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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09. 2019

#11 내일로 가는 계단

후레쉬맨 그리고 안녕

전편: #10 우리 아이 사춘기일까요?

https://brunch.co.kr/@simon1025/13




수학여행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정말 아이들과의 전쟁이었다. 보통 6학년들은 2학기 수학여행을 기점으로 중학생이 돼버린다던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내 말을 개똥으로 들었다. 아이들은 교복만 입지 않았을 뿐 중학생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학예회를 준비해야 했다.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직감했다. 1학기에는 영화 [스텝업]에 나오는 군무와 같은 것을 잠시 꿈꿨다. 그러나 그런 환상은 일찍 집어치우는 게 심신에 편했다. 목표는 그냥 무사히만 끝내는 것으로 하향조정했다.     


모든 무대를 내가 지휘하거나 지도할 수는 없었다. 때문에 각자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팀을 꾸려 원하는 무대를 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러나 중학생이 돼버린 아이들에게 의욕은 저 세상 이야기였다. 하나 같이 “안하면 안돼요?”를 남발했고, 무대계획을 하라고 시간을 주면 BTS이야기만 할뿐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폭망’이었다. 비장의 무기를 꺼낼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런 무대를 꿈꿨는데...


무대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러 해 오디션프로나 ‘나는 가수다’와 같은 경연프로그램을 보면서 본능적으로 깨달을 바가 있었다.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무리’이다. 모두가 기승전결의 형식을 따르지만 결국 좋은 점수를 받는 무대는 극적이고 화려한 마무리가 있는 무대였다. 즉, 우리 반 학예회에서도 극적인 마무리가 있으면 전반의 비실비실한 무대들이 전부 상쇄될 터였다.     


그리하여 꺼낸 비장의 무기는 바로 ‘후레쉬맨’이었다.

‘후레쉬맨’은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 동기들과 합을 맞췄던 추억 속 무대였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각각 빨강, 파랑, 노랑, 초록, 핑크색 쫄쫄이를 입고 절도와 패기가 넘치는 일말의 댄스 이후 등장하는 악당을 무지개 우산을 빙글빙글 돌리며 물리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격한 웃음과 함께 쏟아지는 박수갈채를 받았을 뿐더러 인기상까지 탔다. ‘후레쉬맨’은 성공이 보장된 무대였다. ‘후레쉬맨’이라면 화려한 마무리를 점찍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일단은 ‘후레쉬맨’을 선보일 정예멤버가 필요했다. ‘후레쉬맨’의 정예멤버에겐 연습시간마다 1대1지도와 풍족한 간식을 약속했다. 어김없이 말썽꾸러기 5명이 서로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후레쉬맨’에게는 이런 단순한 녀석들이 필요했다. 왜냐? ‘후레쉬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도와 통일성이었다. 동작 하나 하나에 공을 들였고, 군무처럼 보이고자 지겹도록 반복연습을 시켰다. 힘들다고 징징대는 녀석들에게는 입에 소시지를 물리고, 초코파이를 물리며 달랬다.      


학예회 당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수의 학부모님들이 오셨다. 아이들은 더 긴장했고, 나 역시 더욱 심장을 졸였다. 다행히 앞 팀의 아이들은 리허설 때보다 더 나은 무대를 펼쳤다. 예상보다 반응도 훨씬 좋았고, 실수도 거의 없었다. 학예회의 분위기는 계속해서 상승곡선을 탔다.      


이대로 ‘후레쉬맨’까지 잘 마무리가 된다면 학예회는 대성공이었다. 마지막이 가까워질 때쯤 ‘후레쉬맨’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이제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마지막 전 무대까지 마치고, 교실 한 가운데에 미러볼을 세팅했다. ‘후레쉬맨’의 존재를 알고 있는 아이들은 기대에 찬 얼굴들이었고, 영문을 모르는 학부모님들은 무슨 일인가 싶어 웅성대었다. ‘후레쉬맨’ 정예멤버들이 등장해 교실 한 복판에 포즈를 취한 상태로 자리를 잡았다. 눈에는 결연함이 빛났다.      


