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이름이 생겼다
이 글은 남편이 써야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우울증과 무기력이 끝나지 않는 터널처럼 계속해서 나타나는 아내와 사는 남편의 이야기.
나는 2015년부터 상담을 시작했다. 손목에서 칼이 그어지는 촉감을 매일 달고 살다보니 정말로 손목을 그을 것만 같아서 더는 혼자서 버틸수 없었다. 상담사에게 구조요청을 보내고 상담이 시작되었다. 처음 1년간은 거의 매주 갔다. 요즘은 빨간불이 들어올 때만, 몇 달에 한번 정도 간다. 그 사이, 그러니까 2년전부터는 약물치료도 함께 하고있다. 처음 상담을 받기 시작할 때처럼 절망적인 순간이 다시 찾아왔고, 왠만해서는 약물치료를 권하지 않는 상담사가 약물치료를 강력하게 권했기 때문이다. 2달을 고민하다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변에 조언에 따라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짧게는 8개월에서 1년 길면 3년에서 5년. 그런데 나는 벌써 2년이 넘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처음 '병'이구나 생각했던 건 스무살 언저리였다. 방학때 이십여일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십년도 더 전의 일이다. 오래된 병이다. 일을 하고 사람들을 상대하면서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어릴 때부터 모범생으로 자라온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고싶어 했다. 그러니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고. 나는 욕도 먹고 싸우기도 해야 하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점점 병이 들어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병원에서는 '자율신경계 장애' 진단도 받았다. 간간히 항우울제와 공황장애 약을 응급으로 처방해 먹었다. 서른이 넘어가고 지금 이곳의 회사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병세가 심각해졌다.
1년여의 상담이 진행될 즈음에 남편을 만났다. 거의 매주 진행된 상담을 통해 나는 많이 호전된 상태였다.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라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힘이 생겼고 그런 나였기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평소 결혼은 안 할 생각이었다. 나의 이런 상태가 옆에 있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는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이 남자라면 나도 누군가와 같이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였기 때문에 그런 용기가 나온 것 같다.
결혼하고 5년이 지났다. 그 결혼생활 동안 나의 무기력과 우울증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했고, 몇일 전 이 남자는 그걸 터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빠져나온듯 했는데 또 다시 나타나고, 빠져나오면 또 다시 나타나는 터널.
나는 오래전부터 이 병을 롤러코스터로 불렀고, 이제 이 남자도 이 병에 명명을 했다.
우리는 모두 이 선로와 터널에서 나와 들판으로 가고자 하는데
우리는 그곳에 이를 수 있을까.
이 글은 투병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