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철원 경찰서
대학시절을 함께 보낸 칠공주, 그 중 가장 의지 했던 은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은서에게 삶은 계속해서 저항이었을 테니, 계속해서 은서의 지난날이 내 가슴에 사무쳐 한동안 내 무기력함은 침대와 소파를 오고 가며 심각해져 있었다. 현우가 아니었다면 은서의 저항에 매몰되어, 그때의 내 상황을 원망하며 나 또한 은서의 길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현우는 지극정성으로 입맛을 돋우는 음식들을 해서 나를 불렀고, 쾌적한 환경을 유지시키려 애를 썼다.
희선과 통화를 했고, 한동안 우리 둘은 아무 말 없이 은서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리고 들려온 희선의 이야기는 나를 웃음 짓게 했다. 희선의 넷째 소식, 기뻤다. 은서와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한가닥의 희망이었다.
”진짜 이건 아니잖아, 셋도 힘들어 죽겠는데, 넷이라니, 고운아, 이건 좀 너무 한 것 아니니? “
희선은 육아에 저항 중이었다. 남편은 일이 바빠 매일 독박 육아를 하고 있다며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하루가 전쟁 같아 겨우 견디고 있다고 했다. 나는 희선이 부러웠다. 전쟁같이 바쁜 하루를 살아보고 싶었다. 그 하루를 살면 에너지가 마구 생길 것 같았다. 살아 있는 삶을 다시 잘 살아보고 싶어졌다.
영현이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녀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현모양처가 뭔지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 꾸었던 영현의 꿈, 영현이에게도 은서 소식을 전했고, 한동안 우리는 침묵했다. 우리가 보낸 이십 대는 저 멀리 가버렸지만, 그 시절의 서로를 기억하고 있으니 은서는 늘 우리 곁에 있는 거라는 그녀의 말에 살며시 웃어 보았다. 따뜻한 영현은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녀는 지금은 솔로의 삶을 즐기고 있으니, 가장 먼저 결혼할 것이란 우리의 예상을 깼고, 어쩌면 결혼이란 것에 저항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무 살, 우리의 시절에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을 정하기 위한 선택이란 걸 했지만 그 선택을 무척 만족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칠공주 누구에도 선택에 대한 만족을 묻지는 않았다.
작은 이모가 만족하고 있는 선택은 서른 살이 훌쩍 넘어서니 나이에 세월이 묻으면 선택이 조금 현명해지는 것도 같았다. 작은 이모 박정남은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어느 날은 파리로 가서, 어느 날은 뜬금없이 베트남으로 가서, 또 어느 날은 포르투갈에서 여러 권의 베스트셀러책들은 그녀가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도록 해주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자유를 위한 글을 썼다.
나는 현우와 헤어지지 않았다. 그날 남정숙과 장영의 초인종 방문으로 계속 그들과 연결되기를 선택했다. 내 선택에 대한 답은 저 멀리 있기에 아직 답은 알지 못한다. 그 답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은 나이니, 이제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답을 만날 수 있을까?
“현우야, 너에게 선택은 어떤 의미야?”
“선택? 음..., 널 만난 거?, 여기 이렇게 같이 있을 수 있게?”
“있지, 선택은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아닐까?”
“고운, 너무 철학적이야, 삶이 선택이라는 거지?”
“응, 지금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 아침을 무엇을 먹을지 고르는 것,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는 것, TV채널을 돌려 멈추는 것, 다 선택이잖아. 순간순간이 다”
“오 진짜 그러네.”
“그런데, 현우야. 한국은 선택의 주체성이 약한 것 같아. 누구나 자유를 꿈꿀 텐데, 왜 우리는 아직 자유롭지 못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름을 선택하지 못할까?”
