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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12. 2019

#14 꽉 찬 하루

고3 보다 초5

전편: #13 박수는 때론 사람을 우쭐하게 만든다.

https://brunch.co.kr/@simon1025/20



우리 반에 ‘대충’이란 없었다. ‘대충’이란 우리 반에서 아이들의 성장과 발전을 해치는 벌레였다. 벌레는 마땅히 박멸해야했다. 앞서 선생님을 소개하는 키워드였던 완벽주의는 곧 바로 우리 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아침에 학교에 오면 독서를 시작했다. 8시 40분부터 9시까지는 작은 소리 하나라도 새어나오면 안 되었다. 밀도 깊은 독서를 위해서는 정숙이 필요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슬쩍슬쩍 떠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현장에서 발각되었을 경우 독서 감상문 A4용지 1장이 부과되었다. 참 신기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꼭 걸리는 아이들이 걸렸다. 매번 걸려서 혼나고 A4용지를 독서 감상문으로 꽉 채우느라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손가락이 너덜너덜해졌을 텐데도 방정맞은 입은 쉬지 않았다. 더욱 혹독한 벌칙을 생각해야 되나 싶었다.     


숙제 검사가 있는 날에는 8시 55분부터 숙제검사를 했다. 우리 반에는 나름 숙제가 많았다. 고정적으로 수요일과 주말에는 일기를 썼다. 10줄 이상이어야 했다. 아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성격 강점을 발휘한 강점 인물 조사를 해야 했다. 바탕은 긍정심리학이었다.      


규칙적으로 나가는 숙제는 주로 교과와 관련된 것이었다. 특히 수학 과목에서 숙제가 많았다. 수학 익힘책 풀이와 문제은행에서 뽑은 연산학습지가 있었다. 틀린 것은 오답노트를 해야 했다. 과학 과목과 사회 과목에서도 필요한 숙제가 있었다. 요즘 교육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비주얼 씽킹 학습지였다. 이미지로 표현된 학습 내용에 빈칸을 채우는 숙제였다. 물론 틀린 것은 오답노트를 해야 했다.      


거기다가 전날에 끝내지 못한 미술 그림그리기나 만들기는 다음 날까지 완성을 해와야만 했다. 그러다보면 숙제검사는 거의 매일이었다. 숙제를 해오지 못한 아이들은 따로 포스트잇에 이름이 적혔다. 별다른 벌칙은 없었다. 다만 집에 가기 전까지 숙제를 하고 검사를 맡아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남아서 밀린 숙제를 끝낸 뒤에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쉬는 시간과 수업 시간은 엄격히 분리되었다. 수업시간에 늦는다던지 수업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다던지 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어길 시에는 쉬는 시간이 박탈당했다. 때론 수업 시작시간을 지키지 못한 아이들이 많아 전체 아이들의 쉬는 시간이 박탈당하기도 했다. 학교에 와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수업의 시작은 언제나 복습이었다. 제비를 뽑아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을 물어보았다. 틀리면 10번 쓰기가 부과되었다. 간혹 내용이 길 경우 인심 쓰듯 5번으로 줄여주기도 하였다. 수업 시간에는 바른 자세로 앉아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을 쓰는 자세가 요구되었다. 흐리멍텅한 동태눈깔은 언제나 지적대상이었다. 또한 ‘경청’이 강조되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오디오가 겹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힘들게 준비한 수업의 진행에 방해가 되는 잡음은 없어야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집에 갈 시간이 되는데, 이때에 가장 높은 수준의 철저함이 요구되었다. 책상 위 지우개가루, 책상 밑 먼지 등 청소의 타깃이 되는 것들은 있어서는 안됐다. 마치 새 교실에 새 책상과 의자를 들여놓은 듯한 깔끔함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집에 갈 수 있느냐?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생활공책’검사가 마무리 되어야 했다. ‘생활공책’이라 함은 아이들의 인성함양을 위해 여러 가지 쓸 것들로 채워진 종합적인 기록지였다. 작년에 6학년의 생활지도를 염려하며 주변 선생님에게 받았던 자료였다. 작년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을 때도 지긋지긋하다는 소리를 들었던 생활공책이었다. 그만큼 써야할 내용이 많았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그 분량이 늘었다. 긍정심리학을 생활공책에 녹여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크게 나누자면 6가지의 내용을 적어야 했다. 하루 동안의 학교생활태도 점검, 감사일기, 긍정메시지, 대표 성격 강점의 정의, 감정그리기, 알림장. 이 모든 것은 하루의 일과 시간 안에 전부 작성되어야 했다.      


특히 학기 초는 아이들에게 ‘생활공책’ 쓰는 법을 제대로 정착시키고자 집에 가기 전 한 명 한 명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완벽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통과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반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모두가 검사를 받기 전까지는 집에 가지 못했다.      


2시 40분에 6교시 수업이 끝나고, 청소검사에 이어 생활공책 검사까지 마무리 하고 나면 보통 하교 하는 시간은 3시를 조금 넘겼다. 5학년 8개 학급 중에서 단연코 가장 하교가 늦은 우리 반이었다. 언제나 우리 반 앞은 친구의 하교를 기다리는 옆 반 친구들의 대기가 가득했다.      


생활공책 내용을 조금 줄여볼까도 생각해보았다. 혹은 청소검사를 대충해볼까도 생각했다. 하교가 너무 늦다고 아이들에게 볼멘소리가 들려왔었다. 그러나 무엇 하나 대충할 수가 없었다. 성격 상 아이들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또한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의 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을 방관하거나 지나친 자유로움을 주는 것은 직무유기라는 생각을 하였다. 몸에 좋은 약은 쓸 수 밖에 없음을 아이들에게, 나 자신에게 주입했다.      


그렇게 하루의 일과는 ‘대충’을 박멸하고 매 순간 최선과 완벽으로 가득 찬 채 마무리 되었다.


이전 13화 #13 박수는 때론 사람을 우쭐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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