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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람 Oct 22. 2019

#23 저기...우울 좀 반품 해보려고요.

전편: #22 그만둘 용기가 없다.

https://brunch.co.kr/@simon1025/33




우선 다른 직종에 있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다니던 배드민턴 클럽에서 은밀한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첫 번째 타깃은 연구원이었다. 대학생 시절 KAIST를 다니는 친구로부터 연구원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할 것이 못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마음속에서 인터뷰를 미리 그려보았다.

 

“연구원 하시면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이 질문엔 무조건 긍정의 답변이 나올 것이었다.

“그렇죠, 이 세상에서 스트레스 받지 않는 직업이 어디 있겠어요.”


 그럼 이어서 내가 “하하 그렇지요, 막 스트레스가 치솟는 때도 있으시겠지요?”


이어지는 답변은 다음과 같이 기대했다.

“아유 그럼요. 가끔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아요.”


너무나 뻔하게 예상되는 스토리였다. 인터뷰의 마지막은 그저 서로의 처지를 안쓰럽게 위로하며 막을 내리면 될 터였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연구원에게 접근했다. 질문을 했다.


“연구원 하시면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거의 없어요.”


어라? 이게 아닌데.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최소한 연구원은 스트레스의 전선에서 함께 피 땀 흘리는 전우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다니. 부러웠다. 추가 질문을 통해 알아낸 것이라고는 국정감사 기간처럼 바쁜 시기엔 정신이 좀 없다는 정도였다. 더 이상의 추가 설문조사는 필요가 없었다. 충분히 비과학적인 일반화였으나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을 대하지 않는 사무직이어야 스트레스에서 자유롭다’



집에 돌아와 생각을 숙성시켰다. 교사를 그만두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장학사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장학사가 되면 교육청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할 수가 있었다. 급하게 컴퓨터를 켜서 장학사 시험과 관련된 자료들을 찾았다. 내가 어렴풋이 알기로 장학사 시험을 보려면 일정 기간의 교육 경력이 필요했다. 10년 정도? 오 마이 갓! 10년도 길다고 생각했는데 세종시교육청에서 요구하는 교육경력은 17년이었다. 교육경력 17년을 채우려면 내 나이가 41살이 되어야 했다. 41살까지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버텨야 한다는 것은 버거운 일이었다. 버티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사무직으로의 전환을 목표로 버틴다는 전략은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온탕에 있다가 냉탕으로 들어가면 냉기가 더욱 또렷하게 느껴진다. 잠시나마 부풀었던 희망이 꺼져버리니 주어진 현실이 더욱 차갑고 선명히 다가왔다. 미래는 먼발치에 있었다. 현재에 초점을 맞추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 세상 모든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하였다. 책에는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다. 교육과 관련된 책이라곤 불과 몇 일전까지 주구장창 읽었던 긍정심리학뿐이었다. 좀 더 기본으로 돌아가 보기로 했다. 학급운영, 학생지도, 훈육법 등 신규교사들이 많이 찾아 읽는 책을 골라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내가 놓친 부분이 많았다. 역시 기본기가 중요했다. 변화를 시도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지나치게 시끄러울 때는 오히려 침묵으로 분위기를 정돈시켰다. 명령하는 투의 언어보다는 청유형의 언어를 사용했다. 학급 가이드라인을 아이들 주도로 만들어보았다. 집에 갈 때 하교인사로 하이파이브를 시도해보기도 하였다. 효과가 있었다. 아이들의 표정도 좀 더 밝아진 듯 느껴졌고, 스트레스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온전한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성공이었다. 그러나 약 2주정도의 시간이 지나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이들 기억 속에서 학급가이드라인 같은 것은 희미해졌다. 애써 정해놓은 학급규칙들이 허공으로 휘날렸다. 하이파이브를 한다고 해서 하교시간을 즐겁게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책에서는 여전히 참고 기다리고 존중해주어야 한다고 나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믿음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맞는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으나 남의 옷이었다. 맞지 않은 것을 계속 하려니 어색했다. 스트레스는 다시 치고 올라왔다. 방법을 다시 찾아야 했으나 어디서 찾아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이제는 강물에 떠밀려 내려오는 나뭇잎처럼 하루하루 상황이 이끄는 데로 흘러갈 뿐이었다.



실마리는 불현 듯 찾아왔다. 국어수업을 준비하려 자료를 찾아보고 있던 때였다. 쭉 자료 목록을 보던 와중에 문득 조언과 간섭의 차이에 관한 자료가 눈에 띄었다. 준비해야 할 국어수업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뭔가에 홀린 듯 자료를 열었다. 전에 TV에서 하던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의 일부가 동영상으로 첨부되어 있었다. 동영상을 재생했다. 그날의 게스트는 법륜스님이었다. 진행자인 김제동씨가 물었다.


“스님, 간섭과 조언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법륜스님은 환한 웃음을 지으며 확신의 답변을 내어놓으셨다.

“차이가 딱 1개밖에 없어요.”


그 차이라는 게 무엇일까 궁금했다.

“내가 괴로우면 간섭하는 거야”


 별 다를 게 없었다. 법륜스님이라고 하여 대단한 차이를 발견하신 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조언과 간섭의 차이가 그 정도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듣기 싫으면 잔소리고 간섭인 것은 그저 당연한 이야기였다.


내 말 안 들어서 괴로우면 내가 간섭하는 거야

아니, 내가 완전히 잘못 들었다. 조언과 간섭의 차이가 말하는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파란(破卵). 계란이 깨졌다. 그동안 계란 안에서 암흑 속을 두리번거리던 나였다. 계란이 깨지자 파란 하늘이 드러났다. 내 마음 속에 파란(波瀾)이 일었다. 내가 왜 지금껏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지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 간섭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담임교사이지만 조언이면 충분했다.


간섭을 하면서까지 아이들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화시킬 필요는 없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존재하듯 아이들도 각자의 다양성을 지닌 채 성장하는 중이었다. 그 아이들을 나의 획일적인 기준에 끼워 맞춘 채 변화시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열정과 최선은 이를 포장시키는 용도일 뿐이었다. 여러 모양의 아이들을 한 가지 상자에 집어넣으려니 반작용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 반작용은 최대 피해자는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조언을 할 때였다. 간섭은 덩치가 컸다. 조언을 하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괴로움의 원인을 찾고, 이를 제거하거나 수정하는 길에 뛰어들었다. 다이어트는 헬스장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니 이름을 바꿨다.


‘덜어내기’  


난 덜어내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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