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브런치’
나를 만나는 시간
산책
어린시절
어린 시절, 매우 내성적이었던 나는 마음을 잘 꺼내어 이야기하지 못했다. 말수가 적고, 눈물이 많았던, 그래서 늘 조용하고 생각이 많았던 아이로 내 어린 시절이 마음 안에 머물고 있다.
나는 나에 대한 기준이 높았다. 초등학교 때는 친구보다 공부를 잘해야 했고, 방학 때마다 받는 성적표에 언제나 올 ‘수’를 기대했다. 물론 그러지 못했다. 방학 탐구생활은 겨우 책이 닫힐 정도로 두껍게 과제물들을 끼워 최선을 다해 만들어 제출했고 늘 상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사춘기
너무 높았던 자기기준에 지쳤던걸까?
사춘기를 지나며 내성적이고, 강박적으로 열심히 하던 내가 변했다. 밝아지고,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다. 다만 정말 다행히도 그래서 나는 조금은 편안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그때의 유쾌했던 시간들이 마음에 꽉 차 있다.
이십대
그리고 나의 이십 대, 외로워하고 불안해하고 어딘가 모르게 텅 비게 느꼈던 마음들이 생각난다.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했던 중심이 없었던 그 시절이 마음을 흔든다.
삼십대
그래서 나의 삼십 대, 짝을 만나 가정이 생겼다. 그리고 그 후 육아의 시간들로 꽉 찬 나의 세월은 나의 중심을 잡아주었고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다. 수많은 역할놀이를 해야 하지만, 이 자리가 편안하고 못할 게 없는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올해 일을 잠시 내려놓고, 오전의 여유 있는 시간 동안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싶었고,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아 클래스를 다니며 지내고 싶었다. 그리고 운동을 하며 건강을 돌보기로 생각을 했다. 나에게 온 선물 같은 시간을 그저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반전이다.
올해의 가장 큰 선물은
그 모든 것이 아니었다.
바로 자연과 만나고 나를 돌아보며 걷는 ‘산책’이었다.
산책을 하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난다.
산책을 하며 사춘기의 나를 만난다.
산책을 하며 외로웠던 나의 이십 대를 만난다.
산책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한 나의 삼십 대를 만난다.
그리고, 지금의 나와 마주한다.
그 모든 나를 만나 나를 위로한다.
바람,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공기, 햇살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자연들 안에서
나와 만나는 그 시간들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한다.
그리고 그 벅찬 마주함의 감정을 이렇게 풀어놓는
여기 ‘브런치’의 공간이 허락됨은 또 다른 선물이다.
‘산책과 브런치’는 어쩐지 닮아있다.
나를 바르게 세워주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나를 더 깊이 만나게 해 준다.
어제의 산책에,
오늘의 산책에,
내일의 산책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