현우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그건 나 같은데, 주체성이 약한 거. 자유를 꿈꾸는 것. 다름을 선택하지 못하는 거”
“그건 우리 모두의 이야긴 것 같아”
현우와 나는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내가 던진 선택이란 단어에 현우는 뭔가를 다짐한 듯 보였다. 그것이 뭐든 나는 현우 옆에 있기로 했다. 그의 선택을 믿어보기로 했다. 하지만 과거의 상처는 무를 자르듯 단절되지 않는 법이었다. 그들의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은 계속해서 나를 억눌렀다. 무기력함에서 조금은 벗어났지만 그들의 동굴에서 계속해서는 늘 작아지는 현우를 봐야 했고, 나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
오랜 시간 관습처럼 묶인 남정숙과 장영의 가치와 태도는 쉽게 변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선택을 하지 지 않았다. 여전히 어느 주말에는 함께 하기를 원했고, 여전히 제사를 고집했으며, 여전히 며느리의 포지션은 주방이었다. 앞치마 두 개 중 하나는 거의 처음과 같은 상태로 빳빳함을 자랑했으니...,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시간들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결혼 9년 차 겨울, 나는 다시금 다른 선택을 꿈꾸고 있었다. 그날, 철원으로 가지 않았더라면 어떻게든 잠자리 날개를 이어 붙여 날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시간들은 나를 붙잡았다. 잠자리 날개를 붙여 날지는 못했지만 작은 날개가 돋아난 그날, 나는 내 삶을 이끌어가기로 작정했다. 현우와 함께.
유난히 차가웠던 겨울, 오후, 나와 현우를 태운 자동차는 강원도 철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눈을 걷어 내는 와이퍼가 무척 지친 듯 느껴졌다. 지쳐 있는 것은 자동차 타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체인에 묶여 시속 20km의 속도로 안간힘을 내어 자동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미끄러지지 않게 목적지로 달려가는 것이 꽤나 안쓰럽게 느껴졌다.
“현우야, 무척 애쓰는 것이 꼭 우리 같아.”
나는 이 상황이 현우와 함께 9년이란 시간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미끄러질 것 같은 타이어를 체인이란 것에 겨우 의지해 움직이고 있는 자동차..., ‘지금 우리에게 체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에 대한 어설픈 연민? 아니면 곧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연약한 책임감?’ 나는 옆 좌석 등받이에 고개와 몸을 찰싹 붙이고 곁눈으로 자동차의 속도가 보이는 계기판을 바라봤다.
“너무 갑갑해서 구토가 나올 지경이야.”
“어쩌겠어. 여기만 지나가면 괜찮아질 것 같아.”
“자긴 괜찮아? 자리 바꿔줄까?”
운전대를 잡고 집중한다면 순간의 감정에 설득당해 체인을 벗어던질 생각들을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정말 집에 도착하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현우에게 선포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다. 나는 내 삶이 주체성 없이 느려터진 체인에 끌려가는 삶이라 여겼지만 끌려감에 익숙해져 버려 끊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겁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계속해서 내 선택을 번복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른다. 그것은 현우에 대한 책임이자, 도리라 생각했다.
하필 그날은 한반도를 소복이 뒤덮을 기록적인 폭설이 예측되며 일기 예보 속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더 높아질 때였다. 나는 TV속 기상캐스터의 이목구비가 매력적이라 생각하며 뭔가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것은 지난해 현우가 만들어 둔 산딸기 담금주였다. 투명한 500ml 용량의 작은 저그에 담긴 붉고 영롱한 빛깔이 꽤나 맛깔스러워 보였고, 투명하고 작은 잔에 산딸기 술을 졸졸 따르는 현우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우아하고 기품 있었다. 평소 감정의 기복이 별다르게 없는 현우는 그날따라 상기된 표정이었다. 현우는 기품 있게 따른 산딸기 술을 한입에 털어 넣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반나절 동안 꾹꾹 참은 이야기를 꺼냈다.
“전화가 왔어, 기억나? 그때 그 카메라?”
“응? 카메라? 뭐? 그때 도둑맞은 그거?”
나는 손가락으로 연도의 횟수를 세었다. 살짝 취기가 올라 손가락 열 개를 쭉 펼치며 현우에게 흔들어댔다. 현우는 눈앞이 어질어질해지며 손가락 마법에 걸린 듯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런 현우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10년이야, 자그마치 10년, 말도 안 돼. 어디서 온 전화야?”
“철원경찰서래”
“강원도 철원?”
“내일 같이 다녀올래?”
“일기예보 봤어? 괜찮을까?”
