 방식이야말로 애플에서는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업무처리이다.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것'은 기업과 개인의 성장에 있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원칙이다. 하지만,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바로 위에서부터 스스로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본인이 일을 제대로 못하면서 아랫사람에게 높은 기준을 추구하는 것이 '꼰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되려 '높은 기준'에 대한 역효과가 발생한다. 뒤로 돌아서며 "너나 잘하시지"라고 말하게 된다.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치열하게 일하기 위해선 Top에서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그럼 애플에서 좀 더 나은 평가를 받으려면 어떻게 일해야 할까? 우선 남의 시선을 끌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속한 조직의 디렉터가 나를 승진시키고 싶어도 내 존재감이 미비하다면 다른 디렉터들이 “나는 그 직원이 누군지도 모릅니다. 조직에서 영향력 없는 사람을 왜 승진시켜야 하죠?”라고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애플(미국 기업 대부분)에서는 자기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하고, 동료를 잘 백업하며, 발표자료를 잘 만드는 능력에 앞서 자신을 어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일을 찾아서 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비단 애플뿐만 아니라, 많은 글로벌 회사에선 '성과는 기본'이고, 이를 넘어 '영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영향력을 발휘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책에서 언급되듯 커뮤니케이션을 잘하고, 팀워크를 발휘하며,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하며 자신을 어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한국이나 일본 같은 동양 문화권에선 '너무 나댄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평판만을 신경 쓴다면 물론 경계해야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조직 차원에서 충분히 인정하고 독려할 필요가 있다. '말 안 해도 알아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게으른 전략이다. 확실히 성과를 내고, 명확하게 자기표현을 하는 것이 낫다.
결론적으로 애플의 조직문화는 독특하면서도 매우 높은 기준을 요구한다. 책을 읽다보면 동의하는 내용도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이 책을 읽다보면, 재미있는 관점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론 애플이 움직이는 방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