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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01. 2019

#10 우리 아이 사춘기일까요?

BTS, 스타일 그리고 수학여행

전편: #9 하마터면 열심히 살아버렸다.

https://brunch.co.kr/@simon1025/11



1학기, 바아아아앙하아아아아악 그리고 2핚 다시 바아아아앙하아아아아악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별의 손 인사를 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막 늦잠 좀 자보려고 했는데. 여름방학은 마지막 숨을 뱉고는 운명을 다하였다.  


개학을 하고 나타난 아이들은 생각보다 변화가 없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는 토요일에도 학교를 나왔어야 해서 방학이 길었다. 개학날이면 언제나 선생님들은 "너희들 많이 컸다."라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러한 것이 기억에 남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당연히 많이 바뀌어져있을 거라 짐작한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눈에 띄는 변화라야 덥수룩해진 머리와 하나둘 자리를 잡아가는 노오란 여드름 정도였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옹골찬 사춘기의 씨앗이었다.




1학기까지만 해도 ‘아이들’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히 귀여운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이라는 호칭은 녀석들에게 민망했다.


그들

이제는 그들이라 불러 마땅했다. 2학기는 그들과의 전쟁이었다.


일단 그들은 절대 손을 들지 않았다. "발표해볼까요?"하는 나의 제안은 공허했다. 하나같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동여맸다. 메아리조차 울리지 않는 무서운 침묵이었다. 1학기까지만 해도 “조용히 해라”, “떠들지 말아라” 하루에 수십 번을 외쳤다. 이젠 그러한 외침은 필요 없었다. “제발 입 좀 열어라”, “누가 발표 좀 해줘라” 그들은 나의 부탁에 의해서만 겨우 입을 떼었다. 그들의 입은 천근이 되었다.


수업시간에 그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였다. 전 세계인들의 아이돌. 꿈과 사랑을 속삭이는 7인의 소년들. 바로 방탄소년단이었다.


모든 것이 방탄소년단이었다. 공책은 방탄소년단의 스티커로 도배가 되어있었고, 필통에는 방탄소년단 사진이 가득했다. 쉬는 시간이면 방탄소년단이 군대를 가야되나 면제를 받아야 되나 열띤 토론을 나눴으며, 미술 시간에는 방탄소년단이 그린 캐릭터 혹은 방탄소년단을 응원하는 팻말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루 종일 귓가에 들리는 노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뿐이었다.


만에 하나 방탄소년단을 조금이라도 흠집 내는 발언을 했다가는 담임이고 뭐고 공개처형을 받을 터였다. 그러한 방탄소년단이 제외된 수업시간에 그들의 표정에는 필요 이상의 따분함만이 가득했다. 어떻게든 수업에 관심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 덕분에 혹은 때문에 나의 공간과 시간이 방탄소년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대한민국 초등학교 6학년. 특히 6학년 2학기의 대략적인 실루엣에 대해 묘사해보자. 만약 내 주변 혹은 나의 자녀가 묘사된 모습과 같다면, ‘아 내 아이도 질풍노도의 사춘기에 접어들었구나.’하고 잠시 탄식하면 되겠다.


첫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스타일의 변화이다. 6학년이 된 그들은 5학년 때와 확연히 그 스타일을 달리한다. 아동복보단 대학생들이 즐겨 입는 스타일과 비슷하다. 다음의 항목은 스타일에 따른 사춘기 진단키트다.


더 이상 엄마가 스타일해준 옷을 입지 않으려 한다.

아빠와 같은 아울렛매장에서 산 등산복을 입지 않으려 한다.

마트에서 산 옷을 싫어한다.

애매하게 핏이 헐렁한 바지를 입지 않으려 한다.

후드가 달린 반팔티를 입지 않으려 한다.

등굣길에 보이는 아이의 바지가 롤업이 돼있다.

벽돌처럼 생긴 신발을 신고 있다.


만약 자녀가 항목의 절반 이상에 해당한다면 백퍼센트다. 사춘기다.


여자아이들의 경우엔 변화가 더욱 극적이다. 그들의 얼굴에 화장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난 남자인지라 어떤 종류의 화장품을 바르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겉으로 보이는 변화는 확실하다. 입술이 전보다 붉으며 목의 색깔과 얼굴의 색깔이 다르다. 앞머리에는 헤어롤이 말려있으며, 심한 경우엔 눈덩이가 주황 혹은 노란빛을 띤다. 이보다 더 나아간 경우, 광대 쪽에 연분홍 분칠이 되어있으며 눈에는 아이라인과 반짝이가 합을 이룬다. 마지막 써클렌즈까지 장착되어 있으면 거의 끝 단계에 이르렀음으로 보아야 한다.


‘휴 다행이네. 내 아이는 저렇게까지 하지 않아’라고 안심하기엔 이르다. 많이들 속고 있다. 학교에서의 얼굴과 가정에서의 얼굴이 다를 수 있다. 덧붙이자면 그들은 클렌징키트까지 들고 다닌다.

살짝 과장 덧붙이면 이 정도?



우리 반 아이들의 경우엔 위의 묘사와 같이 극적인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았다. 겉으로 드러내려는 변화보다는 침묵, 무관심, 욱, 권태와 같은 내면의 변화가 주를 이루었다. 예민해진 그들 사이에는 갈등이 잦았고, 전에 없던 몸싸움까지 일어났다. 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오늘 하루 무사히 지나갔음으로 감사해야 하는 날들이었다.


그러한 가운데 나의 감정 상황 역시 편안치 못했다. 일은 항상 바쁠 때 겹쳐서 온다더니, 10월은 수학여행과 연구보고서 제출일이 함께 있었다. 연구보고서는 여름방학 이후로 손을 대지 않은 상태였다. 제출 마감 시한 안에 완성하려면 시간을 빠듯이 써야했다. 마음이 급해지니 짜증이 마구 샘솟았다.


그런 나와 반대로 아이들은 온 몸을 다해 수학여행 날짜가 하루빨리 다가오길 염원했다. 모든 질문을 수학여행으로 향했으며, 모든 순간을 D-day 며칠 전으로 새었다.


갈수록 기대감이 차오르는 그들과 다르게 난 갈수록 마감의 압박에 짓눌렸다. 검토에 검토를 더하고 정성에 정성을 더했다. 부모님께 검토를 받고, 근육질 선생님께 최종 검토를 받았다. 처음 쓰는 것치고 완성도가 높다는 칭찬을 들었다.


수학여행 전날이자, 보고서 제출일이었던 10월 16일. 아이들은 2박3일을 짐을 쌌고, 난 깔끔히 제본된 연구보고서를 봉투에 동봉했다. 교육청에 연구보고서를 제출하는 길에는 뿌듯함이 가슴을 채웠다. 후련했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의 첫 번째 목표이자 나와의 첫 번째 약속이었다. 결과가 어떻든 크게 상관은 없었다. 결과물을 기어이 만들어냈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었다.


마음의 큰 짐을 덜어낸 채 떠난 수학여행 역시 큰 에피소드 없이 잘 마무리 되었다. 물론 출발하자마자 돌아오고 싶은 여행이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학예회와 졸업 뿐이었다. 그것마저 끝나면 이제 그들과의 이별이었다. 2학기는 왠지 모르게 조금 빨리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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