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_네가 어디에 있든 찾아낼게

소설_규암:기억을 엿보는 바위 이야기

by 설기

나는 버스를 타고 백제교를 건너 읍의 여고에 다녔다. 어른이나 하는 통학 인생이 열린 것이다. 이미 사람들이 꽉 찬 버스가 강둑마을 앞에 서면 안내양은 나와 몇 명을 솜씨 좋게 욱여넣었다. 두 정거장을 더 가면 또 몇 명이 탔다.

우리들은 국수 반죽처럼 납작하게 눌렸지만 그래도 살아서 학교에 갔다.


내가 위태롭게 문간에 버티고 서있으면 뒤에 탄 재준이가 내 앞을 막아섰다. 그 애가 곰보 선생이 타던 자전거를 놔두고 버스를 타는 이유였다. 버스가 백제교로 접어들며 몸을 비틀면 안에서 비명이 터졌다.


“밟지 마요.” “아. 내 가방.”
그 안에서 웃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여름 초입에 큰 비가 왔다. 비가 물러간 다음 오빠와 나는 강둑에 올랐다. 장마 끝에 강에 오르면 구경거리가 많았다. 오래 전엔 돼지나 소도 떠내려 왔다고 하는데 이젠 양은 냄비나 타이어, 고장 난 리어카 정도나 떠내려 왔다.

벌흙을 품은 거대한 연갈색 거품이 둥둥 떠내려 오면 그 해의 비는 얼추 끝이 났다.


강둑 저 편에서 지팡이를 짚은 곰보 선생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가 곰처럼 밖으로 휘어있었다. 옆에선 재준이가 속도에 맞춰 따라왔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파이프를 든 나머지 한 손을 흔드는 곰보 선생이 측은해보였다. 이제 곰보 선생 말고 그냥 곰 선생이라고 불러야지 맘을 먹었다. 백제교 공터에 대형 구판장이 생긴 이후로 한일식품도 예전 같지 않았다.

오히려 양지상회가 장어구이와 매운탕을 파는 양지회관으로 바꾸고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경미 는 주말에도 식당 일을 돕느라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사모님은 옆의 면에도 계를 모으러 다녔다. 장사가 시원치 않자 이자놀이에 재미를 붙인 듯 했다.


재준이와 사귄다고 공식 선언은 했지만 우리는 그저 책을 나누어 보는 게 고작이었다. 재준이는 곰 선생 때문에라도 집을 오래 비울 수 없었고, 나 역시 동네에서 대놓고 연애질을 하기엔 나름 가문의 체면이 있었다.


나는 책을 빌린다는 핑계로 한일식품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엄마는 곰 선생의 책을 빌린다는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기회가 되면 그 서재에 들어가 보라고 권하기까지 했다.


한일식품에 갈 때면 큰 길로 가지 않고 강둑으로 올라가서 가게 뒷문과 연결된 쪽 계단으로 내려갔다. 큰 길에는 어느새 차가 쌩쌩 달렸고 사람들의 눈도 많았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는 강둑을 걷는 재미에 빠진 탓이 컸다.


엿바위와 수북정, 백제교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오른쪽 옆구리에 넓고 푸른 백마강을 끼고 걷다 보면 내가 꽤 낭만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어릴 적 뭣도 모르고 뜀박질을 하거나 동네 오빠들의 자전거 꽁무니를 쫓아다닐 때와는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가끔 재준이가 안집에서 멀리서 오는 나를 발견하고 둑에 올라와 손을 흔들었다.


“야. 꽁미. 안 뛰지.”
재준이는 어느새 웃음이 많아지고 있었다.




재준이는 곰 선생 서재에서 책을 한 권씩 꺼내놨다가 나에게 주었다. 그걸 다 읽으면 반납하고 또 다른 책을 가져왔다. 곰 선생은 작은 방에 누워 하루 한 번 운동할 때만 밖으로 나왔다. 내가 드나드는 것을 아는 눈치였지만 한 번도 내가 있을 때 재준이를 부르지 않았다.


어느 날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집을 들여다보니 파이프를 문 곰 선생이 마루에 파자마 차림으로 앉아있었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허벅지가 앙상했다. 못 본 척 돌아가려던 나를 그가 불러 세웠다.


