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
"토니가 죽었어요. 며칠 전에."
영국에서 부고가 왔다.
템즈강 상류 스테인스 Staines Upon Thames라는 동네에서 살다가 런던 한 복판으로 집을 옮긴 것이 십수 년 전이다. 그곳에 살 때 이웃집 아들이 우리 토니를 무척 좋아해서 이사 올 때 선사하고 왔었는데 이제 수명을 다하여 저 세상으로 갔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막내아들이 사춘기로 접어들면서 어려움이 커질 무렵 혹시나 개를 사주면 좀 쉬워질까 봐 런던의 동북쪽 해크니라는 지역에 가서 데려 온 놈이 바로 ‘토니'이다. 애견 센터에 있던 중애서 특히 귀여움을 떨던 래브라도 중하나를 골라 왔었다. 강아지 때는 크기가 다 고만고만해서 몰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어찌나 덩치가 커지던지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도 했거니와 런던 시내에서는 더욱이나 ‘키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이웃집에 주었던 것이다. 옆집 주인은 변호사였는데 '아들에게 토니를 주셔서 고맙다'며 필요하면 마데이라에 있는 자기 별장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선심을 베풀었다. 마데이라 섬은 포루투 갈령으로 같은 이름의 마데이라 와인이 생산되는 곳이다. 토니 덕분에 그 후 대서양의 마데이라 섬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가족이 일주일 묵으며 여행을 하기도 했다.
강아지 때 골라 직접 데려왔기에 정이 깊게 들었는지 이웃집에 입양시키고 한 동안 마음이 불편했었다. 병든 가족을 돌보지 않고 병원에 홀로 놔두어 불행하게 만든 죄의식이라고나 할까?
계단을 오르기 귀찮아하는 개들을 위해 개 전용 에스컬레이터가 개발되었고 개들의 디지털 TV 시청을 위한 콘텐츠 개발을 서두르는가 하면 공원에는 개 전용 아이스크림 차가 등장하기도 하는 영국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첫째가 어린아이, 둘째가 노인, 셋째는 여자, 그다음이 개, 맨 마지막에 남자가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대접받는 나라에서 살다 갔으니 어쩌면 토니는 행운아였던 셈인가?
래브라도종은 어릴 때부터 다른 동물이나 사람과 접촉시켜주어야 사교성이 좋아지는 종류이다. 따라서 가두거나 매어놓고 기르기에는 부적당한 가정견이다. 물을 좋아하므로 가끔 수영할 기회도 주어야 하고 매일 규칙적인 운동을 시켜주어야 한다. 꼭 레브라도가 아니더라도 애완견의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템즈 강변을 따라 온갖 개들이 주인과 함께 지나다니는 광경을 보노라면 영국인들의 페트에 대한 사랑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나도 누구 못지않게 자주 토니를 데리고 산책을 하곤 했지만 그들과는 개념에 차이가 났었다 여겨진다.
그는 개와 산책을 한다. 개의 건강을 위하여.
나도 개와 산책을 한다. 나의 건강을 위하여.
토니는 짧고 조밀한 털과 근육질의 균형 잡힌 몸매를 갖춘 예쁜 놈이다. 넓은 앞가슴과 끝으로 갈수록 가늘어 휘어지는 멋진 꼬리를 가졌다. 꼬리 아래쪽으로 털이 무성하게 자라 귀티가 나고 작고 단단한 발과 다리의 뿌리가 굵어 안정감이 있어 보이는 녀석이다. 하지만 외화내빈이라고 잘생긴 반면에 머리는 나쁜 편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라도 있었는지 강아지 때부터 기억력이 형편없었다. 어디 나갈 때는 항상 목에 표식을 매달아 주어야 안심이 되었다. 조금만 멀리 나가도 길을 헤매고 혼자 집을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이웃들은 걱정을 하였지만 우리로서는 목에 끈을 매어 놓거나 방에 가두어 두는 도리밖에 없었다.
한 번은 집을 나간 후 찾지를 못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사흘 후 나에게 전화가 왔다. 런던 교외에 있는 어떤 동물 구호 시설에서 토니를 보호하고 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이삼일 먹여주고 재워 준 대가로 호텔비와 맞먹는 돈을 지불하고 나서야 집에 데려 올 수 있었다. 물론 강아지 때 목덜미 안쪽에 식별 칩을 넣어 두었기에 그나마도 가능했지만.
토니가 집을 나가 헤멜 때마다 동네 주민들의 도움을 받았다. 주위 사람들끼리 얼마나 우리에 대한 소문이 돌았는지 이사 온 지 며칠 되지 않아 토니를 잃어버렸는데도 그들은 토니가 어디로 갔는지 어디에 있을지를 알려 주는 것이었다. 아마 처음 이사 올 때부터 우리 가족에 대해서 보다 토니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았지 싶다. 템즈 강변과 우리 집 사이의 산책길로 지나다닌 사람들과 이웃들은 그렇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던가 보다.
"안녕. 잘 있었어?"
집에서 한 3-4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시장이 있다. 그곳에 장을 보러 갈 때 살 물건이 많지 않으면 산책 삼아 걸어서 토니를 데리고 갈 경우가 있다. 언젠가는 시장 볼일을 마치고 벤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인사를 건넸다.
나에게가 아니고 토니에게 아는 체를 하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산책하다 우리와 정원에서 놀던 토니 이름을 귀담아 들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일면식도 없던 분이었다.
그러고는 같이 걷던 자기 친구들에게 자랑스러운듯이 "쟤 이름이 토니야."라고 덧붙이기까지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