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보호자와의 상담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난 후, 나의 보호자는 남편이다. 그는 나와 같이 회사 생활을 제외한 모든 생활을 함께 한다. 그는 나의 목소리 톤만 들어도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고, 나는 그의 숨소리만 듣고도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있다.
지난 여름. 나는 엄청난 히스테리를 그에게 부렸다. 원인제공은 그가 한 것이 맞지만, 집에 들어가지 않고 극단적으로 소리를 지르고 결혼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 건 나였다. 정기적인 상담을 시작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몇 년만에 수백개의 질문에 답을 했고, 그 분석 결과 나는 자살 위험군에 속해있었다. 이대로 둬서는 안 될 상태였고, 사실 회사를 다니고 사회생활,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가장 처음 왔을 때와 매우 비슷한 그래프를 그리고 있으며, 좀 더 심각해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나의 상담자는 보호자에게 이런 상황을 알릴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같이 와줄 수 있겠냐고.
부부 상담은 처음은 아니었다.
결혼하기 전에 이미 나는 내가 오랫동안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오픈했다. 난 이런 사람이라며. 이래도 괜찮겠냐며. 그는 어떤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다고 수락했고, 결혼하고 나서 그이가 나를 더 케어해줄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상담을 권했다. 그렇게 상담을 간헐적으로 다니다가 부부 상담을 두어번 미리 한 상태였다. 상담자의 판단으로는 내 남편은 보기 드물게 건강한 사람이니 내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보호자 상담도 상담자가 먼저 신청할 수 있었다. 건강한 보호자의 건강한 케어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남편복이 있다.
여름의 부부상담은 진행이 어려울 정도로 내겐 힘든 과정이었다. 나의 배우자에게 이런 힘든 과정을 겪게 만들었다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서 우느라 숨을 못 쉴 정도였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같이 산다는 건 어떤 마음이겠는가. 나는 그걸 들키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동반자에게 그런 고통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살면서 그런 적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였고, 그가 주는 안정감에 기대어 어쩌면 나도 평범하게 살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우려하고 두려웠던 상황으로 그를 끌고 들어왔다는 자책감에 시달렸다.
나의 롤러코스터가 올 때마다 나는 괴로웠다.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부부상담은 한달 단위로 서너번 더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약물치료를 권하는 상담자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상담자는 그 동안 나에게 한번도 약물 치료를 권한 적이 없다. 그런 그녀가 약물치료를 병행하자고 권한 건 그만큼 내가 심각하다는 뜻이었고, 나와 그를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이제 나는 약물치료도 함께 받는 신경정신과 환자가 되었다. 내담자에서 환자가 되는 순간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마 4개월 쯤 계속해서 맞는 약을 찾아서 2주에 한번씩 신경정신과를 가고, 한달에서 2주에 한번씩 상담을 받고 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살아남고 있는 중이다.
부부 상담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생각보다 서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해석해주는 매개자가 상담자였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도 그의 이야기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당사자에게 직접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서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과정이기도 했다.
부부 상담이 끝나고 난 후 우리는 이 상담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어주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상담자는 말했다. 모든 부부 상담이 그렇게 끝나지는 않는다고. 우리는 정말 보기 드물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부부라고. 그 말에 더 힘입어 우리는 더욱 아름다운 동반자가 되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의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부부 상담을 상당히 고통스러워했던 친구가 있었다. 결국 끝까지 상담을 마치지 못했는데, 그 부부가 그래서 헤어졌느냐. 그건 아니다. 벌써 10년이 넘게 잘 살고 있다. 모든 것은 하기 나름이다. 서로서로.
요즘은 결혼 전에 건강검진표를 교환하듯이 상담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커플도 있다고 한다. 나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 때 한국은 심리상담 대신에 점집을 간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점집이라면 나도 한 때 종종 다녔던 터라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다.
이제는 나는 상담을 권한다. 당신에게는 친구도 있고, 부모도 있고, 은사도 있고,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잘 맞는 상담자만큼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나는 요즘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한 건지는 모르겠다.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었는지도. 하지만 한 가지는 나는 부부 상담을 통해 위기를 또 한번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신의 보호자, 그의 보호자인 당신이 서로 맞대어 기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상담이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죽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냐고?
그럴리가. 이 글을 보면 나의 남편은 또 엄청 걱정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매 순간이 고비다.
하지만 나는 그의 손을 잡고, 나의 상담자의 손을 잡고 이 길에서 아직 발을 붙이고 살고 있다.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