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와 그이와 나]
여름이 시작되면서 저녁 8시가 좀 넘어서면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나의 퇴근 후로 엄마의 열 아홉번 방사선 치료를 진행했다. 치료 후 돌아오는 길은 항상 지는 해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백미러를 봤는데 엄마가 없어졌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쓰러진건가, 혹시 엄마가 연기처럼 사라진 건 아닐까.' 뒤를 돌아보니 종이인형마냥 문짝에 기대어 널부려져 있다. 마냥 우울속으로 빠져드는 엄마를 보니 온 몸이 지구 핵으로 내려앉는 것 같다.
엄마는 여든이다. 여학교 시절, 어쩌면 사람이 마흔까지, 오십까지 사는가 싶었다던 소녀는 여든의 할머니가 되었다. 만 여든을 앞두고 유방암 수술과 치료를 시작했다. 젊은이가 아니어서 전이가 높은 유방암임에도 불구하고 전이도 없고, 크기도 수술을 해야 할 정도지만 위험하지 않을만큼 적당히 작으면서 크고, 1기에서 2기로 넘어가는 시기이고 아주 착한 암은 아니지만 약간의 위험이 있는 정도라 수술, 항암, 방사선, 표적, 호르몬 모든 치료를 다 적용할 수 있는,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에 비해서 건강하다고 해도 젊은 사람도 견디기 힘든 과정을 근 9개월에 걸쳐서 치료를 받는 팔순의 노인이라니. 우울감이 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겠지. 기실 엄마는 평소에도 상당히 감성적이고 걱정이 많은데,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갱년기 증상처럼 감정 기복이 더 생기고, 모든 암 환자들이 겪는다는 치매를 의심할 정도의 단기 기억 상실증 등이 겹쳐 더욱 우울해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십년 만에 건강검진을 받던 시기에 아빠가 쓰러졌고, 엄마가 암을 진단받던 즈음에 아빠가 두번째 쓰러졌다. 아빠는 천운으로, 쓰러졌지만 큰 장애 후유증 없이, 다만 늘 어지럽고 식사가 안 되어 일상생활이 더 이상 되지 않을 정도의 컨디션으로 거의 15키로 가까이 빠지면서 완전한 노인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치료받고 의젓해지려고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의지만으로는 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엄마의 방사선이 시작되기 직전에 아빠는 응급 심장시술을 받았다. 아빠의 죽음을 염두에 두면서도 당연하게도 생존을 간절하게 바라던 엄마는 아빠의 건강이 돌아오자 일주일 상간으로 바통터치하고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4주간 매일 저녁 병원에 다녔고, 빠르게 우울로 빠져들었다. 중환자실에 있는 아빠가 혹시 돌아가실 경우를 대비해 파마기도 없는 회색 머리를 짧은 커트로 자르고 끝까지 정갈함을 잃지 않으려던 엄마는 이제 스치는 말 한마디에도 울음을 터뜨렸다.
지는 해에도 눈물을 흘리는 엄마를 매일 저녁 실어나는 것은 생각보다, 각오보다 쉽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평생 동물을 무서워하고, 어릴 때 동물원으로 소풍가는 것도 이해가 안 갔던 나는 엄마의 우울감을 극복시키고자 강아지를 데려오기로 했다. '짐승은 싫다'는 엄마와 조카들이 아가 때 데려온 햄스터와 물고기들이 무병장수하여 천명을 다하도록 돌봐주느라 힘이 들었다던 아빠는 절대 강아지를 들이지 않을 것이 확실하므로, 내가 키울테니 낮에 봐달라고 하기로 하고, 이제 11주가 된 '사랑'이를 데려왔다.
사랑은 그렇게 우리에게 찾아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