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일단 해야한다
백수 10일차에 3개월 계약직 일자리를 구했다. 공공기관에서 갑으로만 살다가 이제는 을, 병, 정 제작사의 계약직이 되었다. 마음은 오히려 편하다. 학습하고 배워가야 할 것들만 잔뜩 있어서다. 배움과 성장이 없는 회사여서 그만뒀으니 뭐든 다 배워야 하는 곳이 오히려 좋다. 내가 잘 모른다는 전제하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모르는 것들은 도움을 요청해서 해결하면 된다는 '차근차근'한 마음으로 일을 대하려고 여유를 가지려고 한다. 월급은 최저시급 선이나, 그래도 매월 들어오는 돈이 생겼고, 소속도 생겼고, 새로운 할 일이 생겨서 기쁘다. 중년의 무지렁이 경단자를 받아준 회사 대표님에게 무한히 감사하다. 오랜 기간, 여러번의 두드림 끝에 얻게 된 기회인만큼 부지런히 쫓아가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랜만에 일을 시작하려고 보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가슴이 뛰고 불안했다. 필요시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했다. 좀 쉬면서 숨을 가다듬고, '할 수 있는 걸 하자'라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풀어나가니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오늘 성경공부 묵상 나누기에서 '두려운 마음이 곧 지옥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내 마음의 두려움에 갇혀서 옴짝달싹 못하고 작아지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 두려움을 쫓아내기 위한 방법은 한 가지다. 그 두려운 일을 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공황이 올까봐 겁을 내는 내가 보이면 마음을 가다듬고 두려운 일을 아무생각 없이 해버린다. 그러면 그 일을 하는 사이에 마음이 안정된다.
언제부터 이렇게 일을 두려워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두려움에 질려서 업무 수행능력이 떨어지고 우울함에 질려서 사고 수행능력이 떨어졌던 불과 몇 달전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회사를 그만 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비록 돈은 좀 덜 벌게 되었을지 몰라도 나는 성장할 기회를 얻었고, 새로운 사람이 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매일 같은 사람, 같은 환경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십이 년만에 회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에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아직 양가 부모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을 계속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흥분되고 좋다.
아침 약은 불안증 약을 하나 없앴고, 저녁 수면제는 세 알 중에서 반알을 잘라서 먹고 있다. 수면제는 몇 가지 실험을 하면서 맞춰가야 하는데 다음 달 병원가기 전까지는 계속 테스트를 해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만약 어디선가 매듭이 꼬인다면 또 어떤 상황을 맞딱드리게 될지 모른다. 오늘 낮에 불안증이 올라올 때에도 '너무 일을 빨리 시작했나?' 고민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하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 나에게 새로운 기회를 계속해서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를 응원해주는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나도 그들에게 나의 쓰임을 다하고 협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오늘은 취직한 날. 기분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