“체인 챙겨서 같이 움직여보자. 여행겸, 우리 멀리 안 나간 지 꽤 됐잖아.”
현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현우와 여행을 간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음날은 토요일이었고, 철원으로 가자고 마음을 모은 순간, 전화가 울렸다. 이제는 한 번씩 금요일 늦은 저녁 그들에게 전화가 왔다. 여전히 주말마다 함께 무언가를 하기를 간절하게 원하시고, 그 원하심을 매우 한결같이 표현하시는 남정숙과 장영이었다.
나는 현우와 함께 살게 되고 처음 일 년을 보내며 이해를 해보려 했다. 결혼한 자식을 매주 불러 함께하기를 원하는 부모, 무언가 자신들의 삶을 가르치려는 남정숙과 장영을 이해하려 했다. 3년 동안 주말, 매 식사시간 콸콸 흐르는 물에 숟가락질로 인해 추상화의 감성이 느껴지는 그릇의 안쪽 면을 닦으며 이해의 의지도 함께 씻겨 내려갔다.
오랜만에 온 전화라 철원은 가지 못하겠구나 싶었는데, 웬일인지 현우가 일이 있어서 못 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전화기 너머로 깜짝 놀라 찌그러져 있을 남정숙의 얼굴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는 꼭 철원으로 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일 저녁 또 추상화가 그려진 그릇을 닦아야 할 테니...
현우는 나에게 꽤 헌신적이었다. 몇 해전 정리한 미술학원 앞에서 우리는 처음 마주쳤다.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던 아침, 전날 비가 내려 땅은 촉촉했고 햇살은 그 땅을 말리려 더 강렬한 빛을 내렸다. 나는 그 빛이 좋아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고 현우는 문을 열고 나서는 내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현우에게 햇살은 나에게만 비추었다고, 너무나 빛이 나서 감히 쳐다볼 수 없었다고, 그래서 그날 현우는 내내 땅만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현우는 내 마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마침 나의 두 번째 사랑이 치졸하게 끝난 무렵이었기에 현우의 마음은 나를 치유했고, 곧장 우리는 사랑이란 것에 빠졌다. 그 당시 내가 현우에 느낀 호감은 표현하지 않았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무척이나 애써야 했음을 아직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도 현우는 필연이었다.
현우의 두 번째 고군분투는 결혼이었다. 나와의 결혼을 위해 그는 온 마음을 다했다. 나는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고 은서에게 여러 번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결혼 후 아들과 분리되지 않으려는 현우의 부모님으로부터 시작된 나의 이상하고 오묘한 감정들은 현우에 대한 마음까지 차갑게 만들었다. 그 이상하고 오묘한 감정들은 계속해서 나를 어둡게 만들었고, 마치 새장에 갇혀버린 파랑새와 닮아 있는 듯했다.
철원으로 가는 길, 무사히 철원 경찰서라는 목적지로 가기 위해 타이어를 묶어둔 체인, 그것 때문에 시속 20km로 달리는 자동차, 목적지는 있지만 언제 도착할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지를 예측하지 못하는 그 길이 9년의 내 삶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를 닮은 2세가 없어서일지도 몰라. 그리고 결혼 권태기에 들어선 건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날 현우는 곁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언제 도착할까? 도착은 할 수 있을까? 도착한 뒤 무엇을 먼저 할까? 이런 생각.”
“걱정 마. 도착은 할 거니까.”
