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뭔가를 하고 싶다는 것
심리상담을 2주에 한번씩 받고 있다. 한달에 한번 한 시간은 그 동안 내가 잘 하고 있는지 점검받는 정도지만, 그 이상 가면 좀 더 깊은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조울증 진단을 받고 상담주기를 늘렸다. 상담을 늘리고 첫 시간에 상담 선생님이 말했다. 내면가족상담으로 조증이 왜 왔는지 알아볼 수도 있다고. 첫 주에 한 시간 상담을 마쳤다. 나는 끝까지, 죽기 직전까지 버텨야 끝을 볼 수 있는 성격이라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한으로 더 밀어붙여서 끝을 보려고 하는 중이라고. 근데 그 마음 밑에는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이 자리잡고 있다고. 그래서 새로운 것을 해 보려고 들썩 거리는 중이라고. 세계의 많은 프론티어들이 조증이 조금씩 있다고. 병과 병이 아닌 것의 차이는 자신이 벌려놓은 일을 수습할 수 있는가와 자신의 조증을 인지하고 있는가의 차이라고. 나는 수습하고자 하는 문제해결형 인간이고 스스로의 상태를 24시간 점검하면서 조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조증이 아직 병세가 깊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우울증이 심해지면 조울증이 된다는 말이 있다. 우울증 수십년만에 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그 조증이 아직은 심각하지 않은 것 같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심각하다. 나는 하루에도 기분이 수십번 극과 극을 치닫는 스타일로 조울이 왔는데 감정과 컨디션을 24시간 모니터링 하는 입장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조증 그 자체만으로 병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상담사와 함께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수면제를 3종류로 늘려서 먹고 있는데 잠이 빨리 들어서 잠 드는 것에 부담감이 없어서 좋다. 다만 아주 피곤하지 않으면 2시간 30분마다 깨고 깨서 이것 저것 하다가 보면(원래 이러면 안 되겠지만) 잠도 달아나고(잠을 쫓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홈쇼핑도 보고, 글도 쓰고, 목욕도 한다.) 새벽 아침녘이 되어서야 잠에 들기도 한다. (그런 생활을 몇일 하다가 아침에 주차장에 잠들어서 출근을 한시간이나 늦게 한 적도 있다.)
조증은 병일까? 병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몸이 들썩거린다. 몸의 항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ADHD인가 싶을 정도다. 집에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집에서는 좀 낫다. 어쨌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하지만 회사나 성당이나 운전하거나 길을 걸을 때 마음이 들뜨고 가만 있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해서 힘든다. 뭐든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 나는 원래 하루 종일도 앉아 있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는 화장실 두 번가고 점심에 한번, 저녁에 한번 일어났다. 공부를 그나마 어느정도 할 수 있었던 건 엉덩이 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단, 10분도 앉아있기 힘들다.
뭐든 하고 싶다. 몸의 항진이 심할 때는 막 격한 운동을 하고 싶다. 암벽타기나 달리기나 등산이나.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무실에서도 안 하던 스트레칭과 운동을 하고 일어서서 일하는 책상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몸의 항진이든 마음의 항진이든 이 또한 울증과 다른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사회생활 하면서 울증도 쉽지 않았지만 조증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조증은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결론에 이른 아침도 있다. 뭐든 하고 싶은 거다. 내 욕망에 충실하자는 일기를 쓴다. 나는 뭐든 할 수 있다고. 잘 하고 있다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나는 해낼 거라고. 나는 생존자니까. 나 스스로를 믿고 해낼거라고. 내가 더 나아지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거라고. 내가 탈피로 성장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이겠다고. 다는 당당해질거라고. 스스로의 삶의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이겨내고 또 이겨낼거라고. 난 이제부터 매우, 아주, 잘 살거라고. 이겨내고 부서지면 새로운 것이 될거라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었지만 아니라고. 나 스스로 인정해주는 거라고. 선생님들을 찾아다닐게 아니라 선생님들이 나를 찾게 할거라고. 자신감이 충만하고 활력이 넘친다.
새로운 내가 되겠다는 생각. 깨치고 나아가겠다는 생각. 얼마만인지. 어쩌면 조증은 병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걸 수도 있다. 내가 드디어 뭔가를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사실 울증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조증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기도 하다는 걸. 조울에 희망을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