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없어지지 마

by 심횬


“옆에 있을게”


나는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연우가 옆에 없음을 공허함으로 느꼈던 보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연우가 궁금했고 빈자리가 마음을 휑하게 했다.


그런데 연우는 “이제 없어지지 마”란 내 말에 답이 없었다.


“…….”


무거운 침묵이 잠시 이어지고 우리는 말없이 김치볶음밥을 먹었다. 두 숟가락을 삼키고 세 숟가락을 입에 넣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김치볶음밥의 밥알이 고슬고슬 살아 있고 김치는 잘게 썰어져 밥사이 켜켜이 담겨 있었다. 당근과 양파가 적당히 좋은 식감으로 익혀 있었고, 양념이 된 듯한 소고기는 이질감이 없이 담백했다.


“연우야, 이거 너무 맛있는데”

“엄청 연구한 거야”

”응 “


나는 고개를 아래위로 크게 끄덕였다.

연우는 몇 숟가락 먹더니 가만히 나를 본다.

“설아, 나는 지금이 꿈인 것 같아”


나는 말없이 웃었다. 스터디카페에서 연우와 마주친 것부터 나에겐 꿈같은 일이었다. 어린 시절, 연우에게 초록빛 사탕 바구니를 받은 것도 꿈같은 일이었다.

그 꿈같음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마음이 붕 하고 부풀었고 얼굴이 반짝이는 느낌이었다.


그날의 사탕바구니는 사실 조금 다른 의미이긴 했다. 연우의 존재감이 나에게 있긴 했지만 나와는 멀리 있는 친구였고, 그 사탕 바구니가 내 것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혹시 내 것이 아닐까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여자 아이들은 작은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너무 엉뚱하게도 연우는 그 초록빛의 사탕 바구니를 두 손에 달랑달랑 들고 학원으로 와 책상 위에 턱 하니 올려놓았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라고 마치 공개고백을 하듯 그렇게 올려둔 빛이 영롱한 사탕 바구니는 모든 여학생들의 바람이 된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는 모두의 바람이었던 초록빛 사탕 바구니 그 자체가 주는 의미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나에게 박 연우는 키가 크고 얼굴이 하얀 그저 멀쩡하게 생긴 그냥 남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게 연우였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바구니를 나는 몇 년 동안 버리지 못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다채로운 빛을 나타나는 동그란 사탕의 초록색 포장이 예뻐 차마 그것을 먹지 못했다. 몇 년 뒤에 사탕이 녹아 포장지틈으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그것을 버리게 되었다.


“연우야 너 초등학교 때 나한테 줬던 사탕 기억나?”

“왜 동그란 막대사탕이 반짝거리는 초록색 포장지에 싸여 있었잖아, 그게 동그랗게 생긴 바구니에 담겨 있었어 “


“너 그걸 기억해?”


“당연하지, 예뻐서 몇 년 동안 버리지도 못했는 걸”


“혹시 사탕을 먹지 않은 거야?”


“초록색 포장지가 너무 예뻐서 못 먹었어”


“그럼 버릴 땐 어떻게 버렸는데?”


“그건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사탕에서 찐득찐득하게 나와서 엄마가 하도 버리라고 해서 쓰레기통에 넣었던 것 같아”


연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나는 알 수 없는 연우의 비언어적인 행동에 궁금함이 생겼다


“연우야 이것과 이것에 의미는 뭐야?”

나는 손가락으로 눈과 입을 가르쳤다


“그건 지금 말을 해 줄 수가 없어, 다음에.”

연우의 입은 굳게 닫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연우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나는 연우 집 거실을 둘러보았다. 자세히 보니 짐이 들어있는 상자가 곳곳에 보였다.


“연우야 혹시 이사 가는 거야?”

“아니, 난 아니고 가족들은 한 달 전에 이사를 갔어”

“집이 팔릴 때까지 여기 혼자 있고 싶다고 얘기해서 지금 이렇게 있는 거야”

“혼자 지내면 불편하지 않아?”

“아니 전혀, 난 여기가 좋아.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내가 이 집을 다시 살 거야. “


연우는 예쁜 접시에 과일을 예쁘게 담아 가지고 왔다. 연우는 정말 혼자 지내는 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정성껏 밥을 지어먹고 곧장 설거지를 하고, 예쁜 접시 과일을 담을 줄 아는 그 아이와 며칠 만에 함께 있다.


일상에 연우가 스며들어 함께 보낸 1년의 시간보다 오늘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작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다음날 연우는 내 하루의 시작 점에도 내 하루의 끝 지점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나는 연우에게 메일을 썼다. 간단하게 딱 한 줄의 글을 썼다. “연우야 보고 싶어”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실눈을 뜨며 전송을 눌렀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조마조마하며 보낸 메일함에 들어가 수신확인을 새로고침을 누르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아직 연우가 읽기 전이다. 바로 옆에 발송 취소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발송을 취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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