결혼 전 현우와 내가 함께 시간을 보내던 밤 시간, CCTV 사각지대, 아파트 외진 곳에 차를 주차를 해둔 차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다. 늘 그랬듯 조수석에 DSLR 카메라와 광각렌즈를 두었는데, 그날 밤 그것이 범인의 시야에 담겼고, 범인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큰 돌멩이로 자동차 조수석 쪽 유리를 강타한 것이다. 날렵하게 그것을 꺼내어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을 나는 상상했다. 현우가 큰 마음을 먹고 큰돈을 들여 구입한 DSLR 카메라, 현우에게는 그것이 고가의 돈을 주고 산 첫 카메라였기 때문에 시리얼 넘버로 정식 등록을 하였고, 범인이 팔아넘긴 카메라가 도난 물품임이 신고되어 경찰서로 들어온 것이다. 경찰의 기지로 중간에 두 자리를 훼손시켜 둔 카메라의 시리얼 넘버를 추적하며 현우에게로 연락이 닿게 된 것이다. 그것은 경찰도 기적이라고 말을 했던 10년 만의 일이었다. 우리가 철원 경찰서에 무사히 도착하게 된다면 결혼 전 현우와 연결되었다가 연결이 상실된 카메라는 다시 현우와 접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 사실은 내 마음을 가볍게 했다. 현우는 카메라를 다시 찾고 나는 다시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현우는 집 안에서는 남편감으로 나무랄 대가 없었다. 독립된 가정의 가장으로서는 완벽했다. 눈빛과 말투가 늘 다정했고, 요리를 잘했는데 특히, 파스타와 된장찌개를 맛깔스럽게 만들었다. 청소도 곧잘 했다. 내 컨디션을 체크하며 나의 상황을 공감했기 때문에 내가 무척 힘들어 보이는 날에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했다. 현우는 부모님에게도 최선을 다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그의 삶에서 매우 큰 영역이었고, 그의 신념이었다. 그런 현우는 매우 훌륭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그가 혼자서 그 신념을 지키며 살아갈 때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피가 섞이지 않은 가족이 된 나에게 그 신념을 공유했고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치부되면서 시작되었다. 결혼 3년 차까지 현우는 나의 질문에 늘 이렇게 답을 했다.
“있잖아, 현우야. 우리 이렇게 매일 주말마다 부모님 집에 가야 해?”
“그건, 나는 당연한 거라 생각해. 힘들지? 그래도 그건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힘들다고 공감해 주는 현우는 늘 그렇듯 나에게 이해를 부탁했다. 그리고 결혼 후 그들과의 저녁, 현우의 부모님 집에서는 경상도 특유의 가부장적인 대화들이 오고 갔다. 부모님의 집에서 현우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매번 그랬다. 싱크대 가까이 오지 않았고, 그의 동선은 식탁과 거실이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는 딱딱했고, 크게 소리 내어 웃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현우와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현우의 아버지, 장영이다. 그리고 또 한 명 더 있었다. 남정숙이다. 그녀는 내가 집에 도착함과 동시에 동선이 바뀌었다. 싱크대 앞에서 거실로, 식탁으로. 그리고 여전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정숙은 내 등뒤에서 이 소리, 저 소리를 시작한다. 나는 그 소리에 어지러워졌다. 삶이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름에,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의 동선에, 그곳에 없는 사람인 듯한 나의 역할에 의문을 던지며 내내 참아왔다.
‘이곳엔 나의 적들만이 있을 뿐이니, 나는 그들과 대적할 수 있는 적이던가? 노예던가?’
칠공주 친구 영현의 꿈은 현모양처였다. 솔로의 삶을 선택한 영현의 꿈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직도 그 꿈을 꾸고 있다. 영현은 광고 회사에서 일하며 야근이 끊이지 않아 피로가 겹겹이 쌓일 때마다 똑같이 외친다. “결혼해서 일 그만둘 거야”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이 이상하게 불편했다.
조선 후기에 꽃을 피운 강력한 유교적 가부장제는 그 세대로부터 우리의 세대까지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여성들이 혼자 사는 삶이 힘들어질 때 툭툭 튀어나온다고 나는 생각했다. 진심이 아닐지 몰라도 결혼을 통해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려는 것,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을 안살림을 책임지며 현모양처를 꿈꾸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했다.
‘가족을 수직적 관계로 만들어버리는 이상한 관습 안에서 과연 그 가족은 모두 행복할까?’ 한 사람에게, 특히 여성에게 말없이 강요하는 희생과 통제가 지금도 남아 있음이, 그것이 자신이 선택한 사람의 가정임이, 그 가련한 여성이 나였음이 참을 수 없이 비참했다. 하지만 그것을 9년이나 참았다.
차는 눈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며 체인에 의지했다. 속도가 점점 더 느려졌다. 나는 그 순간도 참아야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추상화가 그려진 그릇을 닦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몰라. 그리고 현우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이건 좀 이해해 줬으면 좋겠어.”
