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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용 시뭔SiMone Jun 01. 2022

주홍글자 'B'를 가슴에 단 선생님

내 이야기

"와이로 선생이다!"                                          

"저기 와이로가 간다."

"나쁜 사람이야. 와이로 먹고 애들 성적을 올려준대."

(와이로: 뇌물을 뜻하는 일본어 わいろ. 촌지寸志)

주홍글자 A


초등학교 때였다. 어떤 여선생님이 '와이로 선생'으로 낙인찍혀 동네를 지나칠 때마다 아이들이 그녀에게 고함을 쳐 댔다. 물론 그들은 그녀의 면전에서 소리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아 주로 집안이나 담벼락에 숨어서 그 선생을 향해 목청을 내었다. 선생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이 피해 다니곤 했지만 그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을 테니 다른 동네까지도 다니기 어려우셨을 것이다. 참으로 곤혹스러웠을게다.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씨'와는 내용이 다르지만 A(간통 Adultery) 대신 B(놔물 Bribe)를 가슴에 달고 다니셔야만 했을 터이다. 


연휴緣由는이렇다.

콩나물시루라 불렸던 과밀 학급

1963년 2월 대전 어느 국민학교 운동장엔 종업식을 하느라 전교 학생들이 다 모였다. 한학급만 해도 70명 가깝고 한 학년이 12개 반이었으니 그해 졸업생은 제외하고도 거진 4,000명 정도는 모였으리라. 당시 국민학교는 어마어마한 학생들을 수용하였다. 말 그대로 수용收容이었다.

1963년이면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박정희 정부가 들어서기 직전의 일이다. 거의 모든 국가 시스템이 군대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던 시절이라 학교라고 어디 갔겠는가. 그야말로 경직되고 규율이 엄격한 사회였음은 자명하다.



교장선생 훈화가 끝나고 상장을 주는 순서였다. 

난 1학년 2반이었다. 키가 작은 쪽이었으나 아주 작지는 않았는지 앞에서 세 번째 줄에 서 있었다.

이윽고 교감께서 수상자를 호명했다.

"각 반에서 최우등상을 받을 학생 호명을 하면 단상 앞에 나오길 바란다. 1학년 1반 김 XX, 2반 이 YY, 3반 박 ZZ..."

그런데 느닷없이 곁에 선 친구가 느닷없이 외쳤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와이로 선생이다! 와이로 먹고 '이 YY'를 1등 주었다. 와이로다!" 그러면서 대열 앞 단상쪽으로 뛰쳐 나갔다. 그 아이는 내심 자기가 일등상을 타리라 확신하고 있었는데 못 타서 어찌나 분했던지 곁에 서있던 우리에게도 동조를 구했다. "야. 너도 알잖아. 내가 일등이라는 걸. 그러니 어서 날 따라 외쳐. '우리 선생님 와이로 선생'이라고. 얼른!"

주위에 줄서있던 같은 반 아이들은 갑자기 일어난 사태에 어리둥절하여 나가지도 외치지도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에 친구는 4학년이던 그의 형 손에 이끌려 운동장 뒤편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물러났다.


웬일인지 딱 거기까지는 아직도 고스란히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다음은 나에게 남아있지 않다. 아마 한 순간의 해프닝으로 마무리하고 식을 계속 진행하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얼마나 학교에 더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언급했듯이 사건 이후로 그 교사는 와이로 선생으로 불렸고 동네를 지날 때 마다 '와이로 간다'라는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로부터 50여년이 지난 어느 추석날 형제들이 시골 부모님 댁에 모였다.

"김영옥(가명) 선생님 말이야, 며칠 전에 봤다." 형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김영옥? 김영옥 선생이 누구지?" 나는 누군지 도통 모르겠어서 되 물었다.

"와이로 선생. 너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담임선생 말이야. 동네 아이들이 '와이로'라고 그렇게 불렀잖아. 정의를 실현한다고.... "

"아, 당연히 생각나지. 성함이 김영옥이었구나."

"아이들은 네 편을 들어 마치 정의감에 불탄 듯이 행동했지."

정의란 각자 마음속에서 어떤 일에 대해 옳음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각 개인의 정의가 모여 사회정의가 되고... 아이들이 당시 그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각자의 정의를 모아 나름 학교 사회의 정의라고 표출했다.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도 없이 진실을 파악하기는 어려웠을 텐데도. 



지금도 그 때 행동했던 장면과 느꼈던 감정이 나의 뇌리 속에 뚜렷하게 살아있다. 수상자를 호명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주위 어른들로부터 주워 들었던 '와이로'라는 단어가 번쩍 떠 올랐다. 그러고는 감정을 주체(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는 말도 안 되는 단어이지만)하지 못하고 소리치며 단상쪽으로 나아갔다. 더구나 옆에 서 있던 반아이들에게 "너 알잖아. 내가 1등이란 거. 그러니 너희들도 같이 해야지"라며 그들을 재촉했다. 물론 아무도 따르지 않아 결국 나 혼자였지만. 

아직도 가끔 그러는 것처럼....




사족蛇足.

요새 말로 팩트 체크 fact-checking를 하려고 초등학교의 생활기록부를 찾아 보았다. 과연 내가 자신했던 만큼 초등학교 1학년 성적이 좋았는지 어땠는지.

결과는 참담했다. 총 7개 과목이었는데 수(A)가 4, 우(B)가 1 그리고 슬프게도 미(C)가 2개나 있었다. 우(B)는  미술, 미(C)가 나온 두 과목은 보건(체육)과 음악이었다.

그런 성적가지고 1등은 언감생심焉敢生心 꿈도 꿀 수 없을텐데 그 어린 시절에 어찌 감히 그와 같은 마음을 내었을까? 전도 몽상(顚倒夢想)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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