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담 J Jun 05. 2024

백수 5일차

[우울증 환자 생존기] 마음이 편안해요

5월 마지막 날. 부장님과 조금 울컥한 포옹을 나누고 회사를 마무리했다. 점심만 먹고 마무리한 후, 오후에는 관련 박람회에 가서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퇴사를 축하해주었다. 퇴사 0일차를 조금 소란스럽게 보내고 난 후 주말을 맞이했고, 훌라 댄스 페스티벌 준비로 조금 바쁘게 지냈다. 월요일에는 토요일에 못 잔 잠을 하루 종일 자고 신랑의 퇴근을 맞이했다. 신랑이 평소보다 20분 정도 일찍 들어왔다. 큰 언니가 "ㅇ서방에게 너무 마음의 부담을 갖지 말라고 해" 라고 해서 그 말을 전했다. 신랑이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회사가 5월 마지막날을 기점으로 폐업했어"


나는 무엇에든 반응이 좀 느리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는데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4월 즈음부터 폐업 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내게 말 안했느냐고 했더니 내가 어렵게 결정한 퇴사를 번복하고 괴롭게 억지로 회사를 다닐까봐 말 안했다고 한다. 또 6월 전에 이직할 계획이었어서 말을 안 한 것도 있다고 했다. 이야기 중인 곳이 생각보다 기간이 길어져서 바로 이직 못하게 되었지만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자기를 믿으라고. 고생 많이 했다며 안아주었다. 


화요일부터 우리는 둘 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는 내가 오전, 오후 좀 바빴고 오늘 온전히 둘이서 시간을 보낸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고 나는 점심즈음 일어나서 커피 한잔 마시고 남편은 서재방에서, 나는 마루에서 각자 책을 보고 할 일을 한다. 의도치 않게 동시에 백수가 되었지만 마음이 조급하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물론 조금 낯설기는 하지만 신랑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다. 만약 돈이 많다면 이렇게 낮에 둘이서 사랑이 산책시키고 조용하게 지내는 일상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어쩌면 다시 오기 힘든 이 시간을 기억에 남게 잘 보내고 싶기도 하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기도 하고. 


나는 프로젝트 2개를 받아서 소소하게 일거리도 생겼다. 친구네 회사에 알바자리도 부탁해놨는데 아직 결정이 안 되었다. 퇴사 축하는 계속 받고 있다. 사람들이 선물도 주고, 전화도 주고, 꽃도 준다. 퇴사를 결정하고 2달동안 '이게 맞나? 다시 물려야 하나?' 갈등도 있었지만 오히려 끝이 올수록 마음도 편안해지고 좋았다. 돈을 못 버는 것과 별개로 퇴사하기로 한 것은 잘 했다 싶었고, 지금도 그렇다. 어제는 병원에 가서 약도 줄였다. 불안증 약을 하나 줄이고, 수면제도 테스트해보면서 조금씩 줄이기로 했다. 단약하는 그 날까지 몸과 마음을 잘 돌봐야겠다. 


중년의 백수가 될 줄은 몰랐다. 일을 멈춘것은 아니니 완전 백수는 아니고 좀 할랑한 프리랜서다. 무엇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좀 편안하게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도 있고, 정신 바짝 차리고 경제공부를 해야 한다거나 쿠팡이든 뭐든 빡쎄게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되었건 평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겠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나에게 힘든 시간이 있었던가 싶게 평안하다. 

작가의 이전글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