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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반짝이는 어린이 예술가들

24-25. Oct. 2020

by 시몽

24. Oct. 2020


커피 내려주고 있는 필립포.




아침부터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필립포랑 얘기하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얘가 철학과 phd를 하고 있어서 그런가. 브런치를 12시에 먹기 시작했는데 방에 들어가니 3시더라. 흡사 프랑스... 프랑스 사람들도 말하는 거 토론하는 것들을 즐겨서 식사 시간이 늘 기본 3시간이었는데.




오늘은 연애 얘기를 했는데, 한국엔 소개팅이 제일 만연한 연애 방식이고 술집에서 말 거는 남자에 대해선 왠지 편견이 있어 경계하게 된다니까 필립포가 "It's a shame" 이라며.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아시아 사람들은 How are you 문화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필립포는 본인은 낯선 사람과 말을 하는 게 어릴 때부터 일상이라 연애도 그냥 Hey, How are you 하면서 자연스레 해왔다며, 한국이랑 홍콩은 대체 무슨 일이냐고.


그리고 노래방 문화도 샨냐가 아시아 사람들은 대학생들이 부모님과 살다 보니 집에 초대하는 파티 문화가 아니며, 애들이 모일 때도 없다 보니 공간을 제공받기 위한 일한으로 노래방이 인기를 얻은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 때문인 것도 같았다.


한편, 특이한 게 서양은 노래 부르는 문화가 거의 없는 반면, 아시아 문화는 또 전반적으로 노래방을 필두로 해서 노래를 즐기고 많이 부른다.

반면, 한국이 왈츠니 뭐니 그런 춤을 추는 방법도 모르거니와 부끄러워하는 반면, 서양은 춤을 추며 즐긴다. 이렇게 같은 묶음 같아 보이는 춤과 노래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동서양 차이가 신기했다.




그리고 옆의 권터 앤더스는 필립포가 얘기해준 아침드라마 막장극 같은 전처와의 썰을 가진 철학가.




25. Oct. 2020


RA는 Royal Academy of Art의 약자다.


오늘은 Young Artists' Summer Show를 보러 갔다. 사실 영 아티스트가 20대 아티스트인 줄 알고 간 건데, 훨씬 더 영한 7살부터 19살까지의 아티스트들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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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알고 온 거지만 어떻게 이래 싶은 좋은 작품이 많아서 너무 좋았다.

아래 두 작품 작가가 각각 7살, 9살인데 색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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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에 이런 설명들도 너무 좋았다.

놀란 사람을 표현한 거라고.


여타 미술관들의 논문 수준에 달하는 어려운 문장들로 구성된 여러 가지 학문이나 학자가 인용되거나 사전 지식을 요하는 설명글을 읽다가, 그저 작품의 영감이 된 요소가 간결하게 적혀있는 아이 눈높이에 맞춘 이런 해설들이 재밌고 편한데다가, 아이드르이 예술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전해져서 정말 좋았다.




이건 15살 작품. 옷과 행동은 어른인데 얼굴은 아이인 이 그림을 통해, 본인이 가진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한 공포감을 투영한 것이라고 한다. 수려한 테크닉은 둘째치고, 내용이 어쩜. 게다가 표현 방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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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두 개는 가장 좋았던 작품들.


12살이 이런 구도에서 이런 사진을 찍다니.

배경, 색감, 구도 모두 완벽하다. 셀프타이머로 엄마 카메라를 가지고 찍었다고 한다. 피부색과 발레슈즈를 통해 발레에 대한 전 세계를 향한 열린 기회를 얘기하고 있다는 데, 여기서 다시 나이를 상기시켜보자면 이 아름다운 사진이 겨우 초등학교 6학년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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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8살과 10살이 만든 비디오.

로봇 꿈을 많이 꿔서 그 꿈을 재현해보고 싶었다며. 이 영상을 못 담아 너무 아쉬운데, 로봇이 지구에 방문했을 때를 상상하면서 찍은 이 영상 속의, 박스로 서툴게 만든 로봇 옷과 연기, 그리고 카메라 워크가 정말 하나하나 기발하고 귀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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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많은 영감을 받은 전시를 보고 나니 새삼 RA가 대단하다고 느꼈다. 왕립 예술 아카데미의 전시관 한 켠을 아이들을 위해 내주다니. 심지어 Young Artist라는 작가 칭호도 붙여줬다. 이 전시관 내에는 자기 또래의 작품을 보러 온 아이들과 부모님 관람객도 꽤 있었는데, 나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많은 자극과 영감을 받겠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4시에는 이탈리아 여자애 이레나와 약속이 있었다.

이레나와 이레나 친구 이탈리아인, 이 이탈리아인의 플랫 메이트인 멕시코인과 또 다른 친구인 불가리아인. 이 날 얘네 이름을 다 들었는데 벌써 기억이 안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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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내셔널 갤러리였는데 얘네와 같이 본 덕분에 흥미로운 점이 많았다.

먼저, 이탈리아가 가톨릭 국가라 애들이 대부분 그림의 내용을 이해하고 있었다는 점과 이탈리아 배경의 그림이 정말 많은 데다가, 자기네 동네와 그림 속 풍경이 여전히 별반 다르지 않다는 점.


다같이 베니스를 배경으로 한 그림이 가득한 방에 들어섰을 땐, 베니스 출신인 이레나의 친구가 오 여기 내 방이잖아 베니스가 그리워라고 했는데 그게 새삼 너무 신기한 거다. 정말 그림 속 베니스와 내가 여행을 통해 방문했던 베니스는 내가 봐도 별반 다를 게 없었는데, 본인에게 익숙한 동네 풍경을 그것도 외국에서 그림을 통해 보는 게 어떤 느낌일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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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내게 있어서도 내셔널 갤러리는 그 옛날 21살 배낭여행 때와는 전혀 달랐다.

이를테면, 자연스레 벽지, 벽색깔, 조도, 작품 나열 방식, 명제표에 눈이 갔다. 직업병 때문인지 이젠 또 다른 접근 방식을 통해 이 곳을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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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8221.JPG 양쪽 작품은 전혀 다른 작가의 그림인 데 의상과 시선 자세가 모두 비슷하다. 이를 발견하고 재밌게 느낀 큐레이터가 배치를 이렇게 해둔 것 같다.



전시를 보고 나오니 완연한 밤이 되었다.

조명이 켜진 내셔널 갤러리는 너무 아름다웠는데, 나오자마자 발견한 Welcome Back이라는 말이 내게 와 닿았다. 7년이 지나 다시 오다니. 당시 여행할 때는 이 곳을 공부하러 올 거란 생각을 전혀 못했는데, 그때보다 정말 많이 성장해서 이 곳에 왔구나 싶어 감흥이 새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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