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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담 J Jun 27. 2024

다시 백수로

[우울증 환자 생존기] 진짜 백수가 되었다

3개월 계약직으로 일하려던 곳에서 인건비 확보가 안 되었다면서 짤렸다. 프로젝트 베이스로 일하기로 했다. 짤렸으니 실업급여 신청을 하려고 한다. 뭔가 일을 하고 싶어서,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나는 시간을 마구 흘려보내고 있다. 하루종일 자고, 릴스 보고, 사랑이 산책 다녀오고, 일기쓰고, 기도하고 잔다.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거였으면 차라리 휴직을 할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든다. 200만원 받아도 소속과 일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좋았는데 소속이 없어지고 나니까 휴직이 맞는 길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퇴직은 내 인생에서 잘한 결정 중 하나다. 만약 휴직이었다면 계속 메인 몸으로 답답해했을 거다. 휴직을 했다면 지금의 이런 막막한 느낌을 느낄 수 없었겠지. 어떻게든 새로운 시작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겠지.  


죽고싶다거나 자해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든다. 불안감도 많이 사라졌다. 항불안제를 먹지 않는데도 살만하다. 언니는 지금이 다른 일을 시도해볼 시기라고 한다. 돈을 벌 수 있는 내 사업을 시도해볼 시기라는 거다. 다들 나에게 사업을 해보라고 하는데, 나도 사업해보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스타에는 돈 버는 방법이라면서 여러가지 글이 올라온다. 그냥 보고만 있다. 벌써 퇴직금이 앞자리수가 달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마냥 마음 편하게 있어도 되는 것인가 싶지만 그냥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지내고 있다. 남편도 같이 쉬고 있는 마당에 나는 그저 내가 퇴직하고 적응할 시간 동안 남편이 함께 있어주는 것이 고맙기만 하다. 철이 없다. 


죽고 싶지는 않지만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걱정된다고 했더니 언니가 말했다. 지금의 고민이 죽고싶어서 괴로워할 때 보다 훨씬 나은 고민이라고. 앞으로는 그냥 할 일을 찾으면 되지만 죽고싶은 건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니까. 요즘은 내가 그렇게 숨도 못 쉬고 괴로와하고 자해하던 때가 있었나 싶게 잘 지내고 있다. 이렇게 잘 지내려고 회사를 그만둔거지 하고 매일 되새기고 있다. 조바심을 갖지 말고 좀 더 여유롭게 마음을 가지고 할 일을 찾아봐야겠다. 아직은 일을 하기 싫은 것 같다. 프로젝트성 일을 하면서 매번 일을 하기가 싫다. 아직 일을 할 마음까지는 회복이 안 되었나 보다. 하긴 아직 회사를 그만둔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다. 이제 곧 한 달이지만 그 한 달을 마음 졸이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도와준 것은 역시 남편인 것 같다. 남편과 결혼하고 조상님이 도우셔서 이런 남편을 만났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하느님이 나를 이렇게 자녀로 받으시려고 남편에게 이끌어주셨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남편처럼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된다. 


중간에 하루 이틀은 빼 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매일 일기쓰기와 기도를 하고 있다. 수면제를 세 알 먹는데, 수면제를 먹으면 보통 10시간은 잔다. 그래서 수면제를 조금 줄이려고 시도중인데 아직 방법을 못 찾았다. 보통 12시에 일어나니까 오전 루틴이랄 것이 없다. 유일한 루틴은 자기 전에 쓰는 일기와 기도다. 그것이라도 있어서 내가 삶을 정돈되게 살고 있는 것 같다. 


마흔 중반에 백수가 될 줄은 몰랐다. 살기 위해서 도망쳤고, 백수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금하다. 세상에 내가 온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세상에 뭔가 쓰임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당장 죽을 것 같던 삶에서, 내가 좀 더 긴 수명을 산다고 생각하니 아직 시간이 좀 더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그 시간들이 그저 막막했다면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몇 개월 사이에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마음공부나 기도에 대한 책을 읽고 있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이 책들을 읽었다면 뭔가 좀 달라졌을까? 생각해봤다. 회사에서는 그 책들이 읽히지가 않았다. 회사에서 받은 상처와 사람들에게 압도되어서 뭔가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언제 어떤 일들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서 주눅들지 않고 살아가길 바란다. 프로젝트를 해보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많이 자신감이 떨어져있었다. 다시 자신감 있고 활력있는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 인생을 받아들이고 감사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즘은 그저 지금 이 상황도 감사하다. 남편과 내가 동시에 회사를 안 다니는 상황이 돌발적으로 발생했음에도 안정적으로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이 상황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상담도 1달에 한 번으로 간격을 늘렸다. 내 상황이 좀 여유로워진 거다. 계속 이머전시 벨이 울리고 있다가 이제 벨이 꺼지고 일상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우울증 환자들이 결국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가 다수라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정말 좋아진다. 새로운 것을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마냥 죽고 싶던 마음도 사라지고 그냥 삶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회사를 잘 그만뒀다고 밖에는 할 수 없다.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하니까. 


앞으로 새로운 일을 좀 더 진지하게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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