“꽁미 왔니? 재준이 약국에 잠시 보냈다. 들어와서 기다려라.”
“아니에요. 나중에 올게요.”

내 손에는 그의 서재에서 나온 책이 들려있었다. 손을 뒤로 감추자 곰 선생이 희미하게 웃었다.

“손등이 벌겋구나.”

“네. 책을 읽으면 손이 가려워요.”

“먼지다듬이 때문이다. 오래된 종이를 갉아먹고 사는 벌레야. 계피를 물에 우려서 담가놓고 있어라. 그럼 나아질 거야. 재준이 오면 좀 달래라.”

“네. 감사합니다.”


곰 선생과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건 처음이었다. 곰 선생의 얼굴을 가까이서 또렷하게 본 것도 처음이었다. 영감인 줄만 알았던 곰 선생의 눈빛은 형형했고 비범한 기운까지 돌았다. 한 가지 나를 갸우뚱하게 만든 건 재준이와 닮은 곳이 전혀 없다는 거였다.


며칠 후 그가 서재로 나를 초대했다. 물론 나의 짝 재준이를 통해.




“이모부가 너 오면 보여주라고 했어.”

곰 선생이 당뇨기까지 보이자 사모님은 일주일에 두 번씩 그를 데리고 논산의 병원으로 갔다.

“들어와.”

드르륵 여닫이문을 열고 재준이가 먼저 서재로 들어갔다. 괴괴한 적막은 마치 소리를 내는 듯 균일한 자장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책 냄새가 훅 끼쳐왔다.


두 개의 벽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사극에서 보던 옛날 서책과 일본 말로 쓰인 벽돌만한 전집류, 영어로 쓰인 깨알 같은 문고판과 무수한 단행본, 문학잡지들이 빼곡하게 꽂혀있었다.

책은 바닥에도 가득 내려앉아 있었다.

배를 드러내고 층층이 쌓인 책 옆으로 먼지가 앉은 바둑판과 흑백의 알 함, 벼루와 먹이 담긴 자개탁자가 있었다.


한지를 바른 커다란 격자무늬 창 옆으로 힘차게 뻗은 난초 그림과 붓걸이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난초 그림에는 곰 선생의 호와 이름으로 보이는 낙관이 있었지만 알아볼 수 없었다. 나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김동리나 이광수의 방이 이럴까. 그 중에도 한지와 다기가 올라 있는 탁자의 색이 고풍스러웠다.

네 면이 트인 장식장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탁자는 서안이야. 선비들이 앉아서 책을 읽는 탁자래. 누렇고 큰 소나무, 황목 으로 만들었대. 이건 사방이 트여서 사방탁자라고 하는데 오동나무로 만들었대.

이모부네 할아버지가 서생 때 쓰던 거라서 집 한 채 랑도 안 바꾼다고 예전에 그러셨어. 진짜 오래됐지?”


재준이가 그 앞에 서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재준이가 먹을 갈면 곰 선생이 글씨를 쓰는 모습이 떠올랐다. 재준이가 그를 아버지라고 불렀다면 참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명치끝이 살짝 뻐근했다.


아쉬운 듯 뒷걸음질 치며 문을 나오던 나는
재준이와 부딪히는 바람에 가슴팍이 잠시 둥실해졌다.
황급히 마루로 나왔지만, 재준이는 뭐가 남았는지 조금 나중에 나왔다.
귀 끝이 빨개져 있었다.




곰 선생과 사모님이 논산에 가는 요일이 되면 나는 대놓고 서재에 드나들었다. 책을 빼내어 읽다가 그대로 두면 재준이가 끼워 넣으며 툴툴거렸다.

“꽁미. 꽁짜라고 막 다루면 안 돼.”


나는 눈이 뻑뻑한 김동리나 박경리의 장편보다는 여러 작품이 실린 문학잡지가 좋았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실린 1964년 ‘사상계’, 박경리의 ‘토지’ 1부가 실린 1969년부터 1972년까지의 ‘현대문학’,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실린 1974년과 1975년의 ‘신동아’ 말고도 많은 잡지들이 있었다.

재준이는 소설 보다는 문고판으로 나온 외국 시집을 좋아했다.


