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추억 소환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버스 안에서
수학여행을 어디로 갔는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서울 쪽이었을 거다 (부산이 고향입니다)
기억이 선명한 건 그때 버스 안에서 들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 그 시절 짝사랑했던 남자아이가 옆자리에 있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버스 안의 공기의 느낌, 기사님이 볼륨을 높인 탓에 음악으로 꽉 찼던 버스 안, 사춘기 시작 전 뭉글뭉글했던 내 마음이 설레게 떠오른다. 혼자 집을 떠나 처음으로 먼 거리를 여행하며 그 시절 최신가요들을 마음껏 듣고 따라 불렀던, 그때의 순수함이 시리게 그립다.
중학교 두발 단속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귀밑 3cm 두발 규정이 있었다.
억울하게도 귀의 위치가 남들보다 위쪽이어서 나는 언제나 짧디 짧은 단발머리였다. 어느 학교나 체육선생님이 학생 규정에 맞추어 아이들을 지도했다. 변 돼지라고 불리던 체육선생님은 졸업을 앞둔 어느 날, 두발 단속을 하기 시작했다. 귀밑 3cm가 넘는 모든 아이들이 단속 대상이었다. 마침 나는 졸업 앞이라 조금 긴 상태였는데 바로 걸려 운동장 단상 위로 올라가게 되었다.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머리 커팅, 변 돼지 선생님은 왼쪽 머리카락 부분을 쥐어들고 가위로 싹둑, 귀 중간 위치까지 잘라버렸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그 시절에는 있었다. 귀 중간 길이에 맞추어 머리 길이를 자르기 싫었던 나는 오른쪽 편 머리카락을 귀 중간에 맞추어 잘랐고 그 시절 대 유행했던 말머리가 되어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참 그 시절엔 또 칼머리가 유행이었단 사실! 뒤가 짧고 옆은 사선으로 앞쪽으로 갈수록 길어지는 스타일이다.
낭만고딩
중학교 졸업앨범이 실물보다 플러스 더 예쁘게 나왔다. 누가 알았으랴 그 앨범을 남자 고등학교에서 돌려본다는 것을! 그 시절의 앨범에는 집 전화번호와 주소가 다 담겨있었다. 정보보호가 없던 시절, 그럴 필요도 사실 없던 시절. 집으로 그렇게 전화가 많이 왔었단 사실을 고2쯤 되어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행은 "폰팅 하실래요?" 집 앞에 남자아이들이 찾아와 말을 걸었고 세상 도도하게 쳐다도 보지 않았던 그 시절, 버스 안에서 쪽지를 받고 학교 앞에 모르는 누군가가 꽃을 가지고 서 있고, 그때의 낭만을 충분히 누렸었다. 중학교 졸업앨범 사진 하나로 인기 스타덤에 올랐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관심들이 나의 자존감을 키운 건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나갈 때쯤 나에겐 삐삐가 생겼다.
학교의 공중전화에는 쉬는 시간마다 삐삐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려는 여자아이들로 긴 줄이 생겨났고
111216 , 486486. 등등 숫자 언어가 줄줄이 만들어졌다. 비밀번호 4자리를 누르고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설렘과 삐삐에 음악을 담아주기 위해 공테이프에 라디오 음악을 녹음하던 두근거림이 예쁘게 내 가슴에 담겨있다.
HOT파, 젝스키스파로 나뉘어 팬심의 끝판왕을 보여주던 두 친구는 결국 심한 말다툼을 하고 돌아서기도 하였고, 야자시간 전 음악방송을 보기 위해 외출증을 끊어 나간 학교 앞 분식집에서 먹었던 쫄면 맛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친구는 SES 바다 머리를 잘도 흉내 내어 만들고 함께 스티커 사진도 찍고 노래방도 가곤 했었는데
스티커 사진이 그때 왕 유행을 해서 아직도 그때의 사진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특히 가발 쓰고 찍는 게 유행이었다.
99학번의 추억
모토로라 스타택 휴대폰이 생겼고 배터리 때문에 매년 휴대폰을 바꾸게 되었는데 그때 사용했던 핸드폰의 그립감이 아직 손끝을 맴돈다. 그 시절 김희선의 사자 폭탄머리가 유행이어서 나도 뽀글뽀글 볶아서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었다. 예술대학이어서 앞치마를 매고 캠퍼스를 지나다녔고, 콧대 높은 예대생 흉내내기를 하며 친구들과 노래방 추억 쌓기를 많이 했다. 왜냐하면 그 시절 노래방이 한 시간에 1000원이었기 때문이다. 나우누리, 하이텔, 천리안이 사용하던 시절, 좀 지나니 pc방이 생겨나고 스타크래프트, 하두리 채팅을 하러 나도 한 번씩 갔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2002년 월드컵이 가장 선명하다. 대학 안에서 대한민국을 응원하던 열기, 4강 진출과 함께 사람들이 도로로 몰려나와 빙글빙글 돌며 꼬리잡기를 하고 버스 위에 올라간 청년들을 보며 웃고 또 웃었던, 기쁨의 축제를 모두 함께, 정말 함께가 되어 만끽했다.
그땐 그냥 순수했다. 내 나이도 순수했지만 우리들의 삶도 순수하고 담백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한 번쯤 꼭 다시 가고 싶은 순간들이 어떤 날은 사무치게 그립기도 하다. 단편적이고 짧은 순간의 기억들이지만 오감으로 기억되기에 이 모든 순간들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