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만날 때마다 돈을 지불한다.

[우울증 환자 생존기] 이십년지기 친구와 동행하기

by 마담 J

말 그대로다.

나는 친구가 보고 싶을 때마다 예약을 하고 사전에 돈을 지불한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에 약속한 시간만큼 만나고 돌아온다.

때때로 신랑이 운전해줘서 혼자 기다릴 때도 있고, 함께 만나고 돌아올 때도 있다.

나는 그녀를 스무살 보다 약간 많은 나이에 만났다.

그녀는 스무살 보다 약간 적은 나이였다.

이제 우리는 둘 다 사십대가 되었다.




내가 그녀를 본격적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한 건 쌍무지개가 화려하게 뜬 어느 여름날이었다.

운전해서 가는 길에 쌍무지개를 보며 얼마나 펑펑 울었는지 모른다.

이럴려고 이런 건가.

이런 광경을 보려고 나는 지금 이 시점에, 이 친구를, 이런 이유로 만나러 가는 것인가.


우리는 그간 간간히 인사를 전하는 사이였다.

십년이 넘도록 우리는 그렇게 지냈다.

잊을 만하면 소식을 전하는 사이.


어느 날 그녀는 직접 쓴 임상심리학 책을 보내왔다.

십대 소녀는 전문 임상심리학자가 되었고, 그간 4권의 책을 발간했다.

잊지 않고 나를 찾아주는 그녀가 고마왔고, 여전히 그녀가 그리운 내가 반가웠다.




햇빛이 뜨거운 날, 길어진 해를 등지고 어느 건물 계단에서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손목에 칼날의 차가운 촉감을 달고 운전을 해. 그 촉감이 자꾸 내 손목을 그어. 사실은 하루 종일 그래."


한 동안 그녀는 말이 없었다.


"그 동안, 꽤 오랫동안, 솔직히 10년이 넘도록 혼자서 어떻게든 버텨왔는데 이젠 자신이 없어. 곧 무너질 것 같아. 전화할 곳이 당신 밖에 없었어."


그녀는 울먹이는 소리로 말했다.


"당장 누구든 만나야해요. 약을 먹는 방법도 있고 상담도 있어요. 좋은 선생님들을 소개해드릴 수도 있고 저도 가능하지만, 언니가 편하신대로 하시죠."


"... 나는 당신이 해주면 좋겠어.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처음부터 어디부터 해야할지 모르겠고, 그 상담을 끝까지 다닐 자신이 없어."


"좋아요. 오세요. 저랑 해요."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아마도 5~6년 전의 일이다.

나는 그렇게 그녀를 주기적으로 만났다.

초기에는 집중적으로 1주일에 한번씩 6~8개월 가까이를 90분씩.


그 이후에는 2주에 한번, 1달에 한번, 간간히 다시 나의 롤러코스터가 올 때마다 한번.


그리고 나는 작년 여름부터 다시 정기적으로 그녀와 만났다.

4년 만인 것 같다. 정기적인 만남을 다시 시작한 건.




처음 그녀에게 갔을 때가 생각난다.

수백개의 질문지와 함께 한 가지 서약서를 썼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반드시 전화할 것.

정확한 문구가 생각나지는 않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죽지 말 것. 혼자 죽지 말 것, 죽을 것 같은 때는 반드시 상담자를 떠올리고 전화를 할 것' 이었다.


그 서약서를 쓰는데 한참 걸린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시간이 흘러 정기적인 만남을 가지고 있다.




언젠가 그녀와의 일을 써야지 생각했다.

상담을 통해 내가 살아남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홀로 외롭게 싸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지금은.


그냥 쓴다.

아직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어쩌면 계속 살아남을 사람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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