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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횬 Oct 25. 2024

날개 없는 잠자리는

#13. 날개 없는 잠자리는       


                  

무기력함은 소통의 끈을 연약하게 만들었다. 바로 타인과의 소통이었고, 가족, 친구들과의 연결 고리의 투명도를 낮추어 선명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내 결혼 9년 차의 큰 이미지였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선명했던 시댁의 존재는 내 증세를 악화시켰다. 나름의 거리 두기를 하려 애썼지만 그 애씀이 오히려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말도 안 되게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못 지키는 것 같은 이상한 죄책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것이 세상의 문을 닫게 하는 이유였다.     


은서와의 소통이 소원해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보통 일주일에 한두 번은 길게 통화하며 한 달에 하루는 얼굴을 보던 우리였다. 오랜만에 전화를 했던 그날, 은서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어쩔 수 없이 대학 시절 자료를 주고받았던 메일을 찾았다. 그리고 은서에게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는 빛이 싫었다. 밖으로 나서는 것도 귀찮았다. 아침이면 적당히 가벼운 커튼을 쳤다. 그리고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아 멀리 했던 믹스커피를 마셨다. 어느 날부터 달달한 믹스커피의 카페인이 위로가 되었다. 물론 믹스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어떤 것도 흉내 내지 못하는 달달한 맛 때문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은서에게 보낸 첫 메일부터 자유를 뺏긴 한 사람의 처절한 절규가 담겨 있었다.     


“현우야, 은서가 연락이 안 되네.”     

“바쁜 게 아닐까?”     

“전화를 꺼 놓을 정도로 바쁜 건 아닐 텐데?”     


나는 어리석게도 은서에게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녀는 나에게 늘 의지의 대상이었고, 언제나 당당했고 그 모습은 나에게 선망이 되었고 믿음직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만약 은서의 아픔을 단 한 톨이라도 알았더라면 나는 전화가 꺼져 있음을 발견한 즉시 나의 아픔을 부여잡고 그녀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어쩌면 이 말도 나에게 변명하기 위한 모면책일지도 모른다.


조금 더 빠르게 은서에게 내 아픔을 전했다면 어쩌면 그것이 마음에 걸려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은서에게 그런 존재였으니.   

  

두 달 전 예약 발송된 우편 등기는 나에게 잘 전달되었다. 거기엔 은서의 채취가 남아 있었다. 은서에게는 늘 좋은 향기가 났다. 우체부에게 배달된 등기 우편, 은서의 이름을 발견하고 곧장 심장이 두근거렸다. 며칠 전부터 은서가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은 불안함이 마음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은서의 편지, 가지런한 글씨,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쓴 듯한 마지막 문장, 지난 세월 은서의 고통, 은서는 그것을 들키지 않으려 얼마나 애를 썼을까? 나에게 은서는 구김살이 하나 없는 밝기만 한 아이였다. 외국인 아버지,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아이, 사회의 시선, 가족들의 학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이곳이 낯선 곳이었을 은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선은 그의 가족들에게 공유되었을 것이고, 가족이라 부르기에도 부끄러운 그들을 은서에게 어떤 짓을 한 것일까?  

    

은서는 낯선 이방인, 지난 나의 9년이 은서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고통이었지만 어쩐지 우리의 그 시간들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내 품으로 돌아온 것은 은서가 죽기 넉 달 전이었다. 엄마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너무나 흐릿해졌지만 엄마의 첫사랑, 나의 아버지, 외롭게 자랐지만 세상을 사랑할 줄 알았던 사람, 그저 가족이란 공동체가 익숙하지 않아 벗어나려 애쓰다 사회의 어두운 곳이 도피처가 된 사람, 외롭게 자란 유년 시절을 지나 엄마를 만나며 내 아버지도 낯선 이방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내 아버지, 김태풍, 당신은 무엇이 더 힘들어 그런 선택을 했나요? 그곳에는 당신이 그리워하던 자유가 없었나요? 아버지에게 묻고 싶었다.      


“고운아, 이것 좀 봐.”     

“응?”      

“여기 개미들 좀 봐”      

“개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렇게 줄을 지어 가네”     

“당연히 개미들이 집으로 가는 거겠지.”     

“그곳은 어떨까? 갑갑하진 않을까?”      

“고운아, 여기도 좀 봐”

“거미다. 엄청 커”     

“거미줄은 거미집이네. 여기서 사는 건 어떤 기분일까?”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까 재밌을 것 같아”      

“그래 재밌을 것 같네”      


아버지는 늘 자연을 보았다. 그리고 나를 불러 이야기했다. 어느 날은 개미를, 어느 날은 거미를, 어느 날은 꽃에 앉아 있는 나비를 보며 그들의 삶을 궁금해했다. 그땐 아버지가 알려주는 세상을 자세히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 왜 그가 저렇게 그것들을 자세히 보았는지를. 작은 미물들이 움직이는 모습조차 그에게는 자유로 느껴졌을 테니 계속해서 그것들을 보며 다른 삶을 갈구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처럼.    

