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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1. 2019

#13 박수는 때론 사람을 우쭐하게 만든다.

열등감과 우월감에 대해서

전편: #12 목표는 1등급

https://brunch.co.kr/@simon1025/19




자기가 타인에 대해서 우월한 것처럼 행동하는 모든 사람의 배후에는 열등감이 숨겨져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     


연구보고서를 작성하게 만든 것은 ‘열등감’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동기들에 비해 뒤쳐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열등감’은 포기나 회피로 왜곡되지 않고,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주었다. 긍정적인 자극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연구보고서 대회에서 2등급을 수상하였으며,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공부들을 할 수 있었다. 처음 연구보고서를 작성 해야겠다 마음먹은 때에는 생각지 못한 부수적인 효과들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풍족한 결과물로 채워진 ‘열등감’은 곧이어 '우월감'의 표현으로 이어졌다.      


겨울방학은 언제나처럼 아쉬움을 가득 남긴 채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새 학기를 준비하기 위한 일주일의 출근을 시작했다. 학급환경자료만 제작하느라 온 시간을 다 쏟았던 작년과는 달랐다. 조금 더 여유 있고,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 게다가 올해는 5학년을 맡았다. 작년 6학년보다는 여러모로 부담이 덜 느껴졌다.      


올해 동학년이 된 선생님들은 선배보다 후배들이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자신감이 가득 차 있는 나에게 우월감을 맘껏 뽐낼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이었다.      


가장 먼저 찾아온 기회는 5학년 전문적학습공동체 운영계획 수립이었다. 5학년 비전을 세우고 그에 따른 운영개요를 마련해야 했다. 어떤 것을 특색 있고, 활용가능성 높은 비전으로 삼으며 어떻게 구체적으로 구현해낼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가만 보니 인성교육 실천사례 연구보고서의 뼈대를 잡는 과정과 유사했다.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냈고, 반응이 좋았던 아이디어에 살을 붙였다.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접했던 전문용어들을 끌어와 붙였다. 활동들을 대체적으로 구안하고 나니 어느새 계획서가 완성되었다. 별다른 지지부진함 없이 속전속결로 끝났다. 동학년 선생님들은 나에게 아낌없는 감탄을 보내주었다. 이어진 회식 때는 칭찬에 술기운이 더해져 어느새 나는 탁월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우월감의 표현은 때론 질투로 이어졌다. 강의를 하고 싶었다. 나에게 신규교사로서 연구보고서 2등급을 받은 것은 굉장히 큰일이었다. 사례를 공유하며 힘들었던 작성과정을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2등급의 보고서 하나 만으로는 강의를 할 수 없음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배워야 할 연수시간을 ‘나도 강의 잘 할 수 있는데’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여러모로 재수 없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못된 병에 걸린 채로 5학년 아이들을 맞이했다. 자신감은 가득하고 의욕은 펄펄 끓어올랐다. 아마 아이들은 몰랐을 것이다. 곧 있으면 담임선생님의 뜨거운 열정의 쇳물이 본인들을 뒤덮을 거라고는.     


아이들에게도 자랑은 이어졌다. 선생님을 소개하는 문구에 ‘완벽주의자’가 들어갔다. 따뜻한 선생님, 공정한 선생님보다 강조되는 것은 완벽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니 너희들도 완벽해져야 한단다.

아이들에게는 고난이 예고되고 있었다.      


곧 이어 개최된 학부모총회는 나를 굉장한 전문가로 포장시킬 수 있는 무대였다.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한다는 듯 작년에 교육청에서 인성교육과 관련된 상을 받았다며 밑밥을 스윽 깐 후에 앞으로 우리 반의 방향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학부모님들의 눈은 믿음과 신뢰가 가득한 채 반짝반짝 빛났다. 교사로 진로를 선택해서 다행이지 만에 하나 방향이 잘못 틀어져 사기꾼이라도 되었으면 꽤나 이름 좀 날렸겠다 싶었다.


겸손함은 자리를 잃었고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 모를 우월감이 나를 채웠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힘겨울 고난의 열차는 그렇게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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