“고운아, 저기! 철원경찰서 보여.”
도착했다. 나는 지난한 시간을 견뎌냈다. 그리고 더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만난 현우의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다. 현우는 두 손으로 눈에 띄게 세월이 묻는 카메라를 연신 어루만졌다.
‘이제 괜찮겠지, 현우에게는 카메라가 돌아왔으니까.’
“현우야, 이제 집에 가자.”
“저.., 제 생각에는 눈이 그치면 출발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기.. 밖에 지금”
또다시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에 맥이 풀렸다. 눈은 심지어 폭폭 소리를 내며 내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는 소리가 나를 위로하는 듯이 느꼈고, 우리는 경찰관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현우는 경찰서 바로 앞에 주차한 차로 뛰어가며 두 팔로 카메라를 껴안아 꼭 잡고 고개까지 푹 숙여 카메라가 눈이 맞지 않도록 했다. 나는 천천히 뒤따라 걸어와 차에는 타지 않고 괜히 자동차 타이어에 부착된 체인을 발로 푹푹 찼다. 괜히 쌓인 눈이 파여 멀리 날아갈 뿐이었다.
일 년 전 토요일, 그날도 정숙의 싱크대는 나를 만났다. 부추전과 된장찌개, 샐러드와 밑반찬 몇 가지를 주문받아 나는 요리를 시작했다. 아파트 25층, 정숙과 장영의 집은 꼭대기 층이다. 현우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현우는 25층을 누른다. 속이 울렁대기 시작했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현우는 두 손에 쥔 참외 봉지를 만지작거리며 휘파람을 불러댔다. 그 순간 내 안에 화가 점화되기 시작했다. 19층쯤에서 내려가야 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 할머니께서 잘못 타셨다. 할머니께서는 내 안에 붉어진 화에 기름을 얹으셨다.
"25층 며느리네, 아이고 매주 온다카더만 진짜 효부네, 효부야."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요. 할머니.. 아, 아니에요"
나는 하마터면 이야기할 뻔했다. '토 나올 것 같아요. 도와주세요.' 효부라는 말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을 견디는지 누군가가 알게 된다면 자신을 이 엘리베이터에서 꺼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던 그날, 알게 되었다. 이제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것을.
얼굴이 달아오르고 표정은 굳은 채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는 정숙이 요청한 것이다. 부추 전, 된장찌개, 그리고 샐러드, 밑반찬 몇 가지. 정숙은 예상대로 동선을 바꾸어 내 등이 보이는 식탁 앞에 앉았다. 나는 마치 꼭두각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정숙이 시키는 대로 먼저 부추를 꺼내어 씻었다. 큰 대야에 부추를 담가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렸고, 부추의 끝을 흐르는 물에 씻어 흙을 날렸다. 그리고 4센티미터 길이로 썰었다. 그것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정숙은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꼭 1:1로 섞어서 반죽을 적당하게 묽게 만들라고 했다.
나는 적당하게 묽게 라는 말에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정숙에게 당장 달려가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여긴 원래 당신 자리가 아니냐고,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부침가루를 뜯어 스테인리스 대야에 담는 순간 손이 미끄러져 그만 한 봉지에 가득 담긴 부침가루는 눈이 날릴 듯 천장으로 올라갔다가 주방의 사방에 곱게 내려앉았다.
체인을 발로 툭툭 건드리는데 괜히 옆에 쌓인 눈이 폭폭 파여 위쪽으로 날리는 모습을 보며 그날이 생각났다. 그날, 정숙은 혓바닥이 없어질 정도로 혀를 차 댔다. 현우는 분명 그 소리를 들었을 텐데, 거실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날, 25층의 집에는 하얀 눈이 내렸다. 그 눈을 치우며 나는 생각했다. 봄이 오면 여기를 떠나야 해. 그날의 저녁 식사 시간에는 아무도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숟가락으로 추상화를 그리는 소리만 식탁에 울려 들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도 현우와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후 현우에게 이야기했다.
“이제 그만하고 싶어. 매주 토요일은 나에게 불행이야. 미안해.”
