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_규암: 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3. 분홍 소시지 요리교실
입학식이 다 끝난 3월 말에야 나는 학교에 갔다. 엄마는 교무실 의자를 두 개 바꿔주는 조건으로 나를 학교에 넣었다. 엄마는 내가 첫 받아쓰기 시험에서 80점을 받아오자 조기 입학 사유를 살짝 변경했다.
나는 얼떨결에 글자도 잘 읽고 영민한 나머지 집에 두기 아까운 아이가 됐다.
교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중간의 내 자리로 들어가는데 뒷자리 남자애들이 목을 빼고 쳐다보았다. 삼촌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덩치가 컸다.
나와는 반대로 농사일을 돕다가 1~2년 씩 늦게 입학한 아이들이었다.
도시락을 처음 싸간 날이었다. 나도 도시락을 먹은 후 운동장에 나가 놀아야겠다는 기대감에 점심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밥과 반찬을 다 먹고 뚜껑을 닫은 후 가방에 넣어놓고 복도로 나갔다.
신발을 집는 동시에 무슨 소리가 들렸다. 5교시 종소리였다. 한 시간 내내 밥을 먹은 거였다. 우당탕 뛰어 들어오는 아이들 틈에 끼어 나도 놀고 온 것처럼 태연하게 교실로 들어왔다.
굼뜨고 무른 나는 뒷자리 삼촌들의 좋은 표적이 됐다. 그들은 점심시간이면 내 도시락을 건들기 시작했다. 엄마가 큰 맘 먹고 싸준 분홍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는 모두 그들 세 명의 차지였다.
며칠 동안 맨 밥만 먹던 나는 결국 집에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
듣고만 있던 엄마는 다음날 학교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엄마가 그들을 혼내줄 일을 생각하니 든든하다가도 더럭 겁이 났다.
다음 날 점심시간 종이 울리자 진짜로 엄마가 교실에 나타났다.
몇 명이 아는 체를 하자 삼촌들은 확실히 겁을 먹은 듯 했다.
“얘들이야?”
“응응.”
“얘. 너희들. 이리 좀 와봐.”
엄마는 그들을 데리고 뒷문으로 나갔다.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엄마를 따라 나가는 그들을 보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잠시 후 두 손으로 석유곤로를 든 엄마가 나타났다.
그 뒤로 프라이팬과 도마, 대나무 채반, 계란 한 판, 시장바구니를 든 그들이 주르륵 따라 들어왔다. 시장바구니에는 소시지와 식용유, 신문지로 돌돌 만 부엌칼, 뒤집개, 양푼이 들어있었다. 엄마는 교실 뒤편에 쪼그리고 앉아 소시지를 부치기 시작했다.
덩치가 제일 큰 동호가 제법 능숙한 솜씨로 양푼에 계란을 깨어 넣는 사이, 엄마는 도마 위에서 소시지를 길쭉하게 썰었다. 곤로 위에 프라이팬이 올라가고 병국이는 식용유가 쓰러지지 않게 잡고 있다가, 엄마에게 제 때에 들려주는 보급 장교 역할을 했다.
교실에 지글지글 소시지 익는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다 익은 소시지를 얹을 채반은 종두가 진작 받쳐 들고 있었다. 엄마가 척척 얹어놓는 소시지를 그들은 쑥스럽게 웃으며 집어먹었다. 둘러서 있던 아이들도 입에 넣고 후후 바람을 불었다.
그들은 나를 다시는 괴롭히지 않았고 동호는 반 청소 때마다 내 책상을 번쩍 들어 옮겨주었다.
삼촌들은 금세 신사가 됐다.
한일식품 그 애를 학교에서 본 것은 수업 시간 중 화장실에 다녀올 때였다. 오줌 조절을 못해 바지에 실례를 했던 날 이후 나는 부쩍 화장실에 자주 다녔다.
화장실을 복도를 지나는데 ‘퍽퍽’ 소리가 들렸다. 무섭기로 소문난 그 반 여자 선생님이 그 애를 발로 걷어차고 있었다.
“야. 너 오늘은 목욕하고 오라고 했지?”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동네에서 제일 높은 건물인 교회는 그만큼 좁고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교회 첨탑을 올려다보면 머리가 아찔해지며 시야가 좁아지고 잠시 다른 세계로 건너가는 환상을 느꼈다.
꼭대기의 십자가는 분명히 양철로 만들어졌지만 꼬맹이의 기도쯤은 들어줄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그 애가 목욕을 하고 오게 해주세요. 선생님에게 맞지 않게 해주세요.’
눈을 뜨자 다시 빛이 열리고 내 안에 신성이 깃든 듯 스스로 거룩해지고 있었다. 시야가 넓어지며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교회 모퉁이에 걸치듯 서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 애였다. 멀뚱하게 책가방을 양 손으로 부여잡고 서 있는 그 애는 생각보다 키가 컸다.
나는 순간적으로 그동안 갈고닦은 어린이의 교양을 있는 대로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성큼성큼 다가가 고개를 비스듬히 옆으로 기울이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 집에 가니?”
“응.”
“너 이름이 뭐야?”
“나?”
“그래. 니 이름.”
“재준이. 재준이야.”
“무슨 재준?”
“어. 이재준.”
그 앞에서 나는 웬일인지 세련되고 똑똑하고 무엇보다 사랑받는 어린이 티를 내고 싶었다. 내가 오줌을 싸고 집에 갔었다는 이야기는 이런 아이가 영영 알아서는 안 되었다.
“내 이름은.”
“알아. 꽁미.”
“야.”
“너 일곱 살이지? 난 여덟 살이야.”
나 같은 쫄보는 금세 울어버렸을 텐데 새삼 어른스럽게 느껴지는 그 애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보았다.
재준이. 여덟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