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이 나타날 때

[우울증 환자 생존기] 균형잡기

by 마담 J

어제는 운동 숙제를 하고 갈증이 물로도 가시지 않아서 의사의 경고가 있기는 했지만, 남편의 맥주를 몇 모금 얻어마셨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울증이 인사를 했다. 요즘은 바꾼 수면제 덕분에(세 알이나 먹는다) 약 먹으면 곧 졸리고 잠도 곧잘 자는 편이라 일찍 일어난다. 중간에 한 두번 깨기는 하지만. 오늘도 6시에 일어났는데 원래 남편과 러닝을 시작해볼까 했는데 밖이 아직 깜깜했다. 포기하고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양치를 하는데 울증이 '안녕!'하고 찾아왔다. 이미 씻기 시작했으므로 억지로 하던 일을 마쳤다. 아침부터 힘들었다. 집에 침수하고 싶은 마음을 접고 신랑과 함께 엄마집으로 출근했다가 시간을 보내고 회사로 왔다. 와서도 컨디션이 올라가지 않아서 아침약을 먹었지만 필요시 약을 하나 더 먹었다. 필요시 약은 불안증이나 공황이나 급격한 감정변화를 가질 때 먹으면 도움이 되어서 먹었다. 꿀아메리카노도 마시고.


마음의 균형을 잡는 일은 늘 어렵다. 울증이 왜 오는지 아는 건 (추측할 수 있는 건) 내가 24시간 관찰일기를 매일 쓰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그걸 쓰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세세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을 거다. 하루의 감정 기복을 관찰하고 남편과 공유하고, 남편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를 비교하고 상담사의 점검을 거쳐 나의 상태가 파악된다. 관찰일기를 쓰자고 제안한 건 남편이다. 고마운 사람이다. 마음을, 나를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들쭉날쭉하는 가운데 나 자신이 휩쓸려 다니게 된다. 객관적이기까지는 못 하겠으나 그래도 휩쓸려 다니지 않고 현재의 내 상태를 파악하는 것 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균형을 잡아야겠다는 자각이 드니까 말이다. 어떤 방법이 균형잡기에 도움이 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상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운동도 하고, 목욕도 하고, 마사지도 받고, 108배까지는 아니어도 3배라도 하고, 글도 쓰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그 모든 것이 다 도움이 된다고 했다. 마사지 같은 경우, 육체적 접촉이 자극도 되고 안정감도 주어서 어르신들 요양에서도 권유되는 방법이라고 했다. 목욕의 경우, 신체를 안정되게 해 주어서 도움이 되고, 108배는 운동도 되지만 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어지기 때문에(실제로는 온갖 잡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도움이 되고, 글쓰기는 일기든 편지든 낙서든 무엇이든 쏟아내는 행위가 도움이 되고, 운동과 상담은 말 할 것도 없고. 그러니 살기 위해서 나는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었던 거다. 나는 살고 싶었던 거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회사도 밥 먹듯이 빠지고 회사에 나올 때는 씻지도 않고 일어나자 마자 옷만 갈아입고 겨우 오기도 했다. 회사를 그만 둘 수 없는 큰 이유기도 하다. 이렇게 고통스러우면서도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우울증 환자에게 루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다. 억지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루틴이 있어야 하는 거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움직이니까.


요즘은 그 때엑 비하면 너무 많이 움직인다. 이것도 문제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10분마다 일어나는 것 같다. ADHD인가 싶을 정도로 앉아 있을 수가 없다. 책을 겨우 보기 시작했는데 책도 막 움직이면서 본다. 조증 덕분에 이번 달 카드값이 펑크가 났다. 평소의 2.5배나 더 썼다. 다음 달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카드값을 보니 또 정신이 들었다. 그래서 쇼핑을 자제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다. 그래도 뭐 억대 계약을 지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ㅠㅠ




평상심이라고 하던가. 일반 사람들도 평상심을 유지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그런데 하루에도 몇 번씩 양 극단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힘든 일이다. 정신없이 날뛰는 마음인지 정신인지를 매번 추를 가운데로 맞추기 위해서 관찰하고 뭔가를 해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루를 살아낼 수 있으니까. 그것도 잘 지내고 싶다면 무조건.


어제부터 의자에 앉아서 근무할 때 다리를 힘껏 벌리고 엉덩이에 힘을 주고 앉아있다. 옆으로 벌린 런지(?) 자세처럼. 엉덩이에 힘을 주면 배에도 힘이 들어가서 좀 더 정신이 들고 집중할 수가 있다. 각자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사는 거다. 오늘은 울증이 와서 인사를 하는 바람에 아침부터 힘들었지만, 덕분에 조금 차분해진 것도 있고(ㅡㅡ;) 오늘 하루도 잘 살아봐야겠다.


아예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아니니까 뭐라도 해야지. 사는 거 참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게 참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해내는 나 자신을 칭찬하며 빨리 점심시간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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