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환자 생존기] 사랑은 성실함입니다.
수요미사에 참석했다.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사랑없이 어떤 일을 성실하게 할 수는 없다고. 성실하다는 것은 상대방을, 혹은 그 일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내가 정말 그를, 그 일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내가 얼마나 성실한가를 보라고.
7월부터니까 벌써 넉달 째 매일 컨디션 기록을 하고 있다. 매일 저녁 아주 짧게 컴퓨터를 키고 드라이브를 열어서 매일 내 기분과 그 날 있었던 일을 쓰고 있다. 남편도 내 컨디션을 기록하고 있다. 남편은 3,4월에도 혼자서 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기록을 비교하고, 상담 선생님이 두 가지 기록을 보면서 체크해준다.
친구를 만나서 이 이야기를 했다. 남편의 두번째 권유로 시작된 기록을 이렇게 매일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구가 말했다. '선생님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매일 기록할 수 있는 것이죠'라고. 맞다. 나는 남편을 사랑한다. 그가 나를 떠나기를 원치 않는다. 그래서 남편의 권유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계속 살기 위해서 내 컨디션을 기록하고 내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서 매일 기록한다. 성실하게. 사랑의 힘으로.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서있기 보다 앉아있기를 좋아하고, 앉아있기 보다 누워있기를 좋아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일을 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일에 미친듯이 몰두하던 시절에는 내 생각의 98%는 일이었다. 나는 정말 성실하고 치열하게 문화기획행정 일을 했다. 1년동안 17개의 프로젝트를 기예하듯이 돌린 적도 있다. 나는 정말 이 일을 사랑했다. 뜨겁게 사랑했다.
지금은 그 사랑이 좀 식었나 싶게 여유롭게 일하고 있지만, 프로젝트를 마치기 위해서 휴직을 권하는 의사의 강력한 요구를 뒤로한 채 출근을 하며 버티고 있다. 나름 최선의 성실을 보이며.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만 불안을 끊임없이 먹는 것으로 해소하기도 하고, 아침잠과 낮잠을 안 자는 것으로 의지를 다지기도 하면서 피곤을 달고 사는 중이지만. 나는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하고 있나보다.
나는 또 무엇에게 성실한가 생각해본다. 나의 가족들에게 성실하고자 하고, 성당 다니는 것에 성실하고자 한다. 살면서 생각보다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것들이 별로 없구나 싶기도 하다. 애정하는 예술가에게 성실하고자 하는 것, 애정하는 동료에게 성실하고자 하는 것.
언젠가는 내 삶 자체에 성실하게 될까. 온전히 내 삶, 24시간에 성실할 수 있을까? 그럴려면 24시간 깨어있어야겠지. 신부님도 말씀하셨다. 눈을 뜨고 있어야 한다고. 눈을 뜨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며 성실해야 한다고. 보이지 않는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쓰며 돌보는 것이 성실함이고 사랑이라고.
언젠가는 모든 순간에 성실하고, 사랑이 충만한 삶이 되리라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