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어땋게든 산다
지난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동안 못 만난 지인들도 보고, 미술관 데이트도 하고, 견진성사도 받고, 훌라도 추고, 바쁘고 즐겁게 지냈다.
물론 마냥 좋기만 하지는 않았다. 예정된 프로젝트가 연기되고, 수입이 난망해져서 위기감을 느꼈다. 치과치료를 계속 미루다가 큰 맘 먹고 갔더니 남아있는 치아는 물론 소실된 치아까지 말 그대로 모든 치아를 손봐야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워낙 잘 썩는 치아로 유전적 영향(엄마, 아빠 주치의시다)과 침이 너무 안 나와서 극건조한 구강환경이 겹쳐 더 심한것 같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치아와 잇몸, 뼈가 약해서 고생을 한데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입을 앙다무는 버릇이 있어 턱관절이 나쁘고, 이빨이 엄청 금이 많이 가는 총체적 난국이다. 턱관절이 안 좋아 크게 벌리거나 오래 벌릴 수 없어 치료과정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돈이 엄청 든다.
거기다 나에게는 정화의 시간이었던 미사를 방해하는 이가 등장하여, 결과적으로는 당분간 다른 성당에서 미사를 보기로했다.
약은 항우울제와 수면제 1.5알을 먹고 있다. 중간에 뜻없이 죽고싶고, 자해충동이 올라왔는데, 미사를 방해받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라는 상담 결론에 이르렀다. 방해하는 사람이 과거 나를 괴롭히던 회사 빌런과 목소리, 외모, 체형, 행동 등 많은 것이 너무 유사해 내가 지난 6개월 간 무척 괴로웠기 때문이다. 즐길 수 없으면 피해야지, 별 수 있나. 한 2년간 다른 성당에 다니기로 했다.
여전히 나는 많은 것에 취약하다. 미뤄놓은 일들, 새로운 일들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사람들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또 얼굴이 어두워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다른 사람이 된다.
경고등이 뜨면 새로운 책과 음악을 찾는다. 상담도 받고, 남편과 데이트도 하고, 반찬도 만들고, 장도 본다. 만년필의 잉크가 다 떨어지면 글씨가 얇고 끊어진다. 그럼 만년필을 분해해서 잉크병에 푹 담가 다시 잉크를 채운다. 그렇게 지내고 있다. 글을 많이 쓰면 자주 잉크를 주입하듯이 에너지 소비를 많이하면 가족과 친구와 작가들의 사랑을 주입한다.
그렇게 또 한 시기를 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