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우울은 공허함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은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은 고통이다.
우울은 두려움이다.
우울은 공허함이다.
정말 '총 맞은 것처럼' 내 삶 전체가 '뻥' 뚫린 느낌이다. 암흑으로 뒤덮힌, 세상의 모든 전기가 나간 것처럼, 혹은 우주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다. 인생의 공허함 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바뀔 수 있다고? 바뀔 수 있다. 두려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불이 꺼졌을 때, 공간감을 잃었을 때의 혼란과 두려움을 생각해보라. 그 상태를 24시간 겪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이겨낼 재간이 없다.
망망대해 우주의 칠흙같은 어둠에서 24시간을 떠 있는 느낌이라면, 그래서 어디하나 발 붙일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존재의 실존에 확신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생기며, 고통이 된다. 단순히 슬퍼서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는 중증 우울증 환자의 면도 등 위생을 돕는 서비스도 있다고 들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무거움, 공허함이 나를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공허한데 무겁다고? 그렇다. 사방의 압력이 안팎에서 중구난방으로 나를 압박하는 느낌, 그런데 그 방향성을 느낄 수 없을 만큼의 무거움, 그리고 방향성을 잃은 압박 때문에 결국 짓누름에 못 이겨 하나의 점도 될 수 없는 것 같은 공허함이 우울이다.
이유야 있겠지. 적어도 계기는 있겠지. 사람의 뇌는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집중하게 발달되었다고 한다. 위협으로부터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런데 삶과 타인에 대한 예민함이 과도하게 발달하고, 거기에 과도하게 발달한 공감능력까지 있다면 타인의 고통까지도 내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 느끼기까지 해야 한다면 슬픔, 고통과 두려움이 사라질 시간이 없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데 세상 모든 고통이 내 것처럼 느껴진다면 무력감에 빠지게 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두려움의 압박감에 짓눌려 고통스러워지고 종국에는 공허해지는 것. 그것이 우울증이다.
요즘 나는 제법 잘 지내고 있다. 24시간 모니터링을 하며 컨디션을 체크하고, 필요할 때는 약을 먹는다. 약을 먹는다는 건 나의 그릇을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의 압박감을 방지해주는 것이다. 게다가 조울이 왔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간다. 마음의 평정을 찾았을 때 오는 안정감을 누릴 수 없다. 하지만 요즘에는 제법 잘 지내고 있다.
상담으로 우울을 치료할 수 있을까? 그것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나 스스로를 이해하려고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내 그릇의 크기를 알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감정을 알 수 있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슬픔, 공감, 두려움, 공허함을 알아야 우울을 벗어날 수 있다.
이번주에도 상담이 있다. 상담 전에 나는 나의 컨디션 일기, 신랑의 관찰기, 나의 꿈 일기, 나의 감사일기와 칭찬일기, 반성일기도 함께 보낸다. 그것을 보면서 그 동안의 나를 점검하고,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한번 더 볼 기회를 가진다.
요즘 나는 매일 저녁 양치와 세수를 한다. 우울증 환자에게는 엄청난 일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사람에서 매일 세수하는 사람이 되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할 수 있을 때 우울증에서 풀려나고 있다고 알 수 있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번 씻을 때도 있었다. 밤에 하는 세수? 그게 뭔가?
주변에 우울증 환자가 있다면 그가 당연히 습관처럼 해야하는 일을 안 하고 있다고 질타하지 말자. 그는 지금 살기 위해 무지 애쓰고 있으니까. 그래서 무엇도 할 에너지가 없는 거니까. 세상의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응원을 보낸다. 나 자신에게도.
내 칭찬 일기에는 양치한 것도 세수한 것도 등장한다. 우리는 그렇게 한 발씩 삶을 살아내고 있다.
공허함을 이기는 방법은 바닥에 얼룩이 보일 때 한번 닦는 것, 누워있다면 앉아보는 것, 앉았다면 일어서보는 것, 일어섰다면 한발을 떼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무엇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리고 주위의 도움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당신은 살고 싶어하고 살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생존자다.
나의 친애하는 우울증 동료들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은 새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