“고운아, 미안해. 하지만 이건 우리가 해야 할 몫이야”
“현우야, 미안해. 이제 너 혼자 해”
나는 그 이야기를 던지며 현우가 마음을 바꿔주기를 바라였고, 현우는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했다.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싱크대에서 멋진 음식 솜씨로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 나의 입안을 황홀하게 했고, 깔끔한 뒷정리는 내 눈을 동그랗게 했다. 또다시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금요일까지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 정숙의 전화를 받으며 각성한다. ‘이번에도 못 끝냈어.’ 현우의 애씀은 나를 위한 것인지? 정숙이 부르는 토요일을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매주 불편한 주말의 시간들은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또다시 강력한 무기력함을 채운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영현아, 네 꿈인 현모양처가 되면 너는 행복할까?”
“글세, 현모양처... 그거 사실 싫어. 아빠가 어릴 때 내내 나에게 그랬어. 우리 영현이는 커서 현모양처가 돼 거야. 그때마다 우리 엄마는 눈을 부릅뜨고 아빠를 타박했지. 고운아, 현모양처는 내 꿈이 아니야.”
순간 가슴속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영현이의 아버지를 만나 왜 그렇게 딸이 현모양처가 되기를 원했는지 따지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히 영현은 알고 있었다. 전 세대에게 습득한 행동양식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의아하게 만드는 지를...
푹푹 외투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나는 자동차에 올라탔다. 현우는 카메라를 가슴에 품고 시동을 걸었다. 집으로 가고 싶었다. 집에 도착해 전 세대로부터 습득한 현우의 행동양식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어졌다.
“현우야, 천천히 집으로 가볼까?”
“가고 싶어?”
“응, 간절하게 벗어나고 싶어. 이제 나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현우는 말이 없어졌다. 그리고 와이퍼를 움직였다. 차 안에 히터를 최대로 올렸고, 현우는 내가 간절하게 원하는 집으로 핸들을 돌렸다.
‘현우야, 나는 피해자일까?, 너는 가해자일까?‘
현우는 시속 20km의 속도에 익숙해져 한결 여유 있는 손끝의 몸짓을 보여주었다. 나는 궁금해졌다. 지난 9년이 나에게 파랑새의 새장에 갇힌 꼭두각시의 느낌이었다면 현우에게는 어떤 언어로 정의될까? 그 순간 엘리베이터 안에서 검은색 봉지를 들고 콧노래를 흥얼거렸던 현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그의 책임 반절에 나에게 얹어 편안하게 자식 노릇을 하며, 그저 행복했던 걸까?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현우는 조용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눈길이 체인을 붙잡고 당기는 느낌이야. 운전대를 놓고 싶은 마음이야. 내가 놓으면 네가 나를 잡아 줄래?”
25층 꼭대기 층의 아파트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습득한 현우의 모습은 그에게도 억압이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요구하지 않았지만, 이 땅에 박혀 아직도 뿌리가 뽑히지 못한 전 세대의 행동양식은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할머니로부터,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로부터 연결되고 연결되어 그를 억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앗아갔다. 독립을 하지 못한 어른은 더 어른이 되어갈수록 빼앗긴 자유를 갈구했다. 그 어른은 어쩌면 자신보다 약한 누군가를 그 안에 몰아넣고 위안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휘파람의 이유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연결고리를 끊어야 해. 같이 할래 현우야?”
남쪽으로 내려오며 눈은 그쳤고, 고속도로의 눈은 꽤 녹아 질퍽한 느낌이 닿았다. 우리는 졸음 쉼터에 차를 세워 타이어의 체인을 천천히 돌려가며 풀었다. 늦은 밤, 꽤 차가운 바람이 현우의 손에 닿았고, 나는 그런 현우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아 주었다. 현우는 시동을 걸었고, 차는 날개를 단 듯 가벼워졌다. 현우는 속도를 높였고 나는 연결고리를 끊어낸 듯해 웃음이 났다. 어쩌면 정숙도, 장영도 그것을 끊어내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입에서 절로 휘파람 소리가 났다. 다시는 겨울에 북쪽으로 가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창 밖을 보았다. 하늘의 회색 빛깔 안에서 빛나는 무언가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