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등급 말고.
전편: #11 내일로 가는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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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1등급을 바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1등급이 예정된 연구보고서 작성자들에게는 교육청에서 전화가 온다고 했다. 표절 및 작품검증을 위한 방문 날짜를 공지하기 위해서이다. 앞자리가 010이 아닌 세종시 지역번호인 044가 찍힌 전화가 오면 괜스레 기대감에 부풀었다. 아무래도 정말 고생하고 죽을 힘을 다해 작성한 연구 보고서였기에 내가 보기엔 나무랄 데가 없이 보였던 까닭이었다.
그러다 결국 전화는 받지 못한 채 2등급이라는 결과를 곧바로 접했다. 아쉬운 마음은 없었다. 진심으로 쾌재를 불렀다. 1등급으로 예상되는 전화를 받지 못하니 등급 수상에 대한 가능성조차 불확실해진 터였다.
그렇게나 정성을 다한 연구보고서가 좋지 못한 평가를 받을까 걱정이 컸다. 연구보고서가 아닌 나에 대한 평가처럼 느껴졌다.
인성교육 실천사례 연구보고서 대회 결과 알림의 공문에 떡하니 적혀있는 내 이름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담임 첫 해에 6학년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연구보고서 등급까지 수상하니 살이 포동포동 차오른 두 마리 토끼를 실하게 잡은 느낌이었다. 스스로에게 충분히 후한 평가를 내리고 싶었다.
주변 선생님들의 칭찬도 이어졌다. 2등급 수상에 대해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재수 없어 보일 것 같았다. 그러나 결과 알림 공문이 결국은 확성기 역할을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는 선생님들은 축하의 인사를 건네셨고, 교장선생님께 격려의 메신저를 받았다. 다른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문자를 받았다.
정말 무언가 해낸 것 같았다.
연구보고서 작성의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을 주신 근육질 선생님께는 따로 연락을 드려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렇게 두둥실 떠다닌 듯한 기분을 느끼고 있자니 마음속에 새로운 목표가 자연스레 생겼다. 이제 목표는 1등급이었다.
겨울방학은 준비 기간이었다. 가장 먼저 1등급을 받은 연구보고서들을 분석했다. 1등급 보고서를 쭉 나열해서 공통점을 찾아내고 2등급 보고서들과의 차이점을 캤다. 그렇게 하다 보니 보이는 것 한 가지가 있었다.
1등급 보고서에는 확실한 테마가 있었다. 깊이 있는 이론적 바탕 위에 트렌디함과 독특함을 담고 있었다. 그에 반해 내가 썼던 보고서는 잘 정리하고 활동을 분류해놓았을 뿐이었다. 2등급도 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1등급을 낚을 낚시 바늘이 되어줄 테마를 잡는 일이었다.
테마는 우연치 않게 찾았다. 겨울학기 대학원 수업시간이었다.
상담이론을 공부하고 있던 도중 '긍정심리학'이라는 최신 상담 이론을 접했다. 이론의 핵심은 생각의 전환이었다. 기존의 상담이론은 대부분 문제행동의 원인을 밝히고 이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긍정심리학은 이와 반대로 잘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행복한 삶의 원동력으로 삼도록 한다.
이거다 싶었다. 제대로 된 녀석을 만난 것 같았다. 곧바로 이를 활용하여 인성보고서 테마를 잡기 시작했다. 신이 나는 일이었다.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책들을 사서 읽었다. 아이들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인성활동이 가득 담긴 보물상자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더불어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인성교육 실천사례 연구보고서 작성법’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곧 바로 책을 구입해 지금껏 해본 적 없는 열독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톨의 글자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그렇게 두어 번 읽어보니 내가 작성했던 보고서의 오류와 새롭게 꽃단장해야할 부분이 눈에 보였다. 작년에는 여름방학에 했던 뼈대잡기를 겨울방학에 대부분 마무리 지었다.
벌써부터 1등급이 눈에 아른거리는 듯 했다. 새로운 학기가 하루 빨리 시작되길 바랐다. 자신감이 차올라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