  

어떤 것의 돌파구를 찾으려 할 때, 어떤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그것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으면 처음에는 그 답을 찾으려 애쓰다가, 다시 그 현실로 들어가 고통스러워하다가 또다시 벗어나려 애쓰다가 더 이상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면 벗어나려 함을 포기하게 된다. 그때 나는 그랬다. 아버지가 돌아오고, 은서에게 마흔두 통의 메일을 보낼 때까지. 포기는 무기력함으로, 무기력함은 삶의 의미를 잃게 했다. 연락이 닿지 않는 은서에게 보낸 메일은 하루의 의미였고, 상자 안에 가득 담겨 있던 믹스커피는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다. 한 번에 두세 개씩 대충 타서 마셨으니 그럴 만도 했다.     

 

꿈에 나는 잠자리가 되었고, 시원해진 하늘을 높이 높이 날고 있었다. 꿈에서 하늘을 나는 느낌은 정말 짜릿했다. 둥실 떠오른 내 몸은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그러다 누군가의 두 손에 잡혔다. 그리고는 날개가 하나씩 뜯겼다. 뜯김의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땅에 내동댕이쳐져 다시 날려고 했을 때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었다. 땅에 달라붙은 듯 아무리 움직여도 꼼짝도 하지 않는 몸뚱이는 고통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도 생생한 그 느낌에 양손으로 두 팔을 어루만졌다. 꿈에서 날개는 뜯겨 나갔지만 지금 나에게 팔이란 게 있음이 행복했다. 현우는 기척에 깨어 눈을 살며시 떴다.      


“꿈꿨어. 끔찍한 꿈.”      


현우는 말없이 나를 안아 품에 담았다. 그날은 그 품조차 억압으로 느껴져 얼른 빠져나오며 말했다.    

  

“현우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                          

               

잠자리가 되어 날개가 뜯기는 건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바닥에 떨어져 날지 못했을 때의 고통은 온몸의 신경을 뾰족한 송곳으로 찌르듯 아팠다. 나는 저항해야 했다. 내 자유의지를 위해.

     

“우리 그만하자. 현우야 “         


현우는 아무 말이 없이 침대에서 일어나 매트리스 끝에 걸터앉았다. 자다 깬 현우의 머리는 위로 솟구쳐 있었고 잠이 덜 깬 듯 머리를 털어 냈다. 그런 현우를 나는 말 없이 바라봤다. 현우는 결혼 후 나에게 한결같았다. 그의 집에도 한결같았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의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을 거란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만해야 했다. 내가 제대로 다시 삶을 살려면, 내 삶이 다시 반짝이려면 여기서 멈춰야 했다. 현우는 결혼을 망설이기에 아까운 사람이었지만, 현우의 주변 사람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결혼이란 제도가 왜곡되어 한 사람을 얽어매는 일이 되었다. 그들은 과연 그것을 원한 것일까? 자식의 결혼 생활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원한 걸일까? 아마도 그건 아닐 거다. 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이 깊어지고 있었다.        


”현우야, 나 좀 봐 “       

”응, 고운아. “          

”있지, 나는 다시 반짝이고 싶어. 예전처럼 자유롭게 “      

”나도 네가 그러길 원해. 고운아 며칠 시간을 좀 줄래?”          

”나도 생각을 더 할게 “           


그렇게 우리의 새벽, 동이 완전히 트기 전 하늘의 빛이 맑아질 듯 한 시점, 우리는 헤어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현우는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현우의 부모님 댁으로 출근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날 남정숙의 집에는 폭풍이 불었다. 장영의 목소리는 높아졌고, 남정숙은 뒷목을 잡았다.  결혼생활 9년,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자식의 독립 선언, 독립을 승낙하지 못하는 부모, 그들의 갈등이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부모는 본인들이 살아왔던 시절을 촘촘히 꺼내었고, 그것을 자식 세대에 똑같이 강요하며 그 시절 어른들처럼 어떻게든 함께 하려 했고, 결혼 후 가정의 독립을 희망하는 자식은 그 이야기가 무척이나 구시대적인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했다.     


현우는 단 한 번도 부모의 뜻을 어긴 일이 없었다. 그것이 어쩌면 남정숙과 장영 부부를 길들였는지도 모른다. 말 잘 듣는 착한 아들의 삶을 계속해서 그들과 공유하기를 원했고, 그 아들의 아내 역시 자신들의 삶 안에 있어야 한다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 그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아침부터 집으로 와 독립 선언을 하니, 장영은 목소리가 커지고, 남정숙이 뒷목을 잡을만했다.  현우는 선언을 하고 집을 나왔다. 나오는 길에 어찌나 후련하던지 마치 무거운 옷을 훌훌 벗어던진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오전 11시, 현우가 집을 나서고 10분 뒤, 남정숙에게서 전화가 왔다.        


”잠시 좀 보자. 오너라 “     


그녀의 말에 잠시 생각을 했다. 나는 오전 11시의 쨍한 햇빛과 만나는 게 싫었다.  

