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추와 풍선

[우울증 환자 생존기] 땅에 발 붙이기

by 마담 J

요즘 들어 무척 피곤하다. 살면서 이렇게 피곤하다고 느낀 적이 없을 만큼. 조증삽화가 올 때마다 수면제를 먹고도 깨서 잠을 안 자고 그래서인지, 그러다보니 낮에 정신을 차릴려고 꿀아메리카노에 집착해서인지, 불안을 먹는 걸로 해소해서 하루종일 먹느라 소화기관에 에너지를 다 써서인지, 먹지 않으려고 담배를 늘려서인지, 아니면 이 모든 것인지, 암튼 너무 피곤하다. 이게 몸이 피곤한 건지 마음이 우울한 건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하루에도 조울을 몇 번씩 오가는 내 유형 가운데 그래도 약도 열심히 먹고 상담도 2주에 한번씩 받으면서 감정기복 없이 잘 지낸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건가?


나를 엄청 누르고 있는 건가? 회사에 가서는 (추석 이후 빠르게 복귀했다. 추진해야 하는 플젝이 있어서. 의사 선생님이 책임감이 너무 강한 거 아니냐고 강하게 질타하셨지만, 성격인데 별 수 있나.)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있어서인지 집에만 와도 조금 편안해지는 걸 보면 피곤이 이해되기도 한다.


어제는 행사가 있었다. 날씨도 너무 좋고, 다들 신나게 꽝꽝 울려대는 춤을 추고 있는데, 나는 그 음악 소리가 커질수록 무게추가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래서 가만히 행사를 지켜보지 못하고 담배도 피고, 화장실도 다녀오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마음을 달랬다. 행사 마지막에는 헬륨 풍선을 나눠줬는데 그 중에 몇 개가 하늘 위로 날아갔다. 내 맘이 무게추와 풍선을 왔다 갔다 하는데 나는 땅에 발을 붙이려고 애쓰고 있었다.


요즘의 나는 잘 지내면서도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다. 꺼지려는 나를 건져내고, 날아가려는 나를 붙잡느라 하루종일 진이 빠진다. 한 20년 전쯤 어떤 모임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다시 태어나면 나무가 되고 싶다고. 땅에 뿌리를 박고 서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공중에 늘 떠다니는 그런 거 말고, 한 없이 밑으로 가라앉는 그런 거 말고. 정확하게 땅을 밟고 서 있는 나무가 되고 싶다고. 요즘의 나도 그렇다. 다만 좀 다른 것은 나무가 되어 무겁게 땅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로서 땅을 가볍게 무겁게 제대로 밟고 서 있고 싶다.


운동 선생님과 운동을 일주일에 한번 하는데, 나는 발바닥 전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뒷꿈치에 너무 힘을 주고 있다. 발가락은 거의 사용을 안 한다. 몸의 균형이 흐트러질 수 밖에 없다. 어떤 동작을 해도 제대로 무게중심을 잡기가 쉽지가 않다. 제대로 서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그럴려면 훈련 밖에 없다.


마음잡기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깨어서 내가 지금 무게추인지, 풍선인지 제대로 알고 땅 위로 끌어올리거나 내려야 한다. 내게 어떤 병증이 나타나고 있는지 24시간 직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병증 그 자체로 부담이며, 항상 깨어있어야 하는 것도 쉽지 않고, 더구나 늘 외줄타기 하는 것처럼 균형점을 잡아야 한다는 것이 상당히 피곤을 부른다.


그래도 해야한다. 그래야 남편과 계속 살 수 있으니까. 가족들 걱정시키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


오늘은 좀 어지러웠다. 어지럼증을 느낀 건 오랜만인데, 핑 도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뭔가를 먹으니 영양부족은 아닐거고,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 남편이 몸에 좋은 것 좀 먹어야 할 것 같다고 해서 장어도 먹었는데, 강아지 산책시키는 중에도 어지럼증을 느꼈다. 신랑의 기록을 보니 아직 안정기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몸도 마음도. 그런 것 같다.


얼마 전에 내가 존경하는 예술가를 만났는데 영혼의 위로를 많이 받았음에도 선생님이 내가 너무 피곤해보인다며 자리를 파했다. 나는 내가 피곤한지도 몰랐는데 그랬나보다. 아직 나를 보는 것에 완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발바닥의 균형잡기가 계속해서 훈련이 필요하듯, 내 삶의 균형잡기에도 계속되는 훈련이 필요하다. 투약을 3년 넘게 하고 있는데 그게 참 지치는 일이다. 상담도 가면 좋지만 가기까지가 쉽지 않다. 오가는 길이 너무 외로워서 못 가겠다고 하니 신랑이 상담은 매번 데리고 다니는 중이다. (남편 만세!)


혼자서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주변 사람들의 많은 응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의 응원과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다. 이런 노력 없이도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좋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다들 잘 살아가고 있는 거겠지? 땅 위에 잘 서서, 균형을 잘 잡으면서.


뉴스를 보지 않는데, 나의 아저씨가 나의 아저씨가 아닌 일을 했다고 한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의 아저씨는 그러면 안 되는데. 왜 그랬을까. 사람들이 가쉽처럼 이야기하는게 너무 마음이 안 좋다. 나의 아저씨에 과몰입한 나 같은 사람으로서 너무 파장이 크다. 그도 잘 살았으면 좋을텐데.


내가 남 걱정할 때가 아니다. 오늘도 4시에 일어났다. 다시 잠들기에는 애매한 시간이다. 어제 일찍 자긴 했으니까 괜찮겠지 하면서 앉아있다. 해가 빨리 떠서 엄마집에 반찬 갖다주러 가고 싶다. 눈 뜨면 뭐든 해야하는 이 불안감이 책 읽는 것으로 발현되면 좋으련만 책을 읽을만큼의 집중력이 없다. 도서관에서 책은 열심히 빌리는데, 빌리고 들고다니고 반납하는 팔 다리 운동에만 쓰고 있다. 언젠가는 나의 뇌도 써지기를 바랄 뿐이다.


땅 위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요즘이다. 온전히 나 자신으로 설 수 있는 그 날, 나는 좀 더 평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keyword
이전 18화향기로 기분이 좋아져요