나는 그런 재준이를 놀려댔다.


“하이. 준. 화이트호스리버 고고. 오케이?”

“하이. 준. 코리아재팬푸드 고고. 오케이?”

영어를 좋아한다더니 재준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야. 이재준. 백마강, 한일식품 몰라? 공부 좀 해.”


9월이 되었고, 토요일 오후 한일식품에 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내 생일이 다음 날이었다. ‘무슨 선물을 주려나. 곰 인형? 열쇠 달린 일기장도 좋은데.’ 나는 더 큰 상상을 하다가 우뚝 서 버렸다.


‘목걸이? 혹시 반지? 히히.’


재준이가 내민 건 직사각형의 납작한 것,

책이었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책이잖아. 그치? 이 시집에는 말이야.

내가 태어난 해와 달에 쓴 시가 있어. 너랑 같이 읽.”

“맨날 보는데 또 책이야?”

나는 뾰로통해서 집에 돌아왔고 그의 안타까운 표정이 느껴졌다.


선물은 다음날 저녁, 생일 미역국을 먹고 나서야 풀어보았다. 푸른 포장지에 싸인 오래된 시집이었다.

‘새로 산 것도 아니잖아.’

책을 열자 중간에는 편지가 들어있었다.

편지가 든 페이지에 빨간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고, 길지 않은 시 한 편이 있었다.




김광섭 ‘저녁에’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969. 11)




“이 시집을 너에게 주고 싶어서 이모부께 허락을 받았어. 네가 어디에 있든, 나는 별처럼 너를 지켜 볼 거야. 수많은 사람 중에도 나는 너를 금방 찾을 수 있지. 우린 누구보다 정다운 친구니까. 이 시를 너에게 바친다. 생일 축하해. 너의 친우로부터. 너의 친우로부터.

P.S(추신임): 크리스마스에는 진짜 선물을 사줄게. 기대하시라.”


오빠와도 불렀던 유심초 노래의 가사가 이 시였다니 놀라웠다. 표지를 다시 보았다. 1974년 창작과비평에서 나온 김광섭의 시선집 ‘겨울날’이었다. 흰 바탕에 아스라한 귤색 그림이 있었다.


자려고 눕자 편지 속의 ‘네가 어디에 있든’이라는 말이 자꾸만 슬픈 느낌을 몰고 왔다. 나는 일어나 바로 답장을 썼다. 편지가 주는 비극성을 얼른 떨쳐버리고 싶었다.

“선물 고마워. 나도 너를 늘 지켜봐줄게. 안 그래도 우리 동네 이름이 엿보는 바위잖아.

아임 유어 피핑록. 오케이?”


엿을 영어로 찾았지만 캔디나 드롭스 밖에 없었다. ‘엿보다’를 사전에서 찾아서 이름을 지었다.


엿보는(Peeping) 바위(Rock) ‘피핑록’.


세상 어디에도 없는 단어였다. 정작 편지를 주고 나자 더 근사하고 문학적인 글을 쓸 걸 후회가 되었다.


얼마 후 우리는 그리던 겨울방학을 맞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경미는 이브 날 자기 집에서 모이자는 제안을 해왔다. 경미 엄마와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홍산 큰 집으로 제사를 지내러 가는데, 아빠가 분명히 술을 마실 테니 밤새 집이 빌 거라며 야단이었다.


경미 말마따나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건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재준이와 친해진 뒤로 ‘잘난 척 한다’고 툴툴거리는 경미를 봐서 나는 흔쾌히 동의했다.


곰 선생은 며칠 전 논산의 병원에 입원했다. 사모님도 병원을 지키느라 재준이도 자유의 몸이었다. 이길영과 재준이까지 소집하기로 의기투합한 우리는 하이파이브를 하며 동네 친구의 진한 우정을 확인했다.


재준이에게 들러 ‘내일 경미네 집 2층으로 밤 9시까지 오라’고 당부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강물이 철썩 소리를 냈다.


강이 소리를 내다니.

바다도 아닌데 파도치는 강이라니.

고개를 돌리다 어떤 느낌이 확 올라왔다.

나는 그 날 재준이를 부르면 안 되었다.