        

”어머님이 좀 와주시겠어요?, 제가 빛을 보는 게 싫어서요 “           

”흠, 그래 알았다."   

       

30분 만에 도착한 남정숙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 대신 처음으로 현관 초인종을 눌렀다. 부산하게 들어온 그녀는 차가운 물을 찾았고, 내가 건넨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내가, 내가 잘못했다.”           

“네?”           

“내가 잘못했어, 내가 좀 잘못 배워서 그래.”     

“어머님, 갑자기 이러시니까 제가 좀 혼란스럽네요.”  

        

남정숙의 뜬금없는 사과, 그땐 현우가 집으로 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어떤 이유에서 나에게 사과를 하는지 알 수 없어 나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현우가 다녀갔어. 헤어지자고 했다고.”           

“아... 네.”        

“그래, 많이 힘들었지? 얼마나 힘들었으면 둘이 그렇게 좋아 죽는데 헤어지자고 했겠니”    

       

그렇게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 평소 괄괄한 성격인 남정숙은 나에게 사과를 했다. 자존심을 다 접고 연거푸 미안하다고 다시 생각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자신의 시집살이 이야기를. 어린 날부터 너무나 불행했던 가정에서 자라며 결혼을 하고 만난 결핍이 없는 가정은 꿈에 그리던 모습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곧장 동네에서 괴팍하기로 소문난 시어머니와 시할머니의 시집살이는 시작되었고 그 시절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인 가풍이 꽉 찬 시댁의 분위기에서 남정숙은 거의 시종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고 했다. 거기에 꼬장꼬장한 남편 장영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남정숙은 숨 한번 제대로 내 쉬지 못하고 몇십 년을 살았으니, 그것이 화병으로 남아 지금도 밤마다 가슴을 여러 번 쳐내야 잠이 든다고 했다.  

   

그 시절이 너무도 억울하고 애달파 가슴이 메어지지만 어린 시절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고, 그 결핍을 채우는 대상이 현우였다고, 현우는 엄마의 시집살이를 곁에서 보고 자랐으니 늘 엄마 편이었다고 했다. 그런 현우가 결혼을 한다니 뒤숭숭한 마음이었고, 자신은 며느리를 딸처럼 여겨 곁에 두고 싶었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이상하게 용심이 생겨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현우가 1번이 되니, 며느리가 하는 것은 하나 이뻐 보이지 않고, 이것 좀 더 했으면, 이렇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만 쌓였다고. 계속 못마땅해지니 말투가 밉게 나오고 잘하고 있는 아이, 괜히 미운 마음이 더 생겨 트집만 잡게 되었다고. 늘 그 상황이 지나고 나면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집에서는 장영의 비위를 맞춰야 하니 그냥 그렇게 지나갔다고 했다.       

    

그리고, 내 증상을 이야기했다. 남정숙 자신도 꼭 그랬다고, 결혼 10년 차쯤 되니 쌓인 화가 더 이상 자리 할 때가 없었는지 속에 말들이 툭툭 튀어나왔고, 특히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 앞에서 속에 말들이 나왔을 때,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나중에는 속이 다 시원했었다고. 시어머니 역시 당황했지만 나중에는 모른 척을 해주셨는데 그게 병을 빨리 낫게 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 증상이 툭툭 그녀 앞에 나왔을 때 모른 척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겸상도 하지 않아 장지에서 상을 수차례 차려 내야 그제야 밤이 되었다고 했다. 자신을 위해 살아낸 시간은 없었다고, 그것이 아직도 억울한 일이지만 또 자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정이 잘 돌아간 것 같다고도 했다.  

         

“요즘 하고는 참 안 맞지?” 남정숙은 알고 있었다.          

“근데, 너희 아버지한테는 안 통할 거다. 워낙에 좀 그렇다.” 남정숙은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장영은 생각이 다르다고 전했다.     

“우리 생각하지 말고 현우하고 다시 시작해 봐라, 내가 오늘 이 얘기하려고 온 거다. 아버진 내가 잘 어찌해 볼게 “     


남정숙은 송두리째 흔들린 내 삶을 제대로 고정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것은 진실인 듯 아닌 듯 헷갈렸지만 여기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은 그녀가 나에게 사과를 하러 온 것이다.  한 시간 뒤였다. 초인종 소리가 들렸고 장영이 서 있었다.     


“아버님, 여긴 어떻게?”     


장영은 역시나 화가 많이 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고, 이상하게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리 집안에서 이혼은 없다. 그리 알아라”     

“그동안 힘들었다면 미안타. 그리 알아라 “  

   

그날 그들의 움직임은 빛을 보러 움직이게 했다. 물론 그날 이후로도 연결고리를 완전하게 끊진 못했지만 적어도 아무 때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오는 일만큼은 사라졌다.  토요일에 한 번씩 집으로 불려 갔지만 두 개의 앞치마가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그들에게 며느리였고 부당함을 느끼는 날도 많았고, 여전히 자유롭지 못했다. 마치 그들과 결혼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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