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수장

[우울증 환자 생존기] 물 속에서

by 마담 J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 시기가 있지.

생각해보면 나는 아주 오랬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그리고 부치지 못할 편지들에 쏟았다.

그런게 긴 터널과 해저를 지나왔고, 한 동안 이야기를 잊고 지냈다.

정확하게는 어떻게 이야기하는지를 잃어버렸다.



너무 많은 감각이, 내 안의 모든 세포들이 감각세포들로만 채워져 그들이 모두 각자의 삶을 내게 이야기하는 것 같은 시간들이 있었다.

잠시도 잠들 수 없고, 어느 순간도 고요하지 못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나는 수많은 일기와 편지에 쏟아내는 말들로 지나왔다.


그렇게 별이 뜨는 저녁에도, 별이 지는 첫 새벽에도, 해가 찬란한 한 낮에도

넘치는 말들을 온 몸과 마음으로 받아내느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 무수히 지나갔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왔다.

나는 감각의 수도꼭지를 잠그기로 했다.


나는 모든 감각촉수들을

산뜻한 유산지에 싸서 명주실로 한번 묶고

보슬보슬한 한지에 싸서 오색실로 두번 묶고

하늘하늘한 비단 보자기에 싸서 세번 묶고

투명한 백자 단지에 넣어 틈을 꼼꼼하게 밀납하고

반듯한 나무상자에 고운 모래와 함께 넣어 경첩을 두르고

단단한 석관에 깨끗한 진흙과 함께 묻어 시멘트로 틈을 메꾸고

겉을 새끼줄로 튼튼하게 둘러 단도리를 한 후

나만 아는, 혹은 나도 모르는

어느 흐르는 물 속에 수장시켰다.


새로 자라나는 감각촉수들은 항상 짧게 다듬어서

엄격한 수도승의 손톱처럼 여지가 없도록 관리했다.


남들처럼 살 수 있었다.

잠도 자고 밥도 먹고 아주 일반적인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슬프고 아픈 시간이 점점 줄었다.


그러나 감각의 수도꼭지는 달랐다.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의 배합을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슬프고 아픈 감각과 행복하고 아름다운 감각의 배합을 조절할 수 없었다.

뜨거운 물을 잠그면 차가운 물도 함께 잠겼다.

슬프고 아픈 감각이 잠기니 행복하고 아름다운 감각도 함께 잠겼다.


나는 이번에도 남들과 달랐다.



수장된 마을의 땅 밑에서 뭔가 보글.

아주 희미하고 뿌연 기미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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