저녁을 먹고는 엄마에게 경미가 혼자 있어 가줘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집을 나섰다. 경미네는 과연 살림에서 부티가 났다. 2층 살림집 마루에는 전축이 들어와 있고 부엌에는 새로 들인 백조 싱크대가 있었다.

경미와 나는 마루에 상을 펴고 과자와 음료수를 깔기 시작했다.


9시가 다 되어 1층 식당으로 내려가자 뜻밖에 재준이가 있었다.

카운터 뒤에 서 있다가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재준, 너 언제 왔어?”

재준이가 멋쩍은 웃음을 웃는 사이 이길영이 들이닥쳤다. 이길영이 손을 비비며 말했다.

“야. 추운데 둘이 여기서 뭐하냐. 손님도 없는데 카운터 보냐. 어서 옵쇼. 올라갑쇼.”


이길영 뒤로 두 명이 우르르 2층으로 따라 올라갔다. 그의 유도부 친구들이었다.

“이재준. 뭐해?”

“아니야. 아무 것도. 올라가자.”


이길영은 맺힌 데가 없는 명랑한 떡대 였다. 중학교 때 유난히 코맹맹이 소리를 내던 체육 선생 말코가 화장실에서 코를 풀다가 방귀를 뀌는 흉내를 내자 우리들은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

“헤엥엥. 뿡. 헤엥엥. 뿡.”


경미가 전축을 틀고 불을 끄자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흘러나오고 우리는 강둑이 무너져라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가 나오자 모두 두 손을 입에 모으고 술래잡기하듯 외쳤다.

머리가 온통 땀 에 젖었지만 탁 트여버린 감정의 물꼬는 손으로 반을 막은 고무호스처럼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떡대 친구 두 명은 식당에 물을 마시러 내려가고 경미는 부엌에 라면을 끓이러 갔다. 이길영이 눈치를 보더니 떡대들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전축의 테이프에서 마지막 노래가 나왔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우리는 작은 환호성을 질렀다. 유심초의 그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였다.

우리는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손가락으로 서로를 가리키며 웃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노래를 부를수록 나는 알 수 없는 비감에 사로잡혀 훌쩍이기 시작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날지 모르는,

그러기 위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전조가 구슬프게 마음을 찔렀다.


“이재준. 너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어? 우리가 헤어져도?”
“허어. 이 울보 꽁미 씨야.”
“너 갑자기 사라지는 거 아니지?”
그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곤 낮게 속삭였다.
“울다가 웃으면 거기 털 난다.”


“야아.”

가슴팍을 퍽퍽 때리자 환하게 웃으며 내 팔을 꽉 잡지도 못했다.

순진한 너. 바보 같은 너.

나의 슬픈 연인.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삐요, 삐요.”

사이렌 소리가 지나갔다. 나는 자정이 넘어서야 도둑처럼 기어들어 와 뻗어 자고 있었다. 재수 없이 크리스마스에 불이라도 난 걸까.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엄마가 방문을 확 열었다. 연탄재가 떠올라 벌떡 일어나 앉았다.


“너 어제 경미네 집 갔었지? 거기 재준이도 있었니?”

“글쎄. 난 그냥 경미랑 떠들다가 잤는데.”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지서 이 반장이 재준이를 부여 경찰서로 데려갔대.”


옷을 주워 입고 한일식품으로 가다 보니 경미네 식당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진관 집 아줌마가 하는 소리를 듣고 나자 눈앞이 하얘졌다.

새벽에 먼저 돌아온 경미 엄마가 돈이 없어졌다며 재준이를 경찰서에 신고한 것이다.


경미 엄마가 기세등등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경미는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남의 집에 와서 왜 돈에 손을 대? 애가 뭘 배워서 저러는 거냐고.”


“재준이가 한 게 맞어? 그럴 애가 아닌데. 공부도 잘하고 착실하고. 걔가.”

사진관 집 아줌마가 편을 들자 또 소리를 빽 질렀다.


“경미가 그러는데 어제 저 꽁미랑 재준이랑, 이 반장님 아들이 왔었대. 거기서 그런 짓할 애가 누가 있어? 그리고 재준이가 카운터 앞에 서 있는 거 이 반장님 아들 친구가 봤대잖어.”


