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 Brave!
전편: #21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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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이미 너 안에 있을껄?”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내가 하던 말이었다. 매번 적중하지는 않았다. 정말로 50:50의 선택지를 가지고 나에게 조언을 구한적도 때때로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마음 속 결정이 끝난 경우가 많았다.
“사실...”하면서 이미 추가 기울어진 마음을 내어놓는 것이 수순이었다. 나에게는 그저 자신이 선택한 결정에 대해 응원을 받고 싶어 한다던지,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도 그러한 선택을 하는지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답이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내 마음을 들여다 볼 때였다. 내가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교사를 그만두는 것과 교사를 계속하는 것. 선택은 양극단에 있었고, 신중해야 했다. 가장 먼저 각각의 선택에 따른 명암을 가리는 일을 했다. 어려운 것부터 시작했다.
교사를 그만두는 것에 대한 명암은 무엇이 있는가. 일단 가장 빛나는 장점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스트레스는 일반적인 스트레스가 아니다. 흔히 요즘 쓰이는 말로 ‘빡치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릴만한 스트레스이다. 단순히 화가 난다기 보다 이해 못할 일에 화가 가슴에서 머리까지 욱하고 오르는 상태를 의미한다. 국어사전에도 신조어로 등재된 찰떡같은 표현이다. 낮은 도부터 높은 도까지 음계를 자유로이 뛰어 다니는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 반복해서 이야기해주어도 또 다시 물어보는 기막힘 혹은 귀막힘, 분위기 파악 못하고 벗겨진 평정심에 소금을 뿌리는 천진난만함,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무엇이든 물어보는 집요함까지. 오직 아이들이기에 나에게 줄 수 있는 스트레스들이었다. 그러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장점은 확실했다.
단점 역시 눈에 띄게 확실했다. 교사를 그만두면 어떤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교대 4년 동안 배운 것이라고는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일 뿐이었다. 회사에서 쓰일만한 업무능력은 전무했다. 게다가 그 흔한 토익점수나 자격증도 없었다. 딱 한 가지, 2급 정교사 자격증만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나름의 알량한 자존심은 9급 공무원 시험을 꺼려하게 했다. 호봉으로 치면 7급 공무원 정도는 되니 행정고시는 봐야하지 않겠나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번듯한 카페를 차려 잔잔한 음악소리와 함께 향긋한 커피를 내리는 사장님이 되고 싶었다. 이상적이었으나 카페를 차릴만한 돈이 없고, 장사에 대한 경험이 없다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내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 반 아이들, 작년 제자들, 여자친구, 주위 선생님들, 친구들, 부모님.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난 그들에게 당당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긍정적인 ‘문가람’이었다. 이대로 포기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시선은 ‘실망’일 것이 분명했다. 주위의 시선이 포기를 생각하지 못하게 할 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단점으로 여기기엔 충분했다.
교사를 계속 한다는 것은 교사를 그만두었을 때 생기는 명암의 반대일 뿐이었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 심각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다. 이제 명암을 환희 밝혔으니 선택지를 고르기만 하면 됐다. 두 개의 선택지를 번갈아 들어가며 그 무게를 재었다. 확실했다. 더 무거운 선택지가 있었다. 그것은 다음의 선택지였다.
정답은 내 안에 있었다시피 두 선택지의 명암을 밝히는 과정에서 이미 추는 기울었다. 두 선택지 무게의 차이는 한 쪽이 무거워서라기보다 한 쪽이 가벼워짐으로서 정해졌다. 교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100번이고 교사를 그만두는 선택지를 고르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용기는 전투를 앞둔 군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만두는 데에도 용기는 절실했다.
교사를 그만둠으로써 생기는 일들은 나에게 과중했다. 어쩌면 아직 용기가 생기지 않을 만큼 힘들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었다. 죽을 만큼 힘들다면야 선택지를 두고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나에게 버틸 힘이 남아 있었다.
당장은 선택을 했으나 선택지의 유효기간은 짧았다. 조금이나마 남아있는 힘이 소진될 때까지였다.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지는 날은 선택지가 바뀔 날이었다. 그때가 되도록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죽음을 앞둔 말처럼 눈만 껌벅이며 엎드려 있을 수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선택지가 바뀌지 않도록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했다. 난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