지구방위대 후레쉬맨!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무대가 시작되었다. 녀석들은 빙글빙글 돌며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껏 연습해왔던 것 이상이었다. 동작은 절도가 넘쳤으며, 군무는 딱딱 맞아떨어졌다. 예전에 내가 ‘후레쉬맨’일 때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이제와 또 한 번 느껴졌다. 녀석들은 ‘후레쉬맨’을 너무나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어느덧 무대는 종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악당이 등장해 무대를 잠시 휘저었다. 그러나 다시금 부활한 ‘후레쉬맨’이 힘을 합쳐 무지개 우산 빔을 쏘았다. 무지개 우산이 빙글빙글 돌아갈 때 환호성은 교실을 가득 메웠다. 대성공이었다. ‘후레쉬맨’은 7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6학년 교실에서 완벽히 재림했다.           

자랑스럽다 녀석들아




남은 2학기는 금방 갔다. 졸업식 노래를 연습하고 진학할 중학교를 결정했다. 생활기록부를 최종적으로 점검했으며, 사물함의 모든 짐을 뺐다. 아이들도 나도 서로를 보낼 준비를 했다.     


졸업식 전날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편지를 썼다. 하고 싶은 말은 머리에 둥둥 떠다니는데 막상 편지지에 옮겨지는 말은 미안함과 당부뿐이었다. 너희들과 함께 해서 너무 행복했고, 사랑한다는 말은 쑥스러워 적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 이렇게 은근슬쩍 적어본다.      


졸업식 당일이 되었다. 괜스레 아침부터 울음보가 터질 듯 말 듯 얼굴에 찼다. 울지 않으리라 굳은 다짐을 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보낼 시간은 충분치 않았다. 졸업앨범을 나누어주고, 편지를 읽어주니 어느새 강당에 모여 마지막 졸업행사를 할 시간이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1년의 기록이 담긴 동영상을 보는데 계속해서 울음보가 찔끔거렸다. 옆에를 보니 다른 선생님들도 애써 울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마지막 졸업행사 일정으로 단상에서 아이들 한명 한명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며 마지막 포옹이거나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으로 015b의 '이젠 안녕'을 불렀다. 그때는 정말 울음이 터질 뻔했다.      


졸업행사가 끝나자 아이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러 나에게 다가왔다. “잘 지내”, “놀러와” 질척대는 듯 쿨 한 듯 애매모호한 인사를 했다. 그런데 하필 그 타이밍에 내 오른팔이었던 녀석이 울고, 그 녀석의 어머니가 울고, 임태경의 ‘내일로 가는 계단’이 흘러나왔다.(유투부에서 내일로 가는 계단은 꼭 들어보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NtUQ-vWhI2I) 아 그땐 정말 참을 수 없었다. 뒤를 돌아 정말 찌질하게 울었다. 눈물이 내 의지를 완전히 뭉개고 쏟아져 나온 적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눈물은 전염성이 있어 주위에 있던 아이들 모두가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교실로 올라오니 빈 공간의 허전함이 물씬 다가왔다. 1년 내내 북적이던 교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진짜 1년 동안 담임을 하긴 했구나.’하는 실감이 그제야 났다. 개학하기 전 교실을 꾸미는 것부터, 어색했던 첫 만남, 학교에서 하는 야영, 수학여행, 연구보고서작성, 졸업식까지 1년의 시간들이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참 다사다난하면서 행복했던 첫 담임이었다.      



아, 제출되었던 나의 연구보고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결과는 11월에 나왔다. 예비군 훈련일이 등급 수상자 발표일이었다. 사회와 잠시 격리되어 있으니 아무런 소식을 접할 수가 없었다. 예비군 훈련이 끝나고 핸드폰을 켜니 근육질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하나 와있었다. 문자는 간결했다.       


가람아 2등급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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