경미 엄마의 삿대질을 따라 내게 시선이 모였다. 사진관 집 아줌마가 물었다.

“너도 재준이가 카운터에 있는 거 봤니? 괜찮으니까 말해봐.”

나는 입이 붙었는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저는 잘, 잘 모르겠어요.”


땅으로 꺼져버리고 싶었다. 재준이에게 미안해서 죽고 싶었다.


미안해. 미안해. 재준아.



집에 돌아와 그대로 누워 버렸다. 재준이는 보호자가 와야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신열이 올라 아빠가 지어온 몸살 약을 먹고 일찍 잠이 들었다. 꿈인 듯 아닌 듯 몽롱한 잠 속에서 나는 흐느껴 울었다.


경미 엄마의 살기 어린 된소리와 사진관 집 아줌마의 이죽거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들과 나의 비겁. 가장 견딜 수 없는 건 경찰서에서 나를 애타게 기다릴 재준이, 재준이였다.


십년 치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 와 나는 다음 날도 일어날 수 없었다.


재준이는 논산에서 소식을 듣고 돌아온 사모님에 의해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재준이가 사모님에게 맞지나 않을까 걱정했지만 사진관 집 아줌마가 전한 소식은 그 반대였다.


사모님은 재준이를 한일식품에 데려다 놓고 연탄집게와 2리터짜리 락스 통을 들고 양지회관으로 갔다. 민물장어와 잉어가 헤엄치는 타일로 된 어항에 락스를 콸콸 부어놓고,

2층으로 올라가 여닫이 유리문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돈 통을 내리치던 파리채의 열 배는 됐으리라.


자다 말고 뛰어나온 경미 엄마의 머리채를 잡았고, 술이 덜 깬 경미 아빠는 “도련님께 죽을죄를 지었다”며 무릎 꿇고 빌었다. 도련님 소리를 들은 경미 엄마는 주저앉아 소리 죽여 울었다.


곰 선생은 경미 아빠에게 영원한 도련님이었다. 경미 엄마는 그게 오래오래 슬펐다.




경미 엄마가 잃어버렸다는 돈은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카운터 뒤에 서서 멋쩍게 웃던 재준이의 모습이 떠올랐지만 애써 기억을 밀쳐 냈다. 나는 사흘이 지나도록 한일식품에 가지 못했다.

경미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해의 마지막 날, 재준이는 사라졌다. 사모님이 나를 찾아와 그 애의 행방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상하게도 사모님이 고마웠다.

마치 아빠의 옷을 엄마가 받아 걸듯, 베고니아 선생이 내 도시락을 가져가듯 그제야 그 애가 당연한 나의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는 그 애의 부재를 빠르게 받아들였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새 학년을 맞았고 쉬는 시간에 책상을 치며 웃기도 했다. 가끔 명치가 저렸다. 그럴 때면 더 크게 웃었다.


고2가 되고 얼마지 않아 우리 집은 읍내 아파트로 이사했다. 이사하는 날 경미 가 와서 포장지에 싼 물건을 내밀었다. 아무래도 내 것 같다는 그건, 식당 카운터 뒤 선반과 벽 사이에 있었다고 했다.


포장지를 뜯던 경미가 울음을 터뜨렸다. 하얀 앙고라 장갑이었다.

“재준이가 우리 몰래 주려고 숨겼었나 봐.”

경미가 꺽꺽 울었다.


구부러진 크리스마스카드를 한 손에 들고, 남은 한 손으로 경미를 다독여 돌려보냈다.


크리스마스카드는 이사 중에 숨어버렸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이삿짐은 실은 트럭엔 아빠와 엄마, 동생이 타고 나는 오빠와 버스에 탔다.




큰 대문 집을 지나 내가 태어난 집, 미인 양장점 자리,

고모와 살던 옛집, 순기네 국숫집, 한일식품, 양지회관, 사진관, 뚱땡이네 떡집이 차례로 지나갔다.


강둑을 끼고 달리던 버스는 백제교로 꺾어지며 또 몸을 비틀었지만,

앞자리 손잡이를 움켜쥐고는 흔들리지 않았다. 백제교에 오르자 엿바위와 수북정이 